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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맞아 한국에 온 일본 기독인들 “사죄와 화해, 예수 정신이 가능케 할 것”

열려라 에바다 2014. 3. 3. 07:20

 

3·1절 맞아 한국에 온 일본 기독인들 “사죄와 화해, 예수 정신이 가능케 할 것”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 행보에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독도와 종군위안부 문제, 동해병기운동에 대해 일본은 과거사를 부정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일본 그리스도인들이 3·1절을 앞두고 역사적 진실을 알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서 30여 년간 ‘사죄와 화해의 목회’를 해 온 요시다 고조(72) 서울일본인교회 목사가 이들과 동행했다.

지난달 20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12인승 승합차에서 내린 8명의 일본인들이 3·1운동순국기념탑 앞에 섰다. 일일 가이드이자 운전자로 나선 요시다 목사가 말했다. “도둑처럼 들어온 일본에 대항해 한국인들은 1919년 3·1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리스도인이었고요….” 교회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일본 지바현 후나바시다까네교회 교인들은 선조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들으며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한·일간 역사인식을 공유키 위해 하루 전 한국에 도착한 이들은 곧장 서대문형무소를 찾았고 4박5일간 일제강점기 역사현장과 한국교회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접하는 또 다른 진실과 마주했다.

신앙인의 애국심

요시다 목사의 안내로 순국기념관에 들어선 이들은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한 영상물을 관람했다. 목격자와 후손들의 증언으로 구성된 영상엔 만세운동을 했다며 교인을 가둔 채 교회를 봉쇄한 뒤 불 지른 일본군의 모습이 그려졌다. 뒤이어 방문한 전시관에는 현장에서 발굴된 일본 화폐와 석유를 담았던 맥주병, 전소된 교회 사진 등을 관람했다. 잔혹한 참상을 본 성도들의 얼굴은 점차 어두워졌다.

“제암리 교인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찬송을 부르다 불에 타 죽었다고 합니다. 이는 캐나다 의료선교사인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일본인만 잘 모르고 있지요.”

요시다 목사는 3·1운동 전후 한·일 신앙인의 활약상을 전했다. 그는 데라우치 총독의 무단통치가 3·1운동을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또 3·1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란 사실도 알렸다. 이와 함께 79년 일본 기독교인과 사회단체가 속죄의 뜻으로 1000만엔을 보내 교회와 유족회관이 건립됐다는 것도 밝혔다. 그는 “‘애국’ 하면 일본인은 우익을 생각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애국심이야말로 한국 기독교 부흥의 원인”이라 설명했다.

역사 증언의 시간은 제암교회로 이동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강신범 제암교회 원로목사는 희생자 유해발굴부터 교회가 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혔다. “먼 길 온 손님에게 기쁘지 않은, 아픈 소식을 전하게 돼 유감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감출 수 없습니다. 사실을 인정할 때 진정한 화해의 장이 열리리라 봅니다.”

강 원로목사의 말에 일본 교인들은 다시 숙연해졌다. 최근 한·일간 경색국면의 이유를 알고자 여행에 참가한 대학생 히로세 마사루(22)씨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히로세씨는 “학교에선 이런 일을 배운 적이 전혀 없다”며 “제국주의 시대 일본은 정말 잔혹한 일을 했다. 이를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국익은 우방과 악수하는 것

이날 오후 일본 교인을 태운 승합차는 충청남도 천안 독립기념관을 향했다. “일본인이다!” 이들이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며 입장하자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한 아주머니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들에게 불쑥 “일본사람은 여기 꼭 봐야 해”라는 말을 던졌다. 직장인 아베 코키(40)씨는 이러한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말했다. “7년 전 한국에 유학 왔을 때 ‘일본은 나쁘다’란 말을 적잖게 들었어요. 그땐 한국인이 일본인을 오해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선조의 과거를 알고부터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다년간의 역사탐방 경험으로 독립기념관 지리를 훤히 아는 요시다 목사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종군위안부와 독도 문제 등 주요 전시물로 일본 교인들을 인도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1년 전부터 일본인 관람객이 많이 줄었다. 그런데 저 분(요시다 목사)만은 자주 왔다”며 반가움을 표했다.

독립기념관을 나서 유관순열사사적지로 떠나던 일본 교인들은 상념에 젖었다. 교회 장로인 와타나베 료(73)씨는 독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일본 영토가 됐다는 주장만 듣다 5000년 전부터 독도가 한국 영토였다는 말을 들으니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국심으로 일본 땅이라 주장하는 것은 도리어 국익을 해치는 겁니다. 이웃과의 신뢰를 잃는 거니까요.”

이어 와타나베씨는 기자의 손목을 잡고 흔들며 국익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참된 국익은 악수하는 것이다. 우방의 마음을 얻는 게 진정한 애국이기 때문”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사랑과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이를 가능케 할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천국에서는 같은 민족

같은 날,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학술적 관점에서 더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뒤이어 지난달 22일 일본 시마네현은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열었다. 정부는 며칠 뒤인 25일 일본의 계속된 과거사 도발에 대해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한다. 이러면서 어떻게 한·일관계 개선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며 신랄히 비판했다.

이날 교인들은 마지막 일정으로 유관순열사기념관과 생가를 방문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해들은 고미네 아키라(53) 담임목사는 “경색된 한·일 관계를 푸는 열쇠는 역사적 진실을 아는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고미네 목사는 “분명한 것은 일본인이 인간에게 해선 안 될 나쁜 짓을 한국인에게 저질렀다는 사실”이라며 “사죄와 화해를 위해서는 역사를 바로 배워야 한다. 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젊은이를 한국에 데려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가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한다는 질문엔 요시다 목사가 답을 했다. “고노담화를 검토하겠다는 학자들은 아마 우익사상을 가진 이들일 겁니다. 하지만 무라야마와 하토야마 전 총리처럼 유명한 정치가도 아베 정권의 의견에 굉장히 반대해요. 쉽게 수정하긴 힘들 겁니다.”

날이 어둑해지자 고미네 목사는 교인과 기도를 하고 이날 일정을 마쳤다. 그는 한국 역사 현장에 찾아온 일본 그리스도인에 대한 기자의 생각을 궁금해 했다. 진실과 대면하려는 용기가 인상적이라 답하자 고미네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미소 지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선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같은 민족이니까요.”

화성·천안=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