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평양에서 추방된 우리 가족은 양강도 삼수군 관동리에 도착했다.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평양에서 온 우리들을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신기해했다. 장시간 기차와 트럭을 타고 비에 젖고 추워서 온갖 옷을 다 뒤집어썼던 우리 모습은 가관이었다. 평양에 살았던 도시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망측한 모습이었다. 트레이닝복을 구경한 적이 없는 산골 아이들은 트레이닝 바람으로 서 있는 우릴 보고 내의만 입고 왔다고 놀려대기 시작했다. “저것들이 오새(철)가 없는 모양이다. 내의 바람에 기차를 타고 왔는 모양이지. 평양치들이라는 게 왜 그 모양이야.” 수군대는 목소리가 우리 귀까지 들렸다. 우린 아직 들어갈 집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 집에 동거하게 됐다. 남한에서는 남녀가 혼전에 함께 사는 것을 동거라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렇게 남의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을 동거라고 한다. 주택사정도 안 좋아 아직 평양에도 동거 세대가 꽤 많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작업소장의 집에 안내됐다. 집은 방과 부엌 구분이 없었다.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방 한 칸이 전부였다. 한둘도 아닌 여섯 식구가 거의 단칸집이나 다름없는 집에 덜컥 들어 왔으니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빨리 평양치를 벗어나려면 그곳 생활에 적응해야만 했다. 도착한 지 한 달반 만에 평양에서 짐이 도착했다. 그만하면 빨리 온 셈이라고 했다. 개인이 움직이면 3개월 이상은 보통이고 6개월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짐은 도착했지만 짐이 터지고 깨져 엉망진창이었다. 가구 하나가 있었는데 형체도 없이 부서져 있었다. 특히 거울이 산산조각이 나 손바닥만한 거울 조각도 남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거울을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거울을 만드는 유리가 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녀들의 결혼지참품으로 3면 경대가 인기가 높다. 또 처녀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화장 거울이며 손거울도 인기다. 어쨌든 거울이 산산조각이 나서 우리 가족은 몇 년 동안 거울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 완전히 원시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그곳 생활은 고문에 가까웠다. 며칠 후 나는 급성 대장염에 걸렸다. 옆집에서 먹어보라고 가져온 언 감자 찐 것을 먹었는데 탈이 난 것이다. 밤새 한숨 자지 못하고 10분 간격으로 변소를 들락날락 반복했다. 하룻밤 새 눈언저리는 푹 꺼졌고 죽물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학기말 시험 때라 시험을 보러가야 했다. 하지만 걸을 수 없어 어머니가 학교까지 업어 주었다. 자연시험이었던 것 같다. 시험만 보고 집에 돌아와 누워있는데 눈앞에서 별이 아른아른 흘러내렸다. 영양실조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영양보충을 할 음식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가 가만히 내 손목을 잡으며 물으셨다. “애란아. 뭘 먹고 싶니.” 사실 먹고 싶다고 해도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때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 것을 보았다. “야, 너 길다가 죽어. 뭘 해줄까. 할머니가 해주시던 범벅해줄까.” 외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수수범벅을 자주 만들어주셨다. 정말 맛있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생각 나 범벅을 해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보라콩이라고 하는 껍질이 두꺼운 콩을 삶고 누가 조금 주셨다던 감자 녹말가루를 꺼내어 범벅 4개를 만드셨다. 더 만들려고 해도 재료가 없었다. 동생이 셋인데 혼자 먹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범벅은 아이들에게 한 개씩 나눠주고 어머니는 잡수셨다고 하면서 극구 사양하셔서 결국 어머니는 또 석유밀가루를 섞은 감자밥을 드셨다. 병도 우리 가정 형편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곧 입맛을 되찾았고 건강이 조금씩 회복돼 갔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
'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경의 열매] 이애란 (9) 北 3대 출세 줄기… 백두산·봉화산·오산덕 줄기 (0) | 2012.07.21 |
---|---|
[역경의 열매] 이애란 (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 추방민 밀려들어 (0) | 2012.07.21 |
[역경의 열매] 이애란 (6) ‘추방’ 열차안 추위·배고픔…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0) | 2012.07.21 |
[역경의 열매] 이애란 (5) 추방되던 날 기차역엔 우리 외에 1000명이나… (0) | 2012.07.21 |
‘불교신자’ 노태우 전 대통령, 기독교인 됐다… 노소영씨가 밝히는 아버지의 신앙 (0) | 2012.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