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 칼럼] 2013년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사회는 다양한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의 층위도 더욱 두터워지고 있다. 문화가 다원화된다는 것은 단지 사회문화적 현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가치를 무너뜨리고 윤리 상대주의를 확산시킨다. 오늘날 상당수 젊은이들에게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규범적이고 당위적인 사고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사회를 향해 윤리적인 주문을 하면 사회는 교회에 ‘교회나 잘하세요’라는 질타를 보내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교회는 사회적 에토스를 선도할 책임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런 현실 속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
우리가 먼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제 우리 교회가 먼저 할 일은 무엇보다도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신앙이란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의 몸’으로 응답하는 것이다(롬 12:1).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전인격적으로 반응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 장로교회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칼뱅이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으면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앙생활의 초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다. 효성 깊은 자녀가 부모의 뜻을 잘 헤아려 그 뜻을 좇음으로써 부모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마찬가지로 신앙심이 깊은 자녀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려 그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경건훈련을 게을리할 수 없다. 한국교회의 전통인 기도와 말씀 공부로 돌아가 성숙한 신앙인을 길러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자기중심에서 비롯된 기복적인 기도와 지적교만을 낳는 성경공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할 것은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마 6:33) 사는 삶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반대편에는 자기 중심적인 삶이 있다. 그 삶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삶’(요일 2:16)이다.
복음적 신앙인의 삶의 모습은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며 신앙인의 책임영역이 길고 넓으며 깊고 높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 가면 갈수록, 즉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우리 삶은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이전에는 이만하면 되었다던 윤리적인 자족감이 이제는 도저히 내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고백으로 바뀐다.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주제를 그만큼 적확하게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힘이다. 하나님을 알면 인간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인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항상 진취적이고 건설적인 자세로 모든 일에 임하게 된다. 왜냐하면 신앙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시는 은혜 속에 살기 때문이다(엡 3:16). 겸손과 패기! 과연 오늘 우리의 모습인가?
2013년 한국교회와 신앙인들의 우선적 과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복음적인 삶을 회복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복음적인 삶이란 윤리적 실천을 통해 하나님 중심적 신앙을 구체화하는 삶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2013년 새해가 되어도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풍조는 여전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신앙인들은 더욱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멀리하며, ‘선한 행실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벧전 2:9∼12) 힘써야 할 것이다.
(장신대 교수, 기윤실 공동대표)
우리 사회는 다양한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의 층위도 더욱 두터워지고 있다. 문화가 다원화된다는 것은 단지 사회문화적 현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가치를 무너뜨리고 윤리 상대주의를 확산시킨다. 오늘날 상당수 젊은이들에게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규범적이고 당위적인 사고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사회를 향해 윤리적인 주문을 하면 사회는 교회에 ‘교회나 잘하세요’라는 질타를 보내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교회는 사회적 에토스를 선도할 책임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런 현실 속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
우리가 먼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제 우리 교회가 먼저 할 일은 무엇보다도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신앙이란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의 몸’으로 응답하는 것이다(롬 12:1).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전인격적으로 반응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 장로교회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칼뱅이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으면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앙생활의 초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다. 효성 깊은 자녀가 부모의 뜻을 잘 헤아려 그 뜻을 좇음으로써 부모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마찬가지로 신앙심이 깊은 자녀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려 그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경건훈련을 게을리할 수 없다. 한국교회의 전통인 기도와 말씀 공부로 돌아가 성숙한 신앙인을 길러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자기중심에서 비롯된 기복적인 기도와 지적교만을 낳는 성경공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할 것은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마 6:33) 사는 삶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반대편에는 자기 중심적인 삶이 있다. 그 삶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삶’(요일 2:16)이다.
복음적 신앙인의 삶의 모습은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며 신앙인의 책임영역이 길고 넓으며 깊고 높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 가면 갈수록, 즉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우리 삶은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이전에는 이만하면 되었다던 윤리적인 자족감이 이제는 도저히 내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고백으로 바뀐다.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주제를 그만큼 적확하게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힘이다. 하나님을 알면 인간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인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항상 진취적이고 건설적인 자세로 모든 일에 임하게 된다. 왜냐하면 신앙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시는 은혜 속에 살기 때문이다(엡 3:16). 겸손과 패기! 과연 오늘 우리의 모습인가?
2013년 한국교회와 신앙인들의 우선적 과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복음적인 삶을 회복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복음적인 삶이란 윤리적 실천을 통해 하나님 중심적 신앙을 구체화하는 삶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2013년 새해가 되어도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풍조는 여전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신앙인들은 더욱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멀리하며, ‘선한 행실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벧전 2:9∼12) 힘써야 할 것이다.
(장신대 교수, 기윤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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