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을 위한 알기 쉬운 기독교 (51·끝)
교황은 신적인 존재인가
■ 교황제도는 언제부터 왜 생겼으며 최초의 교황은 누구입니까
■ 교황은 죄가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는 신적인 존재입니까
교황제도의 유래
흔히 ‘로마교황’이라고 부르는 오늘날의 교황제도는 초대교회의 감독제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 시작된 교회의 감독제도는 2세기 중엽에 이르러 거의 모든 그리스도 교회에 정착됐고 3세기 말 5개의 대감독교구가 형성됐는데,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로마 콘스탄티노플이 그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든 대감독이 동등한 직위에 있었으나 3세기 말부터는 로마의 감독이 지방 감독들보다 높은 위치에 놓이게 됐고 결국 로마 대감독의 권한이 가장 막강해졌습니다. 이것이 후에 대감독(대주교)제도를 비롯한 교직제도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5세기에 이르러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는 성례전적 기능에 있어서 로마대감독의 우위성을 강조했고 로마교회가 사도전승의 보호자로서 모든 서방교회의 모체가 돼야 하며 세계교회를 다스릴 권한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사도권이 로마의 대감독에게 전수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주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로 옮긴 후에는 당연히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로마교회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져야 된다고 주장했고, 제1차 콘스탄티노플 회의(381년)에서는 콘스탄티노플 교회 역시 로마교회에 버금가는 권한을 갖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즉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 교회와의 수위권 다툼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교황제도의 정착과 그레고리 1세
교황제도가 확립되기까지는 로마교회의 수위권 확보뿐만 아니라 정치적 역학관계가 작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즉 로마의 황제와 로마교회의 대감독이 상부상조하며 서로를 옹호해주는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교황제도가 탄생될 수 있었습니다. 교황권 확립에 공헌한 결정적 인물은 겔라시우스(Gelasius·492∼496)였습니다. 서방교회의 최고 책임자였던 그는 동방의 황제 아나스타시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세계는 원칙적으로 두 가지 세력에 의해 통치된다. 하나는 성스러운 교황권이며 다른 하나는 세속적인 왕권이다. 이 중 사제가 지닌 중요성이 훨씬 더 크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사제는 제왕을 위하여 변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황을 심판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오랜 기간 이러한 논쟁을 거쳐 교황제도가 확립되고 최초의 교황이 590년에 탄생하였는데 그가 바로 그레고리 1세였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1세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최후의 교부였고 최후의 로마대감독이었으며 최초의 교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레고리 1세가 교황에 즉위한 590년은 초기와 중세를 구분하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교황제도의 문제점
“우리는 거룩한 사도직과 로마교황직이 모든 교회 직위에 으뜸가는 직분임을 선언하며 로마교황 자신은 사도들 중의 왕자, 성 베드로의 후계이며 그리스도의 진정한 대리자이며 모든 교회의 머리이며 온 교인의 아버지요 스승이시다. 그에게 우리 주님께서 우주적인 교회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먹이는 능력을 허락하시고 축복하신 품성이 있으심을 선언한다.”(1438년 프로렌스 선언문). 가톨릭교회는 이 선언문을 교황정치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특권을 주셨다는 주장은 해석상 무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베드로에게 우위성을 부여하신 적이 없었고 모든 사도는 동등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20장 28절, 베드로전서 5장 2절 등을 보면 모든 감독과 장로들에게도 주님의 양들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둘째로 로마교황이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주장 역시 성서·신학·논리적 근거가 없는 인위적인 주장입니다.
셋째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지 교황이 될 수 없습니다. 성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엡 1:22, 4:15, 골 1:18, 2:10)
넷째로 우주적인 교회를 다스리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엡 4:5) 이 말씀은 복음과 믿음과 교회의 일치성을 뜻하는 말씀으로서 교황통치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섯째로 교황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며 신이 아니기 때문에 교황무오설(敎皇無誤說)이나 교황의 절대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롬 3:10)고 말씀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교황통치로 인해 동·서방 교회가 분리되었으며 개신교의 탄생 역시 교황정치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교황통치는 교회의 권력을 강화시켰고 십자군전쟁을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교회의 내부적 부패를 심화시켰습니다. 또한 모든 사상과 학문을 기독교적 패러다임으로 통제했습니다. 그래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즉 교황통치가 극에 달했던 중세를 일컬어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강영선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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