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편 2절.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주의 의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냐? ‘의’란 ‘옳음’이라는 뜻인데, 주의 의는 예수님을 안 믿는 일반세상에서 말하는 사회적 윤리 도덕적인 의도 아니고, 이방 종교적인 의도 아니고, 바리새인들의 율법적인 의도 아니다. 주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하나님의 지공법 앞에 만족을 드린 의로서 예수 믿는 사람이 본질적 본성적으로 이 의로, 이 옳음으로 만들어지면 만물이 다 알아주고, 의의 세계인 천국에서도 천군천사들과 모든 성도들이 알아주고, 주님과 함께 영광중에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된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이 의를 주고 싶어서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옳은 모든 것을, 지식적인 면의 옳음, 지혜적인 면의 옳음, 선적인 면의 옳음, 사랑적인 면에서 옳음, 거룩적인 면에서 옳음, 진실적인 면에서 옳음, 주권적인 면에서 옳음을 주고 싶어서 하는 말씀이다.
주님의 의는 영원히 옳음이다. 내가 이 옳음을 가지면 내가 영광스러워진다. 이 의는 모든 지식 위에 뛰어나고, 모든 지혜 위에 뛰어나고, 모든 만물이 이 의 앞에 순종할 수밖에 없고, 이 의 앞에는 만물이 다 동원될 수밖에 없는 옳음이다. 이걸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옳음에는 모든 것이 동원이 된다. 이 의는 이방종교계에서 가지는 개념의 능력이 아니라 모든 것이 동원이 되는 옳음이다.
절대적인 이 옳음에 요나를 삼킨 큰 고기가 동원이 되고, 만물이 다 동원이 되고, 파리 떼가 동원이 되고, 메뚜기 떼가 동원이 되고, 하늘의 우박이 동원이 되고, 비가 동원이 되고, 동원이 안 되는 것이 없다. 단순히 주님은 만능의 능력자니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절대적인 옳음이기 때문에 만물이 다 이 의에게 순종을 하는 거다. 이걸 알아야 한다. 이 절대적인 의에 만물이 순종을 하고 만물이 동원이 되는데, 인간이 이 의에서 벗어나면 주의 의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하는 만물들에게 인간이 오히려 얻어맞는다. 파리와 모기떼에게 공격을 당한다. 모든 질병에게 공격을 당한다.
주님의 의는 죄와 사망을 정복한 의요, 세상을 이긴 의요, 유혹과 미혹을 이긴 의요, 영원한 생명적 의요, 영생을 심는 의요, 심어지면 하나님을 닮는 의다. 모든 죄적 사망적인 유혹을 다 이기고 승리하고 자유자가 될 수 있는 의다. 하나님의 의의 말씀이 이런 신비로운 역사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역사하는 힘이 크다. 사람의 속을 바꿔놓는 역사를 한다. 자기가 이 역사에 안 바꿔진다면 자기 재앙이다. 자기 앙화다.
인간은 만물 위에 자유해야 되겠는데, 왜 자유하지 못할까? 인간은 하나님 다음의 통치자인데, 즉 신령천국은 하나님 당신이 다스리고, 세상을 만들어 놓고 ‘인간 네가 한 번 다스려 봐라’ 라고 맡기셨는데 왜 못 다스렸을까? 먹으라는 생명과는 안 먹고 먹지 말라고 한 자기 눈에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선악과를, 즉 자기 주관을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죄가 들어왔고, 살인이 들어왔고, 공포가 들어왔고, 죽기 싫어하는 게 들어왔다.
타락된 세상에서도 그들 나름대로의 옳은 것으로 살지 않으면 고통으로 떨어지게 된다. 내 마음대로 산다?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아라. 인간은 인격자로서 세상에서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자기 고집, 자기 생각만 가지고 사는 세계가 아니다. 일반사람으로서 일반적인 의를 따라 살지 않으면 자기는 그만큼 점점 외톨이가 되고 왕따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하나님이 없이 사는 세상이라고 해도 자기 혼자만 잘 살려고 한다면, 자기 주관대로만 살려고 한다면 어떻게 잘 살아지겠느냐?
