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등불처럼 말씀으로 살아봐요 = 누가복음8;16-18(251019)

열려라 에바다 2025. 10. 17. 13:26
스크랩 등불처럼 말씀으로 살아봐요 = 누가복음8;16-18(251019)
 
한상원목사추천 0조회 4725.10.16 08:16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PW : 믿음           BIW : 밝히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말씀이라는 등불을 환하게 밝히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잠수함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담임하는 아이들에게 문제를 하나 냈습니다.
“8명이 정원인 잠수함에 5명이 탔는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왜 그럴까? 왜 가라앉았을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제각기 생각나는 대로 이렇다. 저렇다 대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가라앉았다고 생각되십니까?
정답은 잠수함이기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문제 속에 답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문제 덩어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서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 문제 안에 해답이 담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 속에 들어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믿음의 눈, 영안이 활짝 열려야 합니다.
믿음은 해답을 볼 수 있는 눈을 활짝 열어줍니다.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지금 우리나라에는 산골 오지까지도 전기가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전국 어디든 전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 일부러 등불을 켜지 않는 이상, 등불을 켜서 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도 시골이나 산골에는 등불을 켜서 살았었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오지, 남미의 아마존강 주변과 같은 지역에는 등불을 사용한다.
전기 시설이 없기 때문에 전기불 대신에 등불을 켜서 사는 것이다.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최첨단의 시대에도 북한 땅이나 중국의 깊은 산골이나 오지에는 아직까지도 등불을 켜서 살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도시에 살았던 분들은 등불을 본 기억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저의 집에 고등학교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었다.
저가 아주 어릴 때에는 종재기에 참기름을 조금 넣고 실로 심지를 만들어서 등불을 켰던 기억이 있다.
저가 아주 어릴 때에는 참기름은 있었는데, 들기름은 구경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들깨로 들기름을 짠다는 것은 청년의 때에 저가 대구에서 대학 생활하면서 알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종재기에 참기름 조금을 넣고 심지를 만들어서 아주 조그마한 등불을 켜서 살다가 마을에 등유가 공급되면서 등불을 켰고, 촛불도 켜서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었다.
등불이나 촛불을 켜서 공부하다가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코에 시커먼 먹물같은 그을음이 묻어 있곤 했었다.
부산에서 대학을 가려고 재수할 때 독서실에 살면서 공부했었는데, 일부러 전기를 합선도 시켜보고 연결도 시켜 보면서 스스로 전기 사용 방법을 배웠었다.
그때 엉터리로 배운 전기 사용 방법이 오늘날까지 작으마한 것들은 남의 도움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등불이 보여주는 빛이란 존재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신다.
창세기 1:1-5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온 천지에 아무 것도 없어서 공허할 때,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고 빛과 어둠으로 나누셨다고 말씀하신다.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다.
빛을 창조하시고 너무나 좋아하신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빛으로 세상에 보내신다.


예수님께서는 등불이란 소재를 가지고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시려고 하신다.
예수님 시대에 중동지역, 이스라엘에는 올리브기름으로 등불을 켜서 살았던 시절이다.
중동지역, 이스라엘 땅에는 올리브기름이 아주 흔하다.
이스라엘에는 올리브 열매가 흔하디흔한 열매이었기 때문에 올리브 열매로 기름을 짜서 올리브기름을 식용으로 먹기도 하고, 등불을 켜기도 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인 배경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등불을 가지고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다.
가정마다, 회당마다 올리브기름으로 등불을 켜서 생활하는 것이 아주 보편화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등불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등불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하시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등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등불을 통하여 어떻게 살라고 권고하시는 것일까?


D4.


 등불의 역할을 설명하시는 예수님.


16절에서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등불을 숨기기 위해서 등불을 키는 사람은 없다.
등불은 주변을 조금이라도 환하게 밝히기 위해서 등불을 켜는 것이다.
등불의 크기에 따라서 좀 더 밝을 수도 있고 조금만 밝을 수도 있지만, 어쩌튼 등불을 켜는 이유는 주변을 조금이라도 밝게 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등불이 빛을 비추지 못한다면 이미 등불로서의 존재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등불은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17절에서는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등불을 켜게 되면 어느 것이라도 숨길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고,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어두컴컴할 때에는 무언가라도 숨기거나 감출 수 있겠지만, 빛이 들어오면 더 이상 숨길 수도 없고, 더 이상 감출 수도 없다.
하나하나 낱낱이 보이고 드러날 수밖에 없다.


