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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과거사·잇단 망언…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해주세요”

열려라 에바다 2013. 8. 15. 19:06

한·일 과거사·잇단 망언…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해주세요”

 

 

재한 일본인 은혜교회 목사·성도들의 ‘한·일 평화’

“위안부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런 식의 발언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분통이 터져요.”

주일이었던 지난 4일 오후 인천시 작전동 계산중앙감리교회(최신성 목사) 지하 1층 일본인교회 예배실. 재일교포 출신 성도 윤모(여)씨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 최근 “일본이 책임질 일은 다했다”는 ‘막말’로 구설에 오른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발언을 따끔하게 비판했다. “소우 소우(맞아요 맞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일본인이었다.

은혜교회(김흥규 목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올해로 10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은혜교회는 국내 유일의 한·일 가정으로 꾸려진 신앙공동체로 배우자 중 한 명은 일본인이다. 10여 가정 30여명(자녀 포함)의 교인들로 이뤄졌는데 담임인 김 목사는 일본 웨슬레안성결교단의 파송 선교사다. 일본 현지 신학교를 마친 뒤 소속 교단으로부터 한국에 ‘역파송’된 선교사로는 그가 ‘국내 1호’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이미 화해했습니다. 하하하.” 제68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오후 교회 예배실에서 만난 김 목사는 농반진반으로 말문을 열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만나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데, 화해 없이는 불가능하지요. 우리 교회는 한·일 양국의 평화체제가 이미 이뤄진 ‘미래완료형’으로 살고 있다고 할까요.”

한·일 가정을 대상으로 한 전문 목회에 그가 뛰어든 계기는 조금 특별하다. 1997년 한국 선교사로 역파송받았을 때였다. 주일마다 서울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늘 맨 뒷자리에서 홀로 예배를 드리고 쓸쓸하게 돌아가는 한 일본인 여성의 뒷모습이 그의 마음을 붙잡았다.

8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일본인 교회를 시작했지만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2년4개월간 성도는 단 한 가정뿐. 3년 만에 3가정, 5년쯤 지나 다섯 가정을 겨우 채웠다. 2008년 계산중앙감리교회의 배려로 현 예배처소에 둥지를 튼 뒤 비로소 10가정을 넘어섰다. 한국교회 기준으로 보면 전형적인 만성 미자립교회다. 하지만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열매에 무게를 뒀다.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는 한·일 양국의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사역 아닌가요. 우리 교회 성도들 사이에 한·일 양국의 감정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미 용서하고 용서받은 은혜를 누리고 있어요. 그리고 각각 자신의 나라에 그 은혜를 전하는 평화의 전령사나 다름없지요.”

광복절 같은 특정 시기마다 한·일 과거사 문제와 책임소재로 공방이 벌어질 때 그는 하늘나라로 떠난 전동례 할머니를 떠올린다. 전 할머니는 1919년 일본군이 3·1만세운동 가담자 23명을 교회에 몰아넣고 학살한 일명 ‘제암리교회 사건’의 최후 증인이었다. 김 목사는 전 할머니가 소천하기 1년 전인 1991년 4월, 당시 신학생이었던 그는 통역자 신분으로 일본교회 목회자 10여명과 함께 제암리 교회를 방문했다. 현장을 둘러보던 한 일본인 목회자가 제암리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전 할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일제 만행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전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저에게는 당신을 용서할 권리가 없습니다. 나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 모두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통역을 맡았던 김 목사는 물론 일본인 목회자들까지 당시 현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참된 용서의 힘’을 되새기는 순간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한·일 두 나라의 진정한 화해를 위한 디딤돌은 뭐가 있을까. 30대 중반의 여성도 이시이(일본)씨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자세, 진실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 11년 차 심주섭(39) 집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일본인 아내와 서로 다른 문화, 다른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노력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국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서로 자주 만나고 깊이 알아가는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인천=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