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믿음 BIW : 말씀을 믿으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에게서 인정받고 칭찬을 듣는 것이다.
왜 이리 싸게 파냐고요?
허름한 식당이 있습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반기는 종업원은 없고, 메뉴판 아래 큼지막하게 ‘사정상 셀프’라는 안내문구가 있을 뿐입니다.
손님이 물부터 음식까지 모두 가져다 먹어야 하는 참 불편한 식당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직접 가져다 먹으라는 이 불편한 식당에 심지어는 줄까지 서 있습니다.
메뉴판에는 짜장면 한 그릇 ‘2500원’이 전부입니다.
이 금액으로는 과자 한 봉지값도 안 되는 금액입니다.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2500원이라니 재료가 부실하겠지. 그냥 싼 맛에 사람들이 많은 거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아주 맛있습니다.
심지어는 짜장면에 들어가는 재료가 싱싱하기까지 합니다.
눈을 의심하고, 입맛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이 식당은 바로, 인천에 위치해 있는 ‘복생원’이라는 식당입니다.
김영호, 이미숙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복생원은 값싼 짜장면과 맛으로 이미 입소문이 난 식당입니다.
2002년 배달 중에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쳐서, 배달을 할 수 없게 되자 과감히 가격을 낮춘 것입니다.
중국집은 배달이 생명인데, 배달을 할 수 없으니 난감했습니다.
가격만 낮췄다고 해서 사람들이 맛도 없는데 찾아오진 않습니다.
부부는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마침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짜장면과 짬뽕 등을 개발해 낸 것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300그릇에서 더 잘나갈 때는 500그릇 이상도 팔린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한 장소에서 같은 가격으로 장사를 하다 보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오던 어느 날.
단골손님이 찾아와 짜장면을 포장해 달라고 하시는 거에요.
종업원 없이 운영하다 보니 손이 한참 모자라 포장은 안 하거든요.
그런데 임종을 앞둔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저희집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하셨다는 겁니다.
며칠 뒤 그 손님은 다시 찾아와 아버님이 너무 맛있게 드시고 돌아가셨다며 감사하다고 몇 번을 인사하시는 데.. 장사하는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김영호 사장님은 짜장면을 왜 이렇게 저렴하게 판매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왜 이리 싸게 파냐고요? 욕심을 버리니 몸은 좀 고달프지만, 마음은 너무 편해집니다.”
욕심을 버리는 순간에 물질로 채워지는 인생이 아닌 행복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입니다.
욕심을 버린다고 해서 모든 걸 내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누릴 욕망, 쾌락의 죄악을 버리면 그때부터 행복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가득 채워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가득 채우는 예배의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믿음이란 어려운 것일까? 쉬운 것일까?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울 수 있고, 쉽다고 생각하면 그지없이 쉬울 수 있다.
믿음이란 없는 것을 만들어내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수용하여 내 의지로 고백하면 되는 것이다.
전혀 없던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면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이란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지금 있는 그것, 그 자체를 인정하고 고백하면 되는 것이다.
믿음이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능력, 권세, 주권, 꿈과 비전과 의지를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하면 되는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의 계획, 섭리, 뜻과 의지를 통하여 이루어가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하여 내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란 결코 어렵거나 힘들게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 보혈과 복음의 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백하면 되는 것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본래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그 믿음이란 것도 성령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감동을 주시고, 인정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셔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찾아오시지 않고, 감동을 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인정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고백하지도 못한다.
고린도전서12:3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러기에 믿음이란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으로 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어떤 믿음의 소유자일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이 가진 믿음의 수준을 보면서 신앙인들은 어떤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D4.
① 소문이 되어 찾아가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선포하신 산에서 내려와서 가버나움 마을로 돌아오신다.
가버나움이란 동네는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공생애 사역을 감당한 지역이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마을로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한 가지 부탁하게 된다.
2-3절에서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 등장하는 백부장이라는 사람은 로마 군대의 장교이다.
유대는 로마제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는 곳이기 때문에 별도의 군사가 없다.
별도의 군사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반역 행위가 된다.
