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누가 복 있는 자입니까?(눅6:20-26)

열려라 에바다 2025. 2. 15. 09:12
누가 복 있는 자입니까?(눅6:20-26)
 
권호만barnabak추천 0조회 10725.02.14 17:31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누가 복 있는 자입니까?
누가복음 6:20-26


오늘 본문의 말씀이 포함된 누가복음 6 20절부터 49절까지를 보통 평지복음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말씀을 산에서 가르치셨다고 해서 산상보훈이라고 하는데 비해 오늘 본문은 평지에서(17) 하셨다고 해서 평지복음이라고 부릅니다.
내용은 산상보훈과 거의 비슷합니다만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산상보훈에서는 팔복을 말씀하셨습니다만 평지복음에서는 4복을 말씀하시고 이어서 4화를 말씀하십니다.
산상보훈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지만 오늘 말씀에서는 그냥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평지복음은 지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특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평지복음을 통하여 지금 가난한 자가, 지금 애통하는 자가, 지금 우는 자가, 지금 인자로 말미암아 미움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반대로 지금 부요하고 지금 배부르고 지금 웃고 있고 지금 칭찬을 받는 자들은 화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으면서 칭찬받으며 살아야 그것이 복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가난하고 애통하고 미움을 받으며 사는 자를 어떻게 복 있는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말씀은 분명히 우리들의 생각이나 바람에서 한참 벗어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우리들의 생각과 다른 말씀을 하셨을까요?


중학교 시절 윤리를 가르치던 교감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인생에는 길고 가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짧고 굵게 사는 사람도 있다. 너희들은 어떤 인생으로 살고 싶으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아직 젊은 학생들이기에 대부분 짧고 굵게 사는 인생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두 가지 좋은 점을 선택하여 굵고 길게 사는 인생이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수긍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해 보았습니다.
성도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로 잘 살고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천국에 들어가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안타깝게도 그런 이상적인 삶을 부정하듯이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6 24절에서 주님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중히 여기든지 재물을 중히 여기든지 둘 중에 하나지 하나님과 재물을 똑같이 중히 여기며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심지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같이 어렵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가 실제로 경험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예전 7-80년대 우리나라가 어렵게 살 때 교회는 성도들로 차고 넘쳤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찾아오실 뿐 아니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제가 좋아지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교회는 점점 비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찾지 않고 신앙생활에 관심도 없고 성도들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잘 살게 되면서 교회는 점점 쇠퇴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잘 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더 잘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잘살면 잘살수록 하나님은 점점 멀어지고 세상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중히 여기며 살 것인가? 아니면 재물을 중히 여기며 살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4가지 복과 4가지 화가 나옵니다.
이것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가난하고 주리고 애통하며 고생을 하는 자들을 복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반대가 맞고 이 사람들은 화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말씀처럼 하나님과 재물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살아야 한다고 하면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다.
4가지 복이 있는 사람은 자기들이 가난하고 주리고 애통하고 어렵기 때문에 주님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복이 있는 자가 됩니다.
4가지 화가 있는 사람은 자기들이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으면서 칭찬을 받으며 살기 때문에 재물과 세상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화가 있는 사람이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 안에서 볼 때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복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삶입니다. 구원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 가는 삶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없고 예수님이 없고 그래서 구원받지 못하고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불행한 삶입니다.
그런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지금 사람들이 좋아하는 재물이요 배부른 삶이요 쾌락이요 명예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지금 이런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화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반대로 지금 가난하고 지금 주리고 지금 울고 있고 미움을 받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진정 신앙 안에서 복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날에 복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지금이라는 말입니다.
20절에서 26절 사이에 4번이나 지금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는 말이 이렇게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지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부요하고 지금 배부르고 지금 웃으며 지금 칭찬받는 삶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반대로 지금 가난하고 지금 주리고 지금 애통하며 지금 핍박받는 자들은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날입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그 날에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 날은 주님께서 역사를 완성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는 그 때를 말합니다.
그 때가 왜 중요하겠습니까?


