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의 권세 (마 12:30-37)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 시간에 “입술의 권세”라는 제목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바른 입술 사용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입술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보통 문제가 아닌데 그것은 그 결과가 크다는 것입니다.
약3:5-6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그 결과를 지옥불에 비유했습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도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입술을 조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언어는 인격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34-35절에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하셨습니다. 말이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여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 가득한 것이 말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민은 모이면 농사 이야기하고, 어민은 고기 잡는 이야기, 운동선수는 경기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로 꽉 찬 성도는 입만 열면 찬송과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이처럼 말은 내 안에 쌓아 두었던 것, 기존에 내가 늘 생각했던 것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들어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영까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언어는 인격의 표현일 뿐 아니라 언어가 인격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약3:2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여기 말이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했는데, 이처럼 착한 말은 그 사람을 착하게 만들고, 악한 말은 그 사람을 악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언어 교육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좋은 말을 쓰면 그 인격도 그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말도 그렇습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엡4:29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했습니다. 이것이 입술을 조심해야 할 이유입니다.
2. 언어에 생과 사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31-32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유대의 속담에 “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혀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했습니다. 야고보는 우리 혀를 불이라 했습니다. 말 한마디가 산천을 태웁니다(약3:5-6). 구원받는 것도 말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롬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셨고, 13절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시50:15에도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했습니다.
우리 심령이 살려면 입술이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약할 때도 소리를 내면 강해집니다. 건강해지려면 여러분의 입술이 살아야 합니다. 늘 찬송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합술사들도 소리를 질러야 기합이 들어가서 돌을 깹니다. 이처럼 성도가 입을 열면 천지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입을 열어 성경을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면 하늘의 능력이 임합니다.
십자가의 한 강도는 “주여 낙원에 이를 때에 나를 기억 하옵소서” 이 한마디로 구원 얻었습니다. 마10:32-33에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말에 생과 사가 달렸습니다.
잠6:2에는 “네 입의 말로 내가 얽히게 되었으며 네 입의 말로 내가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말은 흥하게 할 수도 망하게 할 수도, 세울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말로 신앙을 고백하거나 말로 예수를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입으로 성령을 훼방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훼방죄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훼방죄가 뭘까요? 직접적으로 성령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것도 훼방죄겠지만, 성령훼방죄를 말씀하시기 전에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이 말씀을 하신 후에 "그러므로"라는 부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령훼방죄란 하나님의 일에 방해를 놓은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를 전하는 것인데 예수를 부정하고 복음 전도를 방해한다면 성령 훼방죄가 됩니다. 한 예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 비방하고 복음을 방해할 때 성령훼방죄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말고도 구원이 있다는 자들이나, 예수의 이름을 사칭하는 자들이야 말로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할 죄입니다.
3. 자기가 한 말을 책임질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36-3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우리의 말에 대한 책임을 묻는 날이 옵니다.
그예로,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파송했을 때 이길 수 없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믿음의 말을 했던 사람만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이에 대해 민14:28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리는 대로 그대로 갚아 주리라” 이처럼 자기가 한 말을 책임지게 됩니다.
또 한 예로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자기들의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불러도 나오지 않았으면서도 승리하고 나니 그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무시했다고 부르지 않았다고 불평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신 전쟁의 영웅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로 일어난 자는 말로 망합니다. 기드온에게도그러더니 입다에게도 그 못된 행위하다가 에브라임 사람 4만 2천 명이나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당했습니다. 그때도 말로 심판했습니다. 삿12:5-6을 보면 요단 강 나루턱을 지키고 있다가 "쉽볼렛"이라는 발음을 못하고 "십볼렛"이라고 발음하면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습니다.
‘쉽볼렛’이란 ‘곡식’을 가리킵니다. 우리나라도 어느 지방은 “쌀” 발음을 못하고 “살”이라 한 것처럼 에브라임 사람들은 곡식을 '쉽볼렛'이라는 발음을 못하고 십볼렛이라고 한 것입니다. 말 잘못했다가 말로 심판을 당한 것입니다.
옛날 그리스에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흥분하여 스승에게 달려왔습니다. "제가 방금 길에서 스승님의 친구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잠깐! 그 이야기를 나에게 말하기 전에, 세 개의 체를 통과시켰는지 확인해 보았느냐?" "세 개의 체요? 그게 무엇입니까?"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첫 번째 체는 진실의 체다. 네가 말하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이라고 확신하느냐?", "아닙니다. 그냥 길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체인 '선함의 체' 를 통과시켜 보자. 네가 말하려는 것이 듣는 나에게 선하고 유익한 이야기냐?" "음... 좋지 않은 내용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체는 '필요의 체'다. 네가 굳이 지금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할 필요가 있느냐?" "생각해보니 꼭 필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진실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으니, 너의 마음속에 그대로 두어라. 말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했다고 합니다.
성경은 교훈합니다. 엡4:29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 잠18:21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경고로 들려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그 소리가 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언어는 인격의 표현이요, 생과 사의 결과가 따르며, 인생을 좌우하며, 마지막 심판 날까지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떤 일이 있어도 입술을 잘 관리하여 믿음의 말 사랑의 말 지혜의 말을 하는 가장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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