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자의 신앙고백
역대상 29:10-17
제 주일학교 선생님이셨던 목사님의 목회간증입니다.
어렵게 목회할 때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은 여자 청년이 새벽기도회를 나오면서 건축헌금을 했습니다.
봉투가 꽤 두툼해서 얼마나 되나 세어보았더니 600만원이었습니다.
당시 개포동 2단지 독신자 아파트가 300만원이었고
은마 아파트 33평도 3,300만원이면 살 땐데 600만원은 목사님이 만져보지도 못한 큰돈이었습니다.
송 선생은 연립 지하방에서 부모님과 동생들 둘, 다섯 식구가 월세로 살고
부모님은 교회도 안다니고 송 선생과 두 남매 동생들만 나올 때입니다.
은행에 다니면서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몽땅 헌금으로 드린 것입니다.
도저히 받을 수 없어 돌려주면서 ‘하나님이 다 받으시고 사정을 아시니까 갖고 있다가 결혼할 때 사용해.’ 그러자
‘이것은 목사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에요.’
결국 그 돈을 헌금으로 받고 송 선생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몇 년 후 결혼한다고 해서 사정을 들어보니 7살 연하의 대학생남자가 누나가 좋다고 쫓아다니다 청혼을 한 것입니다.
안된다고 극구 반대했지만 그 마음을 꺾을 수 없어서 승낙했는데 남자 부모님을 만나보니 군산에서 내 노라 하는 잘 사는 집이었습니다.
다른 것 필요 없으니 몸만 오라고 해서 결혼식을 하고 여의도에 제일 큰 아파트를 사서 집에다 사무실을 차리고 무역업을 했는데 정말 사업이 잘됐다는 목회경험담입니다.
어떤 성자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나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은혜만 더 주시옵소서. 감사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이 기도는 감사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으면 감사를 잘 할 것 같은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의 은혜를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넉넉지 않은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감사는 물질이나 생활의 풍요와 비례하지 않고 신앙과 비례합니다.
다윗의 간절한 소원은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건축해서 봉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는 피를 많이 흘렸기에 건축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건축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윗이 준비한 헌물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감사하는 기도입니다만
여기서도 감사가 물질의 풍요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 속에서 안정되고 풍요로운 시대를 구가하였습니다.
그때 드린 예물의 양을 보면 그 시대가 얼마나 풍요한 시대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3절을 보면 다윗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금 3천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를 드립니다.
다윗의 신하들은, 금 오천달란트와 금 만 다릭, 은 만달란트와 놋 만 팔천달란트,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립니다.
이것을 환산하면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금액이었습니다.
이런 다윗 시대가 얼마나 좋았는지 지금 이스라엘의 국기에 다윗의 별을 넣고 그 시대를 목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를 보면 결코 물질이 풍요해서 그렇게 많은 것을 드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는 물질의 많고 적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앙에 비례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윗 시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처 작은 아버지가 브라질에서 오셨습니다.
저녁식사를 대접하는데 ㄱㅎ음식점 당시 3만원이 안 되는 가격이었습니다.
식사를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런 음식은 생전 처음 먹어본다.’고 하셨습니다.
일찍 브라질로 이민 가셔서 의류 업을 통해 성공한 분이셨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를 누려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만큼 우리가 잘 살고 있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사는 것에 비례하여 우리의 감사는 어떻습니까?
감사에 인색하고 감사를 잘 하지 못하며 많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기쁨으로 살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부족하여 올바르게 정립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으면서 우리는 자칫 ‘시대에 맞지 않는 절기를 왜 지키느냐? 또 헌금이야기냐?’ 불평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감사는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한 감사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신앙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신앙을 갖고 있었기에 이렇게 많은 물질을 드리며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먼저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다윗의 기도를 보면, ‘다 주께 속하였습니다.’ ‘다 주의 것입니다.’ ‘주의 손에 있나이다.’ 하는 고백이 연달아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많은 사유재산을 주님의 성전 건축을 위해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돈이 많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주권도 주님의 것이고 권세와 능력과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도 주의 손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당시 중동의 최강자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고 모든 나라가 다윗 앞에 무릎을 꿇고 조공을 바쳤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위대하심과 승리와 권세와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랑 할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모든 것이 내가 잘 나고 훌륭하고 용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이 대표적인 몇 가지만 고백하였지만 실상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순서를 보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자신이 창조한 모든 만물을 맡기시며 다스리고 정복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 만드신 것을 관리하라고 맡기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한 것도 이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한 것도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이 신앙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자가 감사할 수 있지
모든 것이 내가 수고하고 일해서 얻은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절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애쓰고 수고해서 벌은 돈인데 어떻게 하나님께 그것도 10분의 1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는 그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늘 감사하는 삶으로 사실 수 있기 바랍니다.
둘째는,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음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고 고백합니다.
16절에서는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손에서 왔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공수래공수거의 인생 속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백성들이 이렇게 많은 재물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애쓰고 노력해서 벌은 것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7절에서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면서 내 것을 내가 안 먹고, 안 쓰고 절약해서 드리는 것처럼 여길 때가 있습니다.
내가 수고해서 내가 벌었으니 마땅히 내 것인 것처럼 여겨서 때로는 인색한 마음이 들고, 아까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손이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들이 일한대로 다 거두어들인다면 부자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결국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의 수고가 헛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면 많아졌다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고 물질이 없어져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욥이 그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었던 것도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이 모든 것을 드리는 것도 주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이렇게 질문을 하면서 다윗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혜요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앞에서 본 대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습니다.’ 이런 고백을 해도
실제로 감사를 드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직접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해야 올바른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고백이 쉽지가 않습니다.
잘하면 내가 잘나서 잘 한 것이고 못하면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갑니까? 헌신하면서 살아갑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당연한 것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때 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넷째는, 주님 앞에서 우리는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애굽에서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살았습니다.
나라 없이 외국에서 떠돌이신세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억울한지 이스라엘은 애굽 400년의 생활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자신들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들이 주님 앞에서 얼마 동안 살다가 떠나야 할 나그네와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땅만 바라보며 살지 말고 영원한 나라에 상급을 쌓은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윗이 이처럼 귀한 예물을 마음껏 드리며 감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인생이 나그네와 거류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이 그들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애굽에서 조상들이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살았을 때 주님은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나중에는 10가지 기적으로 구원하여 주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곳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는 분명 이 세상을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축복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 칼 세이건이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의 사진을 보고 감명을 받아 저술한 책인데요,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는 61억 킬로미터의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했는데 그 지구는 동전만한 크기였습니다.
그 지구를 보고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명명합니다.
이 책에서 세이건은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라고 밝혔습니다.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또한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우주에서 볼 때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 동전크기에 불과합니다.
그 안에 지금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고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습니다.
동전크기만한 지구 안에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입니까? 반대로 주님은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 작은 먼지만도 못한 우리를 찾아내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나그네와 거류민이었던 조상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주님은 자녀 된 우리들을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다윗이 깨달은 것이 그 위대하신 주님께서 먼지만도 못한 우리를 기억하시고 축복하셨다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깨달았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모든 것을 드리면서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감사의 절기를 두어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감사는 신앙의 열매요, 믿음의 향기요, 행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감사로 돌려드릴 때, 우리의 삶은 땅의 복과 하늘의 복으로 충만해질 줄 믿습니다.
(202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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