인간은 원래가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면서 기쁨과 만족과 평안으로 살 존재들인데 이 원리원칙에서 이탈된 자기를 전혀 모른 채 무조건 돈을 따라가고, 무조건 먹을 것을 따라가고, 무조건 세상을 많이 가지려고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불에 타지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불 탈 때 세상 것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자기는 그만큼 불에 오래 탄다. 그만큼 고통이 심하다. 반대로 적게 가졌으면 그만큼 적게 탈 것이다. 고통이 그만큼 감소가 되는 거다. 이치가 그렇지 않느냐? 그럼에도 왜 하나님의 의를 실어할까?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의가 없고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다. ‘주의 의’라고 할 때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의 의, 그리고 이 의를 자기 것으로 가진 성도의 의가 있다. 성도가 가진 의는 주님의 의다. ‘주의 의’라는 말 속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의는 사망적인 의요, 사망권 아래 있는 의요, 사망권 안에 머물고 있는 의다. 이 사망권의 구렁텅이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주님의 의다. 하나님의 의다. 주의 의라야 만이 죄와 세상에서 자기가 건져진다. 주의 의가 아니면 안 건져진다. 타락된 인간세상의 의를 가지고는 안 건져진다.
인간들이 다 의라고 할 때 내가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들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된다. 그들이 가진 의는 땅의 차원이지만 믿는 우리가 가진 의는 그들의 의보다 훨씬 높다. 하늘이다. 질이 그렇다.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아라.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어련히 잘 아시겠느냐?
영원히 옳음인 하나님의 옳음이 아닌 인간의 의는 진리가 아닌 죄악적이요 비진리적이요 사망적인 의다. 영원히 옳음이 아닌 세상에 속한 것은 전부가 사망적이다. 이 사망적인 구렁텅이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누구의 의밖에 없다? 주님의 의밖에 없다. 다른 의는 절대로 없다. 도사니 철인이니 하는 사람들이 가진 의는 선악과 따먹고 타락된 데서 나온 사망에게 먹힌 의이지 하나님의 의가 아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주님은 부활을 했는데 그들이 절대적으로 옳다면 왜 부활을 못했느냐? 주님은 옳기 때문에 죽음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거다. 주님의 의는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의다. 주님의 의는 하늘의 의이기 때문에 당신은 하늘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거다. 이치가 그렇지 않느냐?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생명의 도요 특수적인 도다. 이걸 알아야 한다.
신탄진에서 공부(주-김경형목사님이 신학생 및 교역자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를 마친 후에 근처 가게에 들어가서 군것질거리를 사려고 하는데, 주인과 얘기를 해 보니 이 분이 예수를 믿다가 불교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이제는 완전히 불교의 골수분자가 되었다고 한다. 늘 불교서적을 읽는다고 한다. 이거 악한 귀신이 들어도 보통 든 게 아니다. 불교와 기독교가 같으냐? 하나님과 석가가 같으냐? 어찌 같으냐? 귓구멍이 꽉 막혀버렸다. 사람이 완전히 망해버렸다. 우리 기독자들 가정에서는 절대로 이방종교를 믿는 가정에 시집 장가를 보내지 말아라. 이건 저주다.
그 소리를 듣고 속에서 어떻게 분이 나는지? 그 사람이 불교를 믿던 말던 내가 왜 분이 나는 거냐? 인간 자기를 만드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알았기에, 그리고 그 분이 나가던 목사가 어떻게 가르쳤기에 그 모양이 된 거냐? 어떻게 분이 나는지 ‘이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 사람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얼굴이 있는 건데 어떻게 돌부처와 하나님을 바꿉니까?’ 라고 하며 막 저주를 해 버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분에게 저주를 주어서 그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든가, 최악으로 고통스런 사건을 만났을 때 복음이 생각이 나서 회개케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
기독교 외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타 종교에는 하나님의 의가 없다. 눈을 까고 봐도 하나님의 의는 없다. 공자나 석가나 소크라테스나 예수 그리스도를 같이 여긴다면 너는 저주다. 너의 잘못된 지식으로 네가 망하는 거다. 교회에서 세상의 의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개념으로 성경을 풀어주면 온 교인은 사망적이며 비진리적이며 죄악적인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빠져 죽게 된다. 이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교회에서 이런 가르침이 거짓 종들의 가르침인데, ‘예수 믿으면 부자 되고 세상에서 만사형통되고’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거나, 이런 가르침을 받는다면 너는 사망 아래 있다. 그 사고방식, 이해타산, 평가성이 전부가 저주 아래 있는 거다.
