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영성은 실천 위에 세워집니다

열려라 에바다 2013. 7. 26. 08:17

영성은 실천 위에 세워집니다


4세기 후반 이집트 남부지방에 파테르무티우스라고 불리는 악명 높은 산적 두목이 살았다. 어느 날 밤 도둑질을 하려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가 잠시 잠이 들고 말았는데, 꿈속에서 황제처럼 생긴 사람이 나타나 그의 죄악을 꾸짖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악한 짓을 청산하고 수도사들처럼 경건하고 덕스럽게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면 천사같이 살 수 있는 능력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잠에서 깨고 보니 집주인인 은수녀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을 교회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고, 사제들을 만나자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사제들은 그가 누군지를 알고 깜짝 놀랐지만 그 참회자를 받아들여 사흘 동안 함께 지냈다.

읽고 말하면서도 실천 않는다면

그 후 사막에 들어간 파테르무티우스는 홀로 기도와 눈물로 3년의 세월을 지내고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사제들에게 이전에 받았던 그 사흘간의 가르침이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의 영적 수준을 확인하고서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세례를 받고 이번에는 한 주간을 사제들과 함께 지낸 후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 7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후 다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가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파테르무티우스는 무엇이든지 구하고 얻을 수 있는 기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는 놀라운 표적도 행했다. 이를 본 사람들이 그의 생활방식을 본받고 싶어했기에 그는 많은 제자들을 둔 수도원장이 됐다.

우리는 많이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수도사들에게 지식의 양은 결코 성숙의 척도가 아니었다. 파테르무티우스는 사흘 배운 것으로 3년을 실천했다. 7일 배운 것으로 7년을 실천했다. 그가 천사 같은 사람이 되는데 받은 교육은 단 열흘이었다.

우리는 여러 방식으로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왔다. 그러나 성경은 지식을 쌓으라고 준 말씀이 아니다. 모세가 죽기 전 이스라엘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 명령은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신 32:46)였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주신 마지막 명령은 모든 민족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였다. 왜 가르치는가? 왜 설교하는가? 지키기 위해서다.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은 거기까지 가야 한다. 주님은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고 경고했다. 천국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마 7:21)가 들어가는 곳이다.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읽고 말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행함이다. 어떻게 하면 듣는 자가 아닌 행하는 자가 될 수 있는가? 파테르무티우스가 3년을 사막에서 살고 사제들에게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성경을 암송하는 은혜를 주셨다”고 말했다. 비결은 말씀암송, 즉 묵상에 있었다. 사막의 수도사들은 입에 말씀을 달고 살았다. 온 종일 노동을 하면서도 입은 말씀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식당이나 방에 있을 때도, 걸어갈 때도 묵상을 했다. 한 구절을 종일 반복하기도 했다. 시편은 전체를 암송하여 아침저녁 기도 시간에 열두 편씩 노래로 불렀다. 왜 그렇게 했을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니까 한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묵상을 처음 명령받은 사람은 여호수아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여호수아의 책임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12지파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다. 이 부르신 일에 형통하는 방법, 이 일을 이루는데 필요한 조건은 묵상이었다. 묵상은 성경 구절을 낮은 목소리로 종일 중얼거리며 반복해서 말하는 행위다. 묵상은 분석과 이해로 이뤄지는 지적 활동이 아니라 씹어먹는 입의 경험이다. 눈에 들어온 말씀을 입을 통해 마음속에 내리는 일이 묵상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입에서 가슴까지 ‘40㎝의 일’이라고 했다. 먹으면 드디어 에너지가 생기고 행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묵상법이다. 한국교회에 큐티(QT)하는 자는 많아도 묵상하는 자는 찾기 힘들다.

과연, 안다고 끝일까

이 명령을 받을 때 여호수아의 나이는 80세였다. 이전 그의 경력은 화려했다. 믿음으로 충만했던 정탐꾼, 모세의 충성스러운 비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 40여년의 광야생활 중 살아남은 두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민 27:18)라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셨던 자다. 율법을 기록한 두 증거판을 모세 다음으로 본 여호수아, 그는 율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흠잡을 데 없이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들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신다. 그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은 그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일이었다. 그리 할 때 평탄과 형통이 보장됐다. 왜 우리들이 실패하는가? 혹시 묵상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안다고 끝이 아니다.

김진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