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론 시리즈]
기도란 무엇인가? (히 4:16)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오늘 이 시간에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영국의 어느 시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만약 우리가 진실한 곡조의 찬양 한 음절과 정직한 단 한마디의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갈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100리를 달려오실 것이라” 그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진실한 찬양과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도에 대해서 말씀 드리되 소제목으로 ‘어원으로 살펴본 기도의 정의’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도의 어원만 봐도 기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1. ‘프로슈케’라는 낱말입니다.
기도의 어원 중 가장 많이 쓰인 용어가 헬라어로 '프로슈케'(34회)입니다. 그 뜻은 '인사하다, 청원하다' 즉 기도는 인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일어나거나 잘 때나 혹은 무엇을 청원할 때나 기도를 빼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 됨됨이는 인사에 있습니다. 인사만 잘해도 일차 합격입니다. 인사는 예절과 말과 표정이 중요합니다. 프로슈케의 기도는 찬양의 기도입니다. 대표기도도 맨 먼저 찬양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처럼 매사에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성령님’(Good Morning, Holy Spirit)이라는 책을 쓴 베니 힌 목사는 심한 말더듬이였고, 천주교보다 더 의식적이라는 그리스 정교회 가문에서 자라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믿음만 있었고, 교회를 다녔지만 성령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어떻게 경험하고 살 것인가?
이게 항상 숙제였는데 캐나다 토론토의 어느 추운 밤, 그는 주님을 향한 갈망으로 모인 한 기도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 모임에서 그는 성령님의 놀랍고도 강한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그는 말더듬이에서 치유를 받았을 뿐 아니라 성령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성령님을 마치 친구를 대하듯 "안녕하세요, 성령님!" 이렇게 인사하며 매일 인격적인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석고상같이 단단하고 경직된 믿음이 아니라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인격의 하나님을 인격으로 대하는 활기 있고 친밀한 경외의 삶을 통해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즉 베니 힌 목사가 성령님과 동행한 것은 기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된 때부터였습니다. 유대교와 같이 동물제사만 드리고 있어도 안 되고, 천주교나 정교회와 같이 장례식장 같아도 안 됩니다. 교회는 천국 같아야지 엄숙해야 한다고 꼼짝 못하게 하는 건 잘못입니다.
마9:14-15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신랑이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제자들이 슬퍼할 수 있느냐” 하셨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섬기는 우리는 즐겁고 기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2. ‘데오마이’라는 낱말입니다.
그다음에 많이 쓰인 용어가 '데오마이'(22회)인데 '원하다, 바라다, 간청하다, 탄원하다, 구하다'는 강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 순서로 본다면 영광의 기도에 이어 우리가 드릴 기도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마치 이 기도는 눅 18장의 억울한 일 만난 과부가 재판장에게 호소하는 것 같은 기도입니다.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1절의 “기도”가 항상 기도이기 때문에 '프로슈케스다이' 로 나와 ‘데오마이’는 아니지만, 부르짖는 모습에 ‘데오마이’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3절 5절 7절 8절에도 나오듯, 한을 품듯 하는 기도, 이런 기도도 필요합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내가 늘 죄의 시험에 빠질 때, 내 믿음이 아직도 어릴 때, 이런 데오마이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말세가 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려면 우리가 변화되어야 하는데 이런 ‘데오마이’의 기도가 보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심령을 안고 변화시켜 달라고 부르짖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계6:9-11절에 제단 아래에서 자기들을 신원해 달라고 부르짖는 자들이 나옵니다. 여기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본문은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는 중에 일어난 일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합니다. 즉 성경이 열리니 죄의 문제를 깨닫고 생긴 일입니다.
그리고 속죄의 번제단 아래서 부르짖는 이 모습은 보혈을 믿는 속죄의 확신과 아울러 변화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때 행실의 상징인 흰 두루마기를 주셨고 동무 종들이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한 것처럼 더 온전히 변화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변화되었으나 더 변화해야 합니다.
육신의 필요를 위한 기도도 필요하나 이처럼 우리 영혼을 위한 데오마이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보혈로서 자유함과 변화되어 사는 삶이 한이 맺힐 만큼 간절해야 합니다.
3. ‘데에시스’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데에시스'(18회)라는 용어로서 '간구하다, 기도하다, 애원하다, 필요하다. 빈곤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갈망하는 자세여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나 필요를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데에시스’의 기도는 많이 하니까 더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4. ‘아고니조마이’라는 낱말입니다.
'아고니조마이'가 7회 나오는데 그 뜻은 '상을 위해 싸운다, 다투고 들어간다, 싸우다, 애쓰다, 힘을 다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기도는 영적 전쟁을 위한 기도를 말합니다. 사단과 싸우는 강한 기도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도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단 10장 12-14절에 나오듯, 다니엘이 천사가 가져오는 응답이 지체되자 금식하며 부르짖을 때 천군장 미가엘이 도왔던 것처럼 사탄의 방해가 있을 때 강력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묵상하면 되지 무슨 기도가 그러냐 하지만 의미 없이 소리 지르는 것은 반대지만 강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걸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눅22:43-44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사탄의 시험이 가장 클 때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44절) 했습니다. 사탄의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이렇게 강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5. ‘엔륙시스’라는 낱말도 있습니다.
'엔륙시스'는 2회 사용되었는데 '서로 만나다, 대화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인사하다는 ‘프로슈케’와 비슷하지만 모세처럼 삶에서 친구와 같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출33:11에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이 구절은 하나님과 관계의 친밀함과 직접성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대화란 상대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비밀을 모두 하나님 앞에 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 아시지만 작은 일도 늘 상의하고 보고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친밀하게 대하십니다.
그래서 잠3:6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잠16:3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했는데 모든 것을 여쭈어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웬만큼의 고도의 지식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중요한 비밀을 캐야 합니다. 응답받고 하세요. 응답이 없으면 몇 날이고 며칠이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고의 불효는 대화를 끊는 것입니다. 반대로 최고의 효도는 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 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오늘 배운 기도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기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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