그 때에 인생은 둘로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그 날에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모으시고 그들을 양과 염소, 둘로 나누신다고 말씀합니다.
양과 염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말하는데 양으로 비유된 자들은 복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34)
반대로 염소로 비유된 왼편에 있는 자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주님을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됩니다.(41)
역사의 종말에서 인류는 이처럼 둘로 나누어지고 그 운명은 극과 극으로 벌어집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운명이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그 날이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거기다가 그 나누어진 운명은 영원합니다.
잠깐 동안 나누어지고 그 후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나누어진 상태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삶이 있다고 할 때 그 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 현재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야 하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중요한 날이 그날입니다. 그 날에 행복해야 진짜 행복한 것이고 그 날에 불행하면 인생을 헛되게 산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이 있음을 잊지 않고 그 날을 잘 준비하는 삶으로 살아가야 진정 복 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자로 말미암아 복이 있어야 합니다.


22절에 보면 인자로 말미암아라는 말이 나옵니다.
인생의 상식으로 볼 때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받고 악하다는 욕을 들으면 정말 불행한 삶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수님이 들어가면 그 삶은 복된 삶이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욕을 듣고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받으면 그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부유하게 살고 배부르게 살고 웃으면서 살아가도 거기에 예수님이 빠지면 그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역사의 종말에 우리를 양과 염소로 분류하고 영원한 삶을 결정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이 자기 때문에 미움을 받고 욕을 받고 따돌림을 받은 자를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이여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하시면서 두 손을 들어 환영하시고 안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복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의 주관자, 역사의 심판자, 우리의 구원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 분에게 잘 보여야 합니다.
그 분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 역사의 심판자가 누구십니까?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전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28:18)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2:9-1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역사의 주관자가 되셨고 역사의 심판자가 되셨고 인생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복되기 위해서는 인자 즉 예수님이 우리 삶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 복이 없는 삶이고 예수님이 있는 삶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 복이 있는 삶입니다.
이 예수님을 꼭 붙잡고, ‘인자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삶이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이 있어야 합니다.


20절에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했고 23절에서는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나 다른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가장 복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이 있다는 말은 먼저, 그 나라에 들어가야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제가 설명을 드렸기 때문에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 날에 하늘나라에 들어가야 그 사람이 진정 복 있는 자입니다.


두 번째는, 그 나라에서 상급을 누리며 살아야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4가지 화가 있다고 언급된 사람들은 이런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을 위해서는 부요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인색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에 주리고 그 날에 애통하게 됩니다.
그 날에 그 나라에서 복이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땅에 살아갈 때 미리 상급이 될 만한 것들을 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땅의 어려운 자들과 굶주린 자들과 목마른 자들과 나그네 된 자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너희가 나를 돌보았고 나를 도와주었고 나를 위로해주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에게 큰 상급을 허락하여주십니다.


여러분, 성도들은 그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성도들을 세상 사람들은 너무 내세주의자라고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그래서 내세를 바라보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호주로 이민을 가기로 작정하고 12월에 출발하기로 계획을 세워놓은 분이 있다고 하면,
이 사람이 한국에서 살날은 이제 10개월뿐입니다. 10개월이 지나면 호주로 가서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10개월을 어떻게 보내겠습니까?
한국에다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부동산에 투자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갖고 있는 부동산을 정리하고 돈 될 만한 것을 처분하고 그리고 호주에서 사는데 필요한 언어를 배우고 거기서 직업을 얻기 위해 준비하며 지내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이 내세지향주의입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지극히 현실주의자이며 가장 현재를 잘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마치 천국은 없고 이 세상이 전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정말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천국을 위해 준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그 나라가 없고 이 세상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구지 예수님을 힘들게 믿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는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예수 믿고 그 나라에 가는 사람입니다.
그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상급을 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삶으로 그 날을 준비하며 하늘나라의 상급을 도모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