설교말씀

여호와를 멀리하는 자와 가까이 하는 자 / 창 4 : 16-26

열려라 에바다 2025. 2. 15. 09:10
여호와를 멀리하는 자와 가까이 하는 자 / 창 4 : 16-26
 
주달영추천 0조회 14025.02.14 11:25댓글 4
 

여호와를 멀리하는 자와 가까이 하는 자 /  4 : 16-26 / 세속사와 구속사의 시작


세상에는 가까이 해야 할 것이 있고 멀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도 가까이 해야 할 사람이 있고 멀리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가까이 하는 것은 자기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유익할수록 더 가까이 하고 더 좋아하며 기쁘게 찾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불의한 것을 가까이 하며 악한 일에 열심을 냄으로 죄를 짓습니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선한 일에 열심을 냄으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성도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본능적으로 숨깁니다. 그런데 죄가 들통이 나면 2가지로 반응합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고 용서받음으로 새사람이 되어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내가 흉악한 죄인임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며 악한 길로 갑니다.


이것을 보여 주는 사람이 가인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마음에 분을 품자 죄를 지적하며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6-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그럼에도 자기 동생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원수로 갚았습니다.
그리고도 자기 죄를 회개치 않고 거짓말로 항변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무시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지만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으면 벌하십니다.


가인은 땅을 터전삼아 사는 농부인데 아벨의 피를 흘려 땅을 더럽힘으로 땅도 그를 버림으로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땅을 일궈 농사를 지었지만 땅이 효력을 주지 않음으로 그 땅에서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이곳저곳을 유리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가인에게 내린 벌이고 저주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벌이 너무 무겁다고 불평했고 또 자기 동생을 죽였으면서도 자기는 누가
죽일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오늘날도 형량을 선고받은 죄인들이 불평하는 모습과 동일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가인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특별한 표를 주어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생명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이렇게 육신의 생명을 보장받은 가인은 여호와 하나님 앞을 떠나 놋 땅으로 갔습니다.
하나님 앞을 떠났다는 것은 달아나다, 피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피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도망친 것입니다.
태양과 멀리 떨어진 행성은 너무 춥기 때문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도 너무 뜨겁기 때문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당한 거리에 있는 지구만이 생명체가 존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태양과 관계되어 생명을 유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되어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되어 살 때, 하나님을 의존할 때 생명이 유지되고 주시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살아가는 자존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존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생명이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죽는 것입니다.
식물은 태양을 가까이 하면 죽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록 은혜와
생명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좋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 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 없이 살 때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모든 것이 좋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숨었습니다.
이처럼 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죄와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의 관계이기 때문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고후 6:14-15)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라고 했기 때문에
죄인들은 *의롭고 빛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피하거나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멀리한 것은 마음속에 죄를 품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악한 것을 더 사랑하며 품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추기 위해
자기의 생각과 방법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죄와 불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어긋나게 사는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면서도 회개치 않았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위해, 놋 땅에 이르자 유리하는 삶을 버리고 거처를 정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유리하는 삶을 주신 것은 가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총의 벌이었습니다.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유리하는 삶을 통해 자기의 악함과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도 잘못하여 징계를 받을 때 경계해야 할 일은 반항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 6:9)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지니라
고난을 통해 자기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자숙하면 회복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가인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놋 땅에 이르자 유리하는 생활을 버리고
거처를 정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던 것입니다.
가인은 방랑과 떠돎의 뜻인 놋 땅에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하나님의 뜻인 유리하는 삶을 어기고 사니 마음에 평안이 없고 늘 불안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들을 낳자 에녹이라고 불렀는데 에녹은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일이 자기를 위해 성을 쌓기 시작했고 성이 완공되자 에녹 성이라 불렀는데 하나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사람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가인의 자손들도 자녀들을 낳음으로 가인의 계보가 이어지며 세속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가인에녹이랏므후야엘므드사엘라멕야발, 유발, 두발가인, 나아마.
라멕 때에 이르자 뛰어난 전문가들이 생기며 악이 성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야발은 장막에 거하며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두발가인은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어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이 없는 세상, 마귀와 함께 하는 세상 문화가 퍼져나갔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사람이 많습니다.
뛰어난 지혜와 재능을 가지고 많은 것을 발명하여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명예와 부를 얻지만 더욱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자기들이 일으킨 문명으로 인해 생활은 풍족하고 편리했지만 갈수록 교만하여 악하게 살았습니다. 그중에서 라멕이 더 악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라멕은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일부일처제를 무너뜨리고 두명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위해 신성한 가정 제도를 무너뜨리며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악함과 무자비함을 자랑하며 교만을 떨었습니다.


(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이들은 갈수록 악한 죄들을 만들고 퍼뜨려 다른 사람들도 그것들을 보고 배우게 함으로
온 세상에 악한 죄가 퍼지고 사람들은 갈수록 교만하여 악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노아 홍수 때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에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을 두셨습니다.


아담의 자녀 중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아벨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삶은 인정해 주었습니다.(11:4)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그래서 인간의 모든 수고와 업적은 예수님 안에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 후로 부터 130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경건한 아들을 주셨는데 죽은 아벨을
대신하여 주셨다고 해서 이름을 셋이라고 부름으로 구속사가 계승되었습니다 셋도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고 불렀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런데 셋의 후손들은 가인의 후손들처럼 세상에 무슨 업적을 남긴 것이 없습니다.
특별한 것을 개발하여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거나 유명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일상적인 것들을 감사하며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세상보다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때가 되면 함께 모여 예배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기뻐하사 그들과 함께하셨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이 약속한 사단의 머리를 깨뜨릴 여자의 후손, 메시아의 줄기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후손으로 에녹을 보내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지 않고 홀연히 변화되어 하늘로 올라감으로 후손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후손으로 노아를 보내어 새로운 세계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또 그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불러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 후손으로 다윗을 보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고 그 후손으로 예수님을 보내어
사망과 지옥의 권세를 깨드리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자기중심으로 살면서 명예와 부를 가지고 온갖 죄악들을 퍼뜨려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인간들을 망하게 한 가인과 그 후손들입니까?


아니면 평범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예배를 드리며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시게 한
셋과 그 후손들입니까? ...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시게 한 셋과 그 후손들입니다.
이들로 인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들이 되어야 우리 후손들도 주 오심을 잘 준비함으로 완성된 하나님의 왕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