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가족이 평양에서 추방되던 날이었다. 기차를 탄 송신역은 비교적 작았다. 이 역은 원래 승객보다는 화물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대합실은 몇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였고 플랫폼도 매우 작았다. 그날 송신역에 모인 사람이 200세대라고 하니 어림잡아 1000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송신역이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이는 건 처음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친인척들은 어떻게 알고들 나왔는지 추방당하는 이들을 붙들고 울고 있었다. 우리 외삼촌도 기차 안에서 먹을 밥이며 음식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역을 찾아왔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약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서로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울면 사상체계에 걸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떤 잘못이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당에서 배제한 사람들이기에 자칫 동정을 베풀었다간 그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하는 눈치였다. 인간이 너무 압제를 받으면 순간 비겁해지는 모양이다. 기차에 오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때까지 남의 눈을 의식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인파들이 갑자기 웅성이기 시작했다. 서로를 부르는 아우성 소리에 귀가 멍할 정도였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우는 통곡 소리는 기차의 기적소리도 삼켜버렸다. 급해진 정치보위부 요원들은 더욱더 혈안이 돼 사람들을 다그쳤다. 그 누구도 스스로 기차에 오르려 하지 않았다. 실랑이가 이곳저곳에 벌어져 기차가 흔들거렸다. 사람들은 호송원들에게 끌려 발에 차이기도 하고 밀치기도 하면서 기차에 올랐다. 사람들이 모두 기차에 오르자 문이 닫혔다. 그 기차는 추방민을 호송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기차였다. 우리는 침대칸으로 만들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기차에 올라타니 외삼촌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외삼촌을 찾으려고 “삼촌, 삼촌”하고 불러댔다. 그런데 외삼촌이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기차가 떠나려고 “붕” 하고 신호를 냈다. 사람들의 통곡소리는 더 커졌다. 발을 구르는 사람들 때문에 역 전체가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저쪽에서 “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공을 찢는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승강장 쪽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났다. 한 엄마가 갓난아기를 업고 기차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마지막 고동을 울리던 기차가 ‘움찔’ 하고 멈춰 섰다. 다섯 아이의 엄마인 그는 기차가 떠나려는 순간에 3개월 된 아기를 업은 채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그 아주머니는 훗날 우리가 추방된 그 동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기차 바퀴 밑에 들어가지 않아서 병원으로 후송됐었다고 한다. 잠시 주춤했던 기차는 사태가 수습되자 다시 기적을 울리며 천천히 역을 출발했다. 기차 안은 그야말로 통곡 소리로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아비규환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평양의 거리들을 익혀두려고 창밖을 내다봤다. 그때 어디선가 “학철아, 애란아” 하고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창밖에 머리를 내 바라보니 외삼촌이었다. 외삼촌은 인파 때문에 기차가 갈 방향으로 미리 나와서 손을 저으며 우리들을 배웅했다. “잘 가라. 아프지 말고. 어머니 말씀 잘 들어라….” 이것이 외삼촌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었다. 외삼촌은 우리가 추방된 이듬해 2월,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바람에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우리는 평양을 떠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땅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통곡하는 사람들의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추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엔 너무도 철없던 어린 시절이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
'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경의 열매] 이애란 (7) “평양치들이 왜 저 꼴이야”… 동네사람들 수군거려 (0) | 2012.07.21 |
---|---|
[역경의 열매] 이애란 (6) ‘추방’ 열차안 추위·배고픔…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0) | 2012.07.21 |
‘불교신자’ 노태우 전 대통령, 기독교인 됐다… 노소영씨가 밝히는 아버지의 신앙 (0) | 2012.07.13 |
‘불교신자’ 노태우 전 대통령, 기독교인 됐다… 노소영씨가 밝히는 아버지의 신앙 (0) | 2012.07.12 |
교수님 국민가수 신형원씨 신앙 간증 (0) | 2012.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