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로마 군대의 장교라고 하면 그만큼 막강한 권력과 권세를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백부장은 막강한 권력과 권세를 지닌 사람이었지만, 선천적으로 선한 인격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에 종이란 신분은 전혀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존재이다.
종이라는 신분은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인격적인 대우를 전혀 받을 수 없는 존재이다.
마치 여러 동물들 중의 하나 정도로 취급받을 수 있는 사람이 종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백부장은 자신의 집에 있는 수많은 종들의 처지나 상황을 일일이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백부장은 자신의 집에 있는 종들 중에 어떤 종이 불치의 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 종이 걸린 병은 불치병이라는 암과 같은 질병이 아니었을까?
어떤 질병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불치병에 걸려서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는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종이란 신분은 사랑받을 자격,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 마치 동물의 한 부류와도 같은 존재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는존재이다.
그렇지만 종도 종 나름대로 주인을 잘 만나면 인격적으로 사람대접받는 종이 될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백부장이란 지체 높은 사람이 종을 사랑했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몹쓸 불치의 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메고 있는 그 종만 특별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백부장의 집에서 종살이하는 모든 종들을 사랑하는 맘씨가 착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모든 종들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인격이라면 과히 탁월한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백부장은 사람 됨됨이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 백부장은 자신이 로마 군대의 장교로 주둔하여 통치하는 갈릴리 지역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회당을 건축해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대인 장로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백부장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5절에서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백부장이 새롭게 회당을 지어주었더라도 백부장은 이방인이기 때문에 회당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회당은 오직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만 들어갈 수 있다.
무할례자는 회당에 들어갈 수 없다.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는 유대인들이 회당에 모여서 무슨 작당을 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도 로마 군대의 장교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유대인들만이 모일 수 있는 회당을 지어주었다는 것이다.
백부장은 식민지 지역인 갈릴리 지역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그 백성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토라를 낭독하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는 회당을 세워주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이 등장하는 지역이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이기 때문에 이 백부장이 가버나움 동네에 세워진 회당을 이 백부장이라는 사람이 건축해 주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현재 갈릴리 지역의 가버나움에는 예수님 당시의 회당터라는 유적지가 남아 있다.
가버나움이란 지역은 비교적 넓은 동네이고 많은 백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러 회당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러 회당들 중에 백부장이 직접 지어준 회당도 있었다는 것이다.
백부장은 로마 사람이요 로마 군대의 장교로서 막강한 권력과 권세를 지닌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집에 있는 종들이나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지역의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돌봐주고 배려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백부장이라는 사람은 선한 인격을 지니고 두루두루 선한 일로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 백부장의 집에 사랑하는 종이 몹쓸 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메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안쓰럽고 불쌍하고 측은하여 그 당시에 많은 이적들을 베풀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소문이 되어 찾아가시는 것이다.
소문이 되어 백부장에게 찾아가신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유대인 장로들의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 백성들에게 찾아가신다.
간혹 하나님께서는 좋은 소식, 좋은 소문이 되어 찾아가시기도 하신다.
때로는 좋지 않은 소문으로 찾아갈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는데도 우리가 어리석고 무지하고 둔하여 찾아오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언제나 신앙인들의 심령에 찾아오셔서 감동을 주시고 역사해 주시면서 이끌어가고 계심을 확신해야 한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
언제든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②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시기 위하여 찾아가시는 예수님.
예수님에 대하여 소문을 들은 백부장은 사랑하는 종을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소문대로 예수라는 사람이 진짜 치료하는 능력을 가지신 분일까?
백부장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종을 살릴 수 있는 좋은 길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밤을 지새운다.
하나님께서 백부장의 마음에 평소에 아주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유대인 장로들에게 부탁한다면 예수란 분이 도와주시지 않을까 하는 감동을 주신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나타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던 백부장은 유대인 장로들을 찾아가서 예수님께 자신의 종을 고쳐 달라고 부탁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백부장은 직접 예수님을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백부장은 자신은 로마인, 이방인이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예수님을 찾아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그래서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유대인 장로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백부장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예수님을 로마인인 자신이 직접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유대인 장로들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부탁드리는 편이 훨씬 더 낫겠다는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백부장은 아침에 동네에 있는 유대인 장로들 중에서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부탁하기로 결심한다.
