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사막의 영성] 기도는 영성의 깊이와 비례한다

열려라 에바다 2013. 7. 26. 08:16

[사막의 영성] 기도는 영성의 깊이와 비례한다


초대교회가 가장 크게 씨름했던 문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이었다(살전 5:17; 눅 18:1).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이 명령을 그들은 어떻게 풀었을까. 이 명령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다르게 이해하고 실천 방법도 달랐지만, 하루 동안 특정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같았다. 하지만 기도 횟수는 각자의 결단과 의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다양했다.

하루 세 차례 드리는 기도

4세기 이집트 수도사들은 아침과 저녁 두 번 기도시간에 열두 편씩 시편을 낭송했다. 그 사이에는 손으로 노동하면서 입으로는 계속 시편이나 성경 구절을 암송하며 끊임없이 기도를 실천했다. 두 번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루 50번, 100번, 300번, 심지어 700번까지 행한 수도사도 있었다. 4세기 말 콘스탄티노플 교회도 하루 두 번 기도를 강조했다. 총대주교인 요한 크리소스톰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강해지도록 새벽에 교회에 모여서 기도합시다. 저녁 때 다시 교회로 돌아와 주님께 하루 삶을 보고드리고 잘못된 것은 회개하십시다”라고 가르쳤다. 두 번 드린 기도는 성소에서 아침과 저녁에 번제를 드렸던 것에 근거한다(민 28:3∼4).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기도는 아침 9시, 정오, 오후 3시에 세 번 드리는 기도였다. 이 시간을 좋아한 것은 첫째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히시고, 그리고 죽으신 시간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시간이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가 지켜온 관습이었기 때문이다(행 2:15; 10:9; 3:1). 사도행전 전반부에 큰 기적들은 모두 이 시간에 일어났다.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여진 오순절 성령 강림은 아침 9시에 일어났다. 베드로가 욥바의 지붕에서 환상을 보고 고넬료 집으로 가서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아 선교의 문을 열게 된 사건은 정오였다. 고넬료가 환상을 보고 베드로를 초청하게 된 것은 오후 3시였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를 치유하고 이를 계기로 오천 명이 믿게 된 것은 오후 3시였다.

하루 세 번 기도하게 된 기원은 다윗이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시 55:17)라고 한 말씀과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자기 집 윗방에 올라가 무릎 꿇고 기도하던 습관에서 찾을 수 있다(단 6:10).

또한 세 번 기도 습관은 1세기 말 시리아 지역에서 저술된 ‘열 두 사도들의 가르침’에 나타난다. 저자는 하루 세 번씩 기도할 때에 주기도문을 드리도록 권했다. 3세기 초 북아프리카의 터툴리안도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어디서나 기도하라고 권면했지만 사도행전에 보면 이 세 번의 시간들은 특히 거룩한 시간이니 기억하여 지키도록 가르쳤다.

서방에서는 세 번 기도가 일곱 번 기도로 확대됐다. 3세기 로마의 사제 히폴리투스는 ‘사도전승’에서 성도들에게 하루 일곱 번 기도를 요구했다. 새벽 수탉이 울 때,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 일을 시작하기 전,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 잠자리에 들기 전, 잠자던 중 자정 무렵에 일어나서 기도하라고 명령했다.

6세기 베네딕트도 수도원의 일과시간에 하루 일곱 번 기도, 즉 아침기도, 제1시 기도, 제3시 기도, 제6시 기도, 제9시 기도, 저녁기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드리는 끝기도와 자정에 드리는 야간기도 시간을 더해서 여덟 번 기도회를 배치했다. 모두 합하면 매일 세 시간 반 정도를 기도회로 보냈다. 기도회 때 수도사들은 하루 40편의 시편들을 노래로 부르면서 곡조 있는 찬양으로 기도를 드렸다. 성무일도로 불린 이 기도는 다윗이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119:164)라고 한 말씀에 근거했고, 또한 잠자다가 일어나 기도하는 것은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시119:62)라고 한 말씀에 기초한 것이다.

기도, 교회의 힘과 능력 원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경은 다양한 기도 시간들을 보여주었고 교회마다 각자의 길을 갔다. 공통점은 그 모든 기도시간들이 그 교회의 힘과 능력이 흘러나오는 원천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에 어떻게 순종하는가? 잊어버리고 부담감조차 갖지 않는 명령이 아닌가? 기도가 얕으면 영성도 삶도 얕아진다. 기도의 횟수를 조금씩 늘려보자.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기도자가 되어보자.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끊임없는 기도에 도달하게 되지 않겠는가.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