‘너희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고 먼저 우선적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다른 모든 것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옳은 지식, 옳은 지혜, 옳은 활동을 하게 되면 그 뒤에 세상 것은 따라오게 되는 거지 세상 것을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 것은 거짓된 신앙이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우리 모두 다 건져졌느냐, 어린아이가 똥을 싸고 뭉개는 것처럼 아직까지 세상적 차원의 지식에 머물러 있느냐, 아니면 한참 올라오고 있는 중이냐?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정신이 뭐냐?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 주님의 의는 사람을 묶어놓는다, 풀어놓는다? 풀어놓는다. 어디에서 풀어주느냐? 타락적 기존지식에 얽매인 것에서 풀어준다. 자유자로 풀어주신다. 생명과 영생의 지식을 먹여서 타락적인 지식에 얽매이지 않게 풀어준다. 풀림을 받은 사람은 ‘아, 이런 지식에는 내가 얽매이겠구나. 노예가 되겠구나. 죄의 노예, 세상의 노예가 되겠구나’ 이것을 알게 된다.
선악과 따먹은 지식을 자기의 기준적 지식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저주 받은 지식에 매여 있는 것이고 환경의 노예가 되고 만다. 환경의 소산이 되고 만다. 인간이 환경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환경이 인간 자기에게 ‘울어라’ 하면 울고, ‘웃어라’ 하면 웃고 하는 환경의 소산이 된다.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자기 주머니에 돈이 가득 차면 웃음이 나오느냐, 펑펑 울고 싶으냐? 자기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울고 싶으냐, 마냥 자유롭느냐? 어떤 자기냐 그 말이다.
사람의 생각이 저질이 되면 죄에, 환경에 매이게 된다. 매이면 자유가 없어진다. 이러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도 안 된다. 이게 창살 없는 감옥이다. 남이 이 감옥에는 가두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둬진 거다. 이러면 막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을 보면 자기 탓을 하더냐, 남 탓을 하더냐? 남 탓을 한다. 왜 남 탓을 하는 거냐? 선악과 따먹고 타락된 지식을 자기의 기준적 지식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궁극교회 교인들은 진리지식, 영생의 지식, 생명의 지식, 하나님의 지식이 기준이 되어서 매사를 이 지식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 이게 주의 의의 판단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안 믿는 사람들처럼 자기의 원 지식, 기존적 지식, 선악과 따먹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평생을 자유하지 못하고 결국은 그 지식으로 자기가 죽는다.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주님의 귀를 어디에 기울여 달라? 나에게. 그리고 또 어떻게 해 달라? 나를 구원하소서. 우리는 기도를 할 때 주님이 내 기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을 하실 수 있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러면 응답 받는 기도가 어떤 것일까? 1. 누워서 하는 기도다? 2. 하나님 앞에 건방지게 누워서 기도를 할 수는 없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하는 기도다? 3. 서서 두 손을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하는 기도다? 4. 제일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는 기도다? 5. 빨리 응답을 받으려면 뾰족한 바위 끝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하는 기도다? 이러면 떨어져 죽을까봐 겁이 나서 하나님께서 빨리 들어주신다?
지금 말한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나무뿌리를 몇 개 뽑았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기도하면서 나무뿌리를 뽑게 되면 하나님께서 빨리 안 들어주었다가는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게 되니 빨리 들어주시는 거냐? 이런 것들은 다 인간의 외형적인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는 거다. 기도할 때 왜 무릎을 꿇는 거냐? 바위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는데, 약대무릎처럼 되면 하나님께서 이걸 보시고 ‘아이고, 불쌍해라. 네 신앙 믿음이 참 좋구나’ 하며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을 해서 그러는 거다. 이거 다 못쓴다. 하나님 앞에 외식이다.
6. 응답 받는 기도가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면서 목구멍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용을 써야 들어주신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소리를 질러야 들어주시는 거냐? 이렇게 해서 목소리가 걸걸해진 사람은 자기가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을 한다. 또 그런 사람을 보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게 다 외식자다. 몹쓸 짓들이다. 7. 응답을 받는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놓고 하는 거다? 하나님의 계약대로 언약대로 기도를 하면 약속대로 이뤄주신다. 다시 말하면 ‘네가 이렇게 기도하면 내가 들어주마’ 라고 한 대로 기도를 하면 들어주신다.
