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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 ‘호구조사’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열려라 에바다 2013. 1. 17. 08:24

 

[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 ‘호구조사’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안티들의 도전 : “예수 탄생과 관련된 호구조사는 비상식적이며 사실이 아니다.” “누가의 호구조사는 기발한 명분의 픽션이며 믿을 수 없다.”

만일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들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만일 예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지 않았고,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지 않았고, 헤롯의 유아 살해 사건도 허구이며, 예수 탄생과 관련된 호구조사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성경의 역사성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신성을 심각하게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는 도(道)를 깨달은 한 인간에 불과하며,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십자가를 통해 죄를 용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찾아오셨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소설에 불과한 것이 된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 안티들이 주장하는 바다.

“징집·노역·세금위해 14년마다 시행”

도올 김용옥 교수는 예수 탄생과 관련된 호구조사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누가복음 2장은 나사렛에 살았던 요셉이 정혼녀 마리아와 함께 호적등록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기 예수를 낳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도올은 ‘원적지 호구조사’는 비상식적인 것이며, 예수에게서 ‘다윗 혈통의 정통적 후계라는 메시아적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기발한 명분의 픽션’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과연 호적조사는 역사적 사

 

실이 아닌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도올은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제국 전체에 호구조사를 명한 사례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로마는 공화정의 전통을 가진 나라였기 때문에 그러한 발상이나 유례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와 디오 카시우스는 아우구스투스가 전 제국의 정복지에 대해서 정기적인 인구조사를 실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의 표현으로써 인구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으며, 정복지 남자들의 군대 징집이나 노역 그리고 세금 징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한 인구조사와 등록은 매 14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인구조사가 지방 총독에 의해 실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일반적인 정책으로 간주되었다. 고대의 인구조사는 오늘날처럼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수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심지어 약 40년에 걸쳐서 완성된 사례도 있다.

또한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였던 고고학자 윌리엄 램지는 BC 8년 또는 7년께에 황제 칙령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가까운 시리아 지역에서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음을 밝혀냈다. 바로 그 인구조사가 예수의 탄생(BC 4년께) 시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실시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등록을 해야 하는 원적지 호구조사는 실제로 그러한 역사적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누가의 호적등록에 대한 기사는 엉뚱한 발상이 아니며 오히려 그 당시 역사적 정황과 일치한다.

둘째, 도올을 비롯한 성경 비평가들은 “시리아의 총독 구레뇨는 AD 6년 때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않았는데, 왜 누가는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이스라엘에 인구조사를 실시했다고 하는가?”라고 비판한다. 도올은 누가가 AD 6년에 실시된 이 인구조사를 BC 4년께 예수의 탄생과 연결시킨 것은 두 사건을 혼동한 것이 아니라 상상력 속에서 적당히 짜 맞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두 번 임명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주장이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BC 8∼7년께 시리아 지역에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을 때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탁월한 행정가이자 뛰어난 군인이었던 구레뇨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의 문제들을 평탄케 하는 임무를 맡겼다고 한다. 이 사실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두 번 임명되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비록 여전히 논란 중이긴 하지만, 1764년에 발견된 라틴어 비문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두 번 통치하였음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BC 12년에서 BC 2년 사이에, 두 번째는 AD 6년께에 시리아의 총독으로 활동한 개연성이 다분히 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의 권위자인 데렐 복(Darrell L Bock)은 누가복음 2장 2절의 “첫 번째 인구조사”라는 말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처음으로 행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구레뇨 통치 하에 적어도 두 번 이상 실시되었던 인구조사들 중에서 첫 번째로 행한 것이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본다. 데렐 복은 두 번째 해석을 선호한다. 이런 성경 해석과 역사적 정황들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두 번 임명되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지지하고 있다.

끝으로 탁월한 고고학자 윌리엄 램지는 20년 동안 누가에 나오는 지명을 연구했다. 그의 결론에 의하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32개 나라들과 54개 도시들, 그리고 9개 섬들은 고고학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매우 정확한 기록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누가의 기록은 고고학적으로도 매우 신뢰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고대 역사는 한 가지 출처에만 그 신뢰의 근거를 두고 있다. 비록 여러 자료들에 의해 확증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누가의 기록을 일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면 누가가 기록한 원적지 호구조사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 밭이 중요함을 느낀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도 어떤 이는 거부하고 어떤 사람은 잘 받아들여 열매를 맺는다(마 13장). 씨앗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밭이 문제다. 옥토와 같은 마음을 소망한다. <끝>

(서울 큰나무교회· 기독교 변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