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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추방된 안타까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정한 기차는 기적소리를 내며 잘만 달렸다. 나는 태어나 처음 탄 기차라 창밖 풍경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얼굴이 흙빛이 돼 담배만 태우고 계셨다. 어머니는 실신하다시피 기차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좌석 맞은편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세 아들과 자리하고 있었다. “애기 엄마, 일어나. 기운을 내야 해. 아이들을 봐서라도, 여기와 한술 뜨라우.” 아주머니는 60년대까지 일본에 살다 북송선을 탔던 교포였다. 북한에선 북송교포를 ‘재일동포’ 줄여서 ‘재포’라고 불렀다. 그 할머니네 가족은 소위 ‘재포’였다. 함께 북송선을 탔던 남편을 몇 년 전 잃고 혼자 아들들을 키워왔는데 이번에 ‘사회주의 대건설’에 걸렸다고 했다. 왜 걸렸는지도 모른단다. 아마 일본에 있는 가족 중 누가 북한에 잘못 보였는지 모른다는 추측을 했다. ‘재포’ 아주머니의 권유에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싸주신 보따리를 풀어 음식을 꺼냈다. “애기 엄만 왜 걸렸나.” 할머니가 물었다. “글쎄요. 남편이 결혼할 때 6·25때 폭사가족이라고 해서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 남쪽으로 내려갔다고 하네요.” 어머니가 대답했다. “쯧쯧. 그래도 어쩌겠나. 저 아이들 보고 살아야지.” 이런저런 말을 하다 저녁식사가 끝났고 우리는 3층에 올라 잠이 들었다. 한참을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 충격에 놀라 잠을 깼다. “으윽…”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 3층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다 저녁때 먹은 삶은 계란이 체했는지 배가 스르르 아팠다. 식은땀이 났다. 신음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어머니가 계속 배를 문질러 주었다. 그때 통로 쪽 한 사람이 의사라면서 다가왔다. 마침 침통을 갖고 있었다. 손과 다리, 배 몇 군데 침을 놨다. 비상약도 먹었다. 고마운 그 의사의 도움으로 나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북쪽으로 갈수록 기온이 떨어졌다. 평양은 더워 반팔 셔츠에 짧은 치마,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여긴 너무 추워 이빨이 시릴 정도였다. 덜 덜 덜…. 새벽이 되니 더 추웠다. 새벽 6시쯤. 조금 떠오른 태양이 너무 반가웠다. 계속 달리던 열차가 오랜만에 섰다. 함흥이란다. 판매원이 올라와 아침식사(곽밥)를 팔았다. 사람들은 마실 물을 떠오고 세수도 하려고 기차에서 내렸다. 감시원들은 모두 사람 관리에 야단이었다. 사람들은 돈을 꺼내들었다. 모두들 갑자기 끌려오다 보니 먹을 것이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과자 몇 봉지를 사 가지고 오셨는데 그것을 입에 문 순간 동시에 얼굴을 찡그리며 뱉어버렸다. 씁쓸하고 질겨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에서 유명한 일명 ‘벽돌과자’였다. 어떤 아주머니가 과자를 뱉는 우리에게 한마디 했다. “지금은 배불러서 그렇지 이제 한 달만 지나봐라. 그것도 없어서 못 먹지….” 나는 그 아주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차는 또 다시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우리는 얼굴이 새파래져 이를 딱딱 부딪치며 떨었다. 아버지가 감시원들의 눈을 피해 트레이닝복을 얻어 가지고 왔다. 우리는 트레이닝복을 껴입고 나서야 겨우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길주역에 도착해 함경북도로 가는 사람과 양강도로 가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우리는 양강도 기차에 타 백암령을 넘었다. 양강도 지역에서 살고 있는 처녀의 최고의 꿈은 백암령을 넘는 것이다. 백암령을 넘으면 벌방으로 나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혁명화의 첫 걸음은 이렇게 고생으로 시작됐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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