빛이란 존재는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것들중에 하나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기에 빛이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이고, 빛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다.
천국을 빛이라고 비유하고, 지옥을 어둠이라고 비유하는 것이다.
빛이 없는 세상은 암흑의 세계요 사단과 마귀와 어둠의 악한 영들, 죄악과 거짓과 가짜와 미혹과 유혹이 판치는 세상이다.
선동선전이 난무하는 세대, 온갖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세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빛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 말씀의 빛만이 유일한 길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의 복음으로 어둠의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을 때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 하나님 나라의 예표가 되는 교회는 어떤 역할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실까?
우리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실까?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던가.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주는 빛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빛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을까?
주님께서 교회를 세워주실 때 분명한 사명을 주시고 교회를 세워주신다.
그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지구촌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실 때에는 분명한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복음이 복음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복음으로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와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등불처럼 보이며 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18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라고 말씀하신다.
등불에 대하여 말씀하시더니 18절에서는 전혀 등불과는 상관없는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들린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조심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이야기하시다가 이야기를 바꾸어서 무엇을 들을 것인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듣는다는 것은 등불을 듣는다는 말일까?
등불을 어떻게 듣을 수 있을까?
등불은 좀 더 높이 들러져야 하는 것이고, 등경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환하게 주변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들을 것인가? 하는 문제, 듣는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일까?
듣는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누가 하시는 말씀의 내용을 듣는다는 의미이지 않나?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말씀을 듣는다는 의미이다.
등불을 이야기하시다가 왜 말씀을 들으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서 등불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할 것인가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씨앗 뿌리는 농부 이야기에 덧붙여서 등불을 예화로 사용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과 등불은 서로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 십자가 보혈과 복음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등불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다.
등불은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숨기는 것이 아니다.
등불은 숨길 수 있는 성격이 아니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숨길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등불은 꽁꽁 남몰래 숨겨놓은 것들까지도 낱낱이 드러내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꽁꽁 남몰래 숨겨놓은 죄까지도 낱낱이 환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시편 119:105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신다.
 6:23에서는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라고 말씀하신다.
 20:27에서도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16-17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4:12-13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등불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 빛의 말씀이다.
등불은 바로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이다.
이 말씀과 복음이라는 등불을 환하게 밝히면 모든 죄악도 드러나고, 못난 인격과 성품과 성격도 낱낱이 드러나고, 인간의 추악한 탐욕도 드러나고,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하는 불신앙도 드러나고, 교만하고 거만하고 거드름 피우려고 하는 죄악들도 다 드러나는 것이다.
복음의 빛이 환하게 밝혀지면 죄악은 드러나고, 악인도 드러나고 밝혀진다.
악인들, 죄악은 영적으로 어두울 때에는 얼마든지 숨길 수 있겠지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찾아오면 더 이상 죄악도, 악인도 숨길 수 없이 다 드러나고 만다.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사명자이다.
어둠의 세상, 죄악된 세상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끝이 난다.
죄악들, 추악한 음모들을 영원히 숨길 수 있고, 감출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더 이상 숨길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이 다 밝혀지고 만다.
악인들의 추악한 계획들, 음모들도 다 들통나고 만다.


 말씀을 제대로 깨달으면서 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18절에서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있는 자는 받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긴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
말씀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스스로 조심하면서 말씀을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은 말씀을 들어서 잘 깨달으라고 하시는 의미이다.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를 이해하고 인지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하게 머리로만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은 온 몸으로, 56부로, 온 영과 맘과 뼈와 온 피부로, 오감으로 이해하고 느끼고 체험하고 인지하고 고백하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은 단순한 책도 아니고 단순한 글자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현재, 지금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인격이나 다름없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읽고 듣고 보는 것으로만 끝나버리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주시려고 하시는 진정한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감을 통하여, 온 몸과 맘과 영혼을 다하여,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글자를 통해서 주시려고 하셨던 진정한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게 되면 깨달은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예비해 놓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데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지하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던 은혜마저도 몽땅 빼앗기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어야 하고, 제대로 인지해야 하고,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지하고 깨달아서 그 말씀을 붙들고 지키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100, 그 이상의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깨달은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준비한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이다.


