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체제, 종교 자유화하나… 中 당국 ‘지하교회’ 사실상 묵인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출범한 이후 중국 베이징시 당국이 지하교회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특집기사에서 “삼자애국운동위원회(삼자교회)가 교회를 지도하는 공식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신고만 하면 교회 활동이 사실상 묵인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베이징에 있는 한 지하교회 관계자는 “시진핑 체제 발족 후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지난 4월 이후 시 공안 당국이 지하교회 목사들과 식사를 같이 한 사례도 있었고, 교회를 위해 건물을 빌려주는 것도 묵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의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앞으로 전국적으로 파급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국 당국의 공인을 받은 삼자교회 소속 신자는 2305만여 명이며, 지하교회 신자는 5000만명을 넘는다.
시진핑 체제 이전의 중국 최고지도자들은 기독교를 강하게 탄압했다. 시 주석 취임 직전인 올해 3월에도 대대적인 지하교회 단속이 있었다. 2000년 5월에는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장쩌민(江澤民)이 저장성 원저우시에서 집집마다 붉은 바탕에 노란 십자가가 그려진 달력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경제는 잘하지만 정치는 아니군”이라고 화를 내며 철저한 단속을 명령했다. 윈저우는 청나라 말기 영국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곳이어서 삼자교회는 물론 미공인 지하교회도 가장 많은 곳이었다.
장 주석의 명령으로 당시 중국 내에서는 700명 이상의 목사가 구속되고 예배당도 수없이 파괴됐다. 중장비가 들어갈 수 없는 산 속의 예배 시설은 폭파시키기도 했다.
삼자교회에 소속돼 있다가 퇴임 뒤 지하교회를 개척한 중국 목사의 사례도 아사히신문은 소개했다. 올해 90세의 리커(李克) 목사는 1948년 베이징의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한 뒤 삼자 교회에 들어가 애국심과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중국식 기독교를 주입 받았다.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공작부와 국가종교사무국 직원들이 삼자교회 목사에게 강의하기도 했다. 리 목사는 “1950년 5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중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베이징 중난하이의 집무실로 불러 ‘해외 기독교 조직의 지시와 자금을 받지 않는다면 교회의 존속을 인정하겠다’며 삼자운동을 먼저 제시했다”고 회고하면서 “당시는 교회 내부에도 많은 비밀 당원이 있었다”고 밝혔다. 리 목사는 그러나 문화대혁명 이후 당을 불신하게 되었고, 75세로 교회를 떠난 뒤에는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지하교회를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지금 도시화와 함께 기독교 신자가 급증하고 있다. 삼자교회 소속의 교회만 5만 곳이 넘는다. 리 목사는 “사회가 변하면 당도 변할 것”이라며 시진핑 체제에서 중국 정부의 종교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아사히신문은 최근 특집기사에서 “삼자애국운동위원회(삼자교회)가 교회를 지도하는 공식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신고만 하면 교회 활동이 사실상 묵인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베이징에 있는 한 지하교회 관계자는 “시진핑 체제 발족 후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지난 4월 이후 시 공안 당국이 지하교회 목사들과 식사를 같이 한 사례도 있었고, 교회를 위해 건물을 빌려주는 것도 묵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의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앞으로 전국적으로 파급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국 당국의 공인을 받은 삼자교회 소속 신자는 2305만여 명이며, 지하교회 신자는 5000만명을 넘는다.
시진핑 체제 이전의 중국 최고지도자들은 기독교를 강하게 탄압했다. 시 주석 취임 직전인 올해 3월에도 대대적인 지하교회 단속이 있었다. 2000년 5월에는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장쩌민(江澤民)이 저장성 원저우시에서 집집마다 붉은 바탕에 노란 십자가가 그려진 달력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경제는 잘하지만 정치는 아니군”이라고 화를 내며 철저한 단속을 명령했다. 윈저우는 청나라 말기 영국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곳이어서 삼자교회는 물론 미공인 지하교회도 가장 많은 곳이었다.
장 주석의 명령으로 당시 중국 내에서는 700명 이상의 목사가 구속되고 예배당도 수없이 파괴됐다. 중장비가 들어갈 수 없는 산 속의 예배 시설은 폭파시키기도 했다.
삼자교회에 소속돼 있다가 퇴임 뒤 지하교회를 개척한 중국 목사의 사례도 아사히신문은 소개했다. 올해 90세의 리커(李克) 목사는 1948년 베이징의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한 뒤 삼자 교회에 들어가 애국심과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중국식 기독교를 주입 받았다.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공작부와 국가종교사무국 직원들이 삼자교회 목사에게 강의하기도 했다. 리 목사는 “1950년 5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중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베이징 중난하이의 집무실로 불러 ‘해외 기독교 조직의 지시와 자금을 받지 않는다면 교회의 존속을 인정하겠다’며 삼자운동을 먼저 제시했다”고 회고하면서 “당시는 교회 내부에도 많은 비밀 당원이 있었다”고 밝혔다. 리 목사는 그러나 문화대혁명 이후 당을 불신하게 되었고, 75세로 교회를 떠난 뒤에는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지하교회를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지금 도시화와 함께 기독교 신자가 급증하고 있다. 삼자교회 소속의 교회만 5만 곳이 넘는다. 리 목사는 “사회가 변하면 당도 변할 것”이라며 시진핑 체제에서 중국 정부의 종교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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