유대인 장로들을 만난 백부장은 자신의 집에 있는 종이 몹쓸 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메고 있다고 하면서 예수님이란 분에게 자신의 종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정중하게 부탁드린다.
백부장의 부탁을 받은 유대인 몇몇 장로들이 예수님을 찾아가서 백부장의 부탁을 하게 된다.
유대인 장로들은 예수님을 찾아가서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라고 하면서 간절하게 예수님께 백부장의 종을 고쳐 달라고,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면 유대인 장로들은 친로마주의자들이었을까?
조금만 일본에 호의적인 마음만 가져도 친일파로 몰아가지 않던가?
조금만 중국에 호의적인 마음만 가져도 친중주의자들이라고 몰아가지 않는가?
그런 것처럼 유대인 장로들이 로마 군대의 장교인 백부장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을 보면 친로마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 앞에서는 친로마주의자들이건, 친일파이건, 친중주의자들이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를 보시는 분이다.
유대인 장로들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은 백부장의 집으로 발걸음을 옯겨가신다.
유대인 장로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백부장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요청하고 이에 예수님께서 응답하는 모습이다.
백부장이나 예수님은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이다.
백부장은 유대인 장로들, 곧 제삼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만약에 유대인 장로들이 예수님께 백부장의 하인을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유대인 장로들과 예수님 사이가 서먹서먹하고 원수처럼 여기면서 서로 좋지 않은 관계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모습을 보면서 중재자, 중매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중재자들, 중매자들, 브로커(broker)들의 연결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이나 결혼이나 취직이나 물건 매매 등등에 중재자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럴 때에 중재자들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불신을 조장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백부장은 유대인 장로들을 깊이 신뢰하였을 것이다.
예수님도 유대인 장로들을 신뢰하였을 것이다.
신앙인의 삶이란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 신뢰가 되는 사람,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신앙인들이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집으로 찾아가는 것일까?
그 사람이 로마 군대의 막강한 권력, 권세를 가지고 있는 백부장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찾아가시는 것일까?
이 사람이 귀족이거나 부자이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찾아가시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사람이 백부장이라는 신분, 귀족이라는 신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낮은 계층의 사람, 일반 평민이나 서민이었다면 안 찾아가셨을까?
예수님은 그 사람의 신분이 어떤가에 관심이 없다.
그 사람의 신분이 높고 낮음에 관심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신분의 정도나 학식의 정도나 사상의 정도나 가문의 인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이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으로서 가장 높고 높은 하나님, 가장 존귀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이라는 신분을 가지신 분이다.
그런데 그런 높고 높은 신분, 가장 존귀한 신분을 내려놓고 낮고 천한 지구촌으로, 인간세계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인카네이션하셔서 내려오신 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서 신분의 높고 낮음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에 초점을 맞추시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입을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시는 구령의 계획에 따라서 순종하면서 갖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영혼들을 찾아가시는 분이다.
예수님께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목자 없이 허덕이고 있는 영혼들,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영혼들을 찾아가시는 것이다.
아무런 조건없이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을 찾아가시는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아무런 조건없이 온갖 어려운 문제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신앙인들을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 위하여 찾아오시는 분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오늘 이 시간에도 신앙인들에게 찾아오시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섬기는 교회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크고 웅장한 교회니까 예수님께서 찾아오시고, 신앙인들이 섬기는 교회가 몇 명밖에 모이지 않는 작은 교회니까 예수님께서 안 찾아오시는 것일까?
예수님 앞에서는 세상적인 크고 작음이란 개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 앞에서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진솔하고 순수하게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사모하고 있는가를 보시고 찾아오시는 것이다.
③ 믿음을 칭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유대인 장로들과 함께 백부장의 집으로 찾아가신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집으로 가까이 갔을 때,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으로 오고 계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백부장은 급하게 예수님께 사람을 보낸다.
백부장은 급하게 사람을 보내서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집으로 오시지 않도록 만류한다.
백부장은 6-8절에서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하면서 “말씀 한마디만 해 주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집으로 오시는 걸음을 만류하고 있는 것이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라고 부르고 있다.