최고의 값진 기도가 어떤 기도냐? 최고의 값진 기도는 돈에 있다? 일에 있다? 몸 밖에 있다? 몸 안에 있다? 어느 거냐? 돼지를 위해 기도하는 거다? 닭을 위해 기도를 하는 거다? 개를 위해 기도를 하는 거다?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는 거다? 어느 기도가 값진 기도냐?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게 가장 값진 기도인데, 사람의 육을 위해 하는 기도냐, 영을 위해 하는 기도냐? 우리의 영인성장이 잘 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척척 해결이 된다. 일에 대한 처리를 잘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볼 수 있다. 자기는 육신위주로 살면서, 세상위주로 살면서 목사님에게 축복기도를 해 달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사람은 육신의 일이 잘 되는 것이 영의 일이 잘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거다. 인본주의, 세상주의, 육본주의의 신앙으로 살면서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할 때는 그렇게 생각하는 생각이 뒤집히도록 기도를 해야 되겠고, 뒤집어지게 하려면 주님의 뒤집는 역사가 와야 되겠고, 뒤집는 역사란 사건을 들고 오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만이 잘못된 생각과 정신이 바꿔진다. 이런 다음에 진리가 들어가야 희망이 있는 거지 옛사람이 주격이 된 채로 계속해서 육본주의 신앙사상으로 나간다면 이 사람에게는 절대로 진리사상이 안 들어간다.
이치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넣는 거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넣는 거다. 이게 무슨 말이냐? 기본적인 진리구원의 사상을 가졌을 때 여기에 진리이치 생명이치 도덕이치를 넣을 때 잘 들어가게 되는 거지 이방 세상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옛사람 부패성적인 사고방식에는 진리가 들어가지를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진리사상을 넣어주지 않으신다. 사람이 바꿔지기 전에는 안 들어간다. 이치적으로 생각을 해 봐라.
옛사람이 주격이 된 세상주의의 신앙사상은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성격이나 성질이 나쁜 사람을 보면 자기 스스로가 되게 짜증스럽게 산다. 항상 환경을 탓하고, 원망성이 항상 남에게 있기 때문에 늘 짜증을 부리며 산다. 알고 보면 자기가 짜증스러워지는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들고 있는 건데 그 탓을 항상 사건에, 다른 사람을 향해 한다.
사람 덜 된 사람은 아무리 비단 이부자리를 펴 놔도 짜증은 여전하다. 속에 근심 걱정이 가득 든 사람이 헌 이부자리에 누우면 잠이 안 오고, 비단 이부자리를 펴 놓으면 잠이 잘 오겠느냐? 이런 사람이 기도를 할진대 오는 사건을 잘 이길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는 것밖에 없다. 마음과 정신 사상을 고치기 전에는 자기에게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주님의 의를 중심하여 자타에게 영원 궁극적 구원을 이루는 기도가 최고의 기도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 이 말이 무슨 뜻이냐? 뒤에 보면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했으니까 죄에서, 세상에서 자기를 구원해 달라는 거다. ‘구원’ 안에는 신령한 것이 들어 있고 하나님의 것이 들어 있다. 타락된 인간의 것은 안 들어 있다. 하나님의 것이 와야 자기가 자유로운 자가 되고 실력과 능력이 있는 자가 되는 건데, 이게 다 구원 안에 들어 있는 거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내 기도는 자타의 구원에 관한 기도이니 나의 이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이 말이다. 그러니 맞는 말이고 맞는 기도이기 때문에 들어주신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돈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자 하오니 내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라고 하는 세상을 위한 기도는 안 들어주신다.
예수를 믿고 진리이치를 깨닫고 새사람이 되면 세상이 그 전처럼 보이지를 않는다. 사람이 달라지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면 짜증나는 세상, 죽고 싶은 세상으로 보이고, 큰 아파트를 보며 ‘나는 언제 저런 집을 가지고 사나?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는 죽을 때까지 모아도 저런 아파트를 못 살 것인데’ 라고 하며 한탄이나 하고, 요행이나 바라면서 로또나 사고 한다. 이런 마음은 사람이 안 된 거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말씀으로 다시 지음을 받았으니, 사고방식이 바꿔졌으니 생각을 해 봐라. 세상에서 눈물이나 흘리고 한숨이나 쉬면서 속병이 들어서 밥도 못 먹으며 살고 싶으냐?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 왜 자기가 자기를 이렇게 만들어 가면서 사느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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