L4 & B4


미국 조지아주에 '마르다 벨'이라는 여선생님이 있었다.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너무 가난한 시골학교라 학교에 피아노가 없었다.
선생님은 당시에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에게 1,000불만 보내달라고 간곡한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헨리 포드는 그 편지를 받고 마음이 상하였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헨리 포드에게 돈을 요구해서 받아갈 때는 사정 사정해서 받아 가지만, 대부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것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도 그냥 거절할 수가 없어서 10센트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1,000불을 달라고 했는데 1달러도 아닌 10센트를 보냈으니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우리 식으로 말하면 1000원도 아닌 100원을 보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그 돈을 감사히 받아서 10센트만큼의 땅콩을 사서 운동장 한 구석에다 심었다.
얼마 후에 땅콩을 수확해서 얼마 정도의 이익금을 내게 되었다.
그는 그 돈에서 얼마를 떼어서 헨리 포드에게 감사의 편지를 담아서 보내주었다.
또 다음 해에도 더 많은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게 되었다.
그 결과 5년 만에 피아노를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헨리 포드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헨리 포드는 여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너무 기뻐서 선생님이 요구한 1000불의 10배나 되는 10000불을 보내면서 거기에 당신이야말로 내가 미국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오. 나는 당신에게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보내오. 나는 당신을 만나므로 감동을 받았소.”라는 편지를 동봉하여 보냈다고 한다.
선생님은 헨리 포드가 보낸 10센트를 받고 불평과 불만을 심은 것이 아니라, 적게 주었다고 원망의 씨앗을 심은 것이 아니라, 감사의 씨를 심어서 엄청난 하늘의 수확을 거둔 것이다.
땅콩의 수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등불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등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제대로 깨달으면 더욱 더 큰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면 그나마 좋았던 건강도, 양심도, 인격도, 성품도, 인간관계도 몽땅 다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인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제대로 깨닫고 깨달은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 보혈과 복음의 등불을 환하게 밝히면서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씀에 푹 빠져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넓고 깊은 바다와도 같다.
커다란 선박이 망망대해를 거침없이 항해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깊고도 넓은 바다에 푹 빠져서 살면 그 말씀에서 주어지는 온갖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보물들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저가 신학교에서 성경을 강의할 때, 신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성경이 재미있다고 한다.
성경이라는 망망대해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메시지를 캐낼 때, 마치 금은보화를 캐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푹 잠겨서 말씀 속에 담겨있는 온갖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라는 금은보화를 캐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성경이 재미있어지고 더 많은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사모하며 정말로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을 만나면서 신앙생활 할 수 있다.


 말씀을 잘 갈아주어야 한다.


말씀은 칼이라고도 말한다.
칼은 잘 갈아주어야 한다.
칼을 잘 갈아주지 않으면 무디어서 채소를 썰 때도 힘들어진다.
하지만 칼을 숯돌에 잘 갈아주면 요리하는 주부들이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게 요리하여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말씀도 잘 갈아주어야 한다.
말씀을 잘 갈 수 있는 숯돌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영성과 직결된다.
내 영성이 무디면 무딜수록 성경은 무의미해지게 된다.
내 영성이 순수하고 맑고 밝으면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도 순수하게 다가오고, 맑은 말씀으로 다가오고 밝은 말씀으로 다가오신다.
영성은 하나님 나라와 신령한 축복을 기대하며 깊은 묵상을 할 때 주어진다.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며 기도할 때 영성은 더욱더 깊어지고 높아지고 길어진다.


 말씀과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말씀과 동일 선상, 말씀과 평행선을 이루면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곧 언행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은 청산유수처럼 잘 읽고 외우고 외치는데, 삶은 전혀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아니라 죽은 말씀이 되고 만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잃어버리는 이유가 바로 언행일치하지 않는 삶, 불일치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신앙인도 연약하고 죄많은 사람이라는 옷, 인간이라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고, 온갖 욕심을 드러낼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다고 인정해 주시는 다윗도 헤아릴 수 없는 죄악를 저질렀고, 실수도 하고, 탐욕도 드러내면서 살았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 앞으로 돌아오는 회개의 삶을 살았다.
다윗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회개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다윗을 지켜주시고,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항상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건져주시고 건져주신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이라는 등불을 환하게 밝히면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신앙인들에게는 기쁨이요 소망이요 희망이요 은혜와 능력과 권세가 함께 하시는 복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