그 당시에 ”주여,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은 로마 황제를 비롯하여 로마인들을 향해서만 부를 수 있는 호칭이다.
그런데도 로마 군대의 장교인 백부장은 자신이 ”주인님이여“라고 들어야 할 호칭을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주인님이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백부장은 자신도 자신의 종들이나 자신이 이끄는 병사들에게 ”주인님이여“라는 호칭을 듣듯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향해서 ”주인님이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백부장은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주인님이 되기 때문에 자기가 그 사람에게 무언가라고 명령을 내리면 그 사람은 어김없이 순종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듯이 주인님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한마디 말씀만 하시면 내 사랑하는 종이 나을 겁니다. 라고 신앙 고백하는 것이다.
백부장의 뜻을 전해 들은 예수님은 9절에서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지지 못한 믿음을 이방인, 로마인이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면서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해 주신다.
이 백부장은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백부장은 본래 로마 사람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갈릴리 지역, 가버나움에 주둔한 로마 군대의 장교가 되어서 가버나움에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위하여 기꺼이 회당도 세워주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들려오는 소문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백부장의 마음과 생각에 찾아가셔서 큰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백부장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수준을 보면서 어떻게 하실까?
칭찬해 주실까? 아니면 ”왜 그리 믿음의 적으냐?“라고 책망하실까?
비록 보잘것없는 믿음이지만,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 만큼은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이 적은 자들아.‘이라는 책망을 듣는 것이 아니라, ’너의 믿음이 실로 크고 대단하구나.‘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 위하여 오직 예수님만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면서 옆도 바라보지 말고, 뒤로 돌아보지 말고 오직 위에 계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일편단심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④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소원대로 백부장의 집으로 찾아가지 않으시고 백부장 하인의 병을 고쳤노라고 선포해 주신다.
10절에 보면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니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능하신 예수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말씀 하나로 어떤 일이든 다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다.
예수님은 삼위 하나님의 일원으로 세상의 천지 만물을 직접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문제들, 아픔들, 질고들도 얼마든지 시공간을 초월하여 말씀으로 역사해 주실 수 있는 분이다.
문제는 우리가 전능하신 예수님을 얼마나 많이 믿음으로 의지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뿐이다.
신앙인들이 예수님의 마음에 흡족함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을 향하여 ’너의 작은 믿음이 너를 고쳤구나. 너의 작은 믿음으로 모든 문제와 아픔이 해결되었구나.‘라고 칭찬해 주실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L4 & B4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백성, 유대 백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믿음의 소유자가 된다.
백부장이 가진 믿음으로 죽을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메고 있는 사랑하는 종이 깨끗하게 소생하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입는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까?
아니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책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아닐까?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가룟 유다는 열심히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다녔지만 결국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책망받는 사람이 되고 만다.
가룟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파렴치가 되고 만다.
디모데후서 4:10에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고 소개하면서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였던 데마(Demas)라는 사람도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의 곁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는 데마를 칭찬한다.
바울은 골로새서 4:14에서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라고 기록한다.
빌레몬서 1:24에서도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라고 기록한다.
하지만 바울이 생을 마감하기 전에 로마 감옥에서 기록한 디모데후서에서는 데마에 대하여 세상을 더 사랑하여 주님을 떠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도 열심히 다니면서 끝 날까지 충성스럽게 섬기고 삼위 하나님으로부터도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신앙인들이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① 굳건하게 신앙의 절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의 절개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신앙인이라면 어떤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한지를 계산하면서 불리하다 싶으면 뒤로 빠지는 사람이라면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없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겨나더라도, 자신에게 해로움이 다가오더라도, 자신이 큰 손해를 입더라도, 어쩌면 자신의 생명에 큰 위협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시고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것이다.
② 순수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순수한 영혼과 마음과 생각을 소유한 사람이어야 한다.
약삭빠르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면서 손익을 계산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칭찬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반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한 사람이다.
어쩌면 우직하게, 좀 바보처럼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③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불평, 원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일이건, 좋지 않은 일이건,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입만 열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입만 열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을 들었던 백부장처럼 우리 모든 신앙인들이 삼위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신령한 축복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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