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아닌 석회석 바위 지형… 예수님 40일 금식하신 영성의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
기독교인이라면 유대 광야라는 말과 함께 분명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떠올릴 것이다. 마태복음 3장과 누가복음 3장, 그리고 요한복음 1장은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것처럼 유대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고 외치는 이가 있었으며, 그의 이름은 세례 요한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수님은 이 광야에 접해 있는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다시 광야로 나와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시다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유대 광야는 메마르고 황폐한 땅이다. 영어로 사막(desert)이라고 번역된 광야는 히브리어로는 미드바르(midbar)로, 사람이 잘 살지 않는 건조한 땅을 말한다. 예수님이 등장하는 영화나 그림 중에 이스라엘의 지형을 잘 이해하지 못한 작품은 광야의 예수님을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미드바르는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과는 상당히 다르다. 강우량이 연평균 400∼500㎜밖에 안 되기 때문에 황량하고 건조한 땅인 것은 맞지만, 모래가 아닌 석회석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지형으로 흙바람이 불고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모습보다는 산지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샘물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물과 관련된 곳 중 와디라 불리는 계곡이 특히 눈길을 끈다. 겨울 우기에 석회석 산지의 약한 부분으로 흘러 들어가 땅에 홈이 파이는데, 오랜 세월 같은 자리로 물이 흐르면서 깊은 계곡이 된 것이 와디다. 와디 중 깊은 것은 360m 이상의 것들도 있다. 가장 큰 와디 무라(Murabbaat)의 경우 나할 다르가(다르가 강)라고 불리는데 43㎞ 길이에 230㎢의 물을 나른다. 나할 다르가의 물은 엔게디의 폭포를 만든다.
와디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계곡을 느낄 수 있는 장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현대 이스라엘인들은 비가 오지 않는 여름 이 와디에서 하이킹을 하고 캠핑을 즐긴다. 겨울이 와서 와디에 물이 흐르면 유대 광야에는 풀이 돋아난다. 목동들도 가축을 방목한다.
유대 광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거주지는 베두인 텐트다. 낙타와 염소, 양떼 속에 뛰어다니는 아이와 개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광경은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던 다윗도 겨울에는 가까운 유대 광야로 나와 양을 쳤고, 거기서 맹수들(사자와 곰)을 만나 죽이고 그의 양들을 보호하였다(삼상 17장). 지금도 유대 광야에는 야생 늑대나 승냥이들이 출몰한다.
유대 광야의 위치를 정확히 설명하자면, 유대 산지에 있는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그리고 헤브론의 동쪽 지역으로 사해까지 내려가는 지역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대 광야의 연평균 강수량은 500㎜를 넘지 않는다. 사람이 정착해 살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적을 피해 도망을 온 피난민이나 종교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추구하는 이들의 은둔처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다윗도 사울의 시기와 미움을 피해 엔게디 광야로 도망갔다(삼상 24:1). 신약시대 헤롯은 그를 대항하는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에 대비해 이 광야에 마사다와 헤로디온 같은 도피성을 높은 산 위에 지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이 로마와 결탁하고 정치적으로 부패하며 종교적으로 타락한 것을 한탄하던 당시 유대인들 중 일부는 사해 앞 언덕에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들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공동체가 남겨 놓은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이다. 사해사본이라고 불리고 있다. 사본과 함께 예수님처럼 유대 광야에서 은둔하며 기도하고 수련을 다진 이들의 수도원도 발굴되고 있다.
사해-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
이스라엘의 지형을 이야기할 때 유대 광야와 항상 함께 등장하는 곳이 사해다. 유대 광야가 끝나고 요르단과 경계를 이룬 곳에 위치한 사해는 이스라엘에는 상당히 중요한 지형이다. 사해는 영어의 ‘Dead Sea’를 그대로 번역한 단어로 생명이 전혀 살고 있지 않는 물이란 뜻이다. 성서에서는 아라바의 바다 염해(신 3:17, 수 3:16) 혹은 그냥 염해(창 14:3, 민 34:3, 34:12, 수 15:2, 15:5, 18:19)라고 부르는데 소금의 양이 다른 어떤 곳보다 높아 말할 수 없이 짜다. 사해는 북쪽 갈릴리 호수의 물이 요단강을 흘러내려 모인 곳인데,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고 한곳에 고여 있어 바다가 아닌 호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바다처럼 염도가 높아 바다라 부르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보통 바다의 염도가 3∼5%인데 반해 사해의 염도는 30%가 넘는다. 몸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들어갈 경우 소금물이 닿아 고통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따갑다. 사해라는 이름 외에도 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진 흔적이라고 생각되어 ‘소돔 바다’, 롯의 부인이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한 것과 관련을 지어 ‘롯의 바다’, 혹은 사해 주변에서 역청이 발견되기 때문에 ‘역청의 바다’라고도 불렀다. 십자군 시대에는 생명이 살지 못한다 하여 ‘악마의 바다’라고도 했다. 히브리어로는 여전히 ‘얌 하멜락흐’ 즉 염해(鹽海)라고 불린다.
사해는 시로-아프리카 계곡의 일부분이다. 200만년 전 지각변동으로 만들어졌다. 사해의 수면은 주변 바다보다 423m가 더 낮다. 사해의 깊이는 최대 377m이다. 매일 700만t의 물이 증발하고 있어 염도는 매년 더 올라가고 있다. 남북으로 길이는 55㎞, 동서 방향 폭은 가장 넓은 곳이 18㎞다. 사해의 강우량은 유대 광야보다 더 적어 연평균 50㎜밖에 되지 않는다. 여름에 가장 더울 때는 섭씨 40도를 웃돌고, 겨울철 가장 추울 때도 영상 20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한다.
사해는 갈릴리 호수나 요단강과는 달리 신약에는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아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역 중심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약에서도 자주 언급하지 않았다. 여호수아서에 유다와 동쪽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로 등장하고 있다. 사해는 지금도 요르단과 국경선을 이루고 있다. 사해의 서쪽은 이스라엘, 동쪽은 요르단이다. 요단강 건너 동쪽에 있는 나라들이 유다를 치러 올 때 사해는 이 전쟁 행렬에 방해가 되곤 했을 것이다.
여호사밧 시대에 암몬과 모압이 바다(사해) 저쪽에서 이스라엘을 치러 왔을 때 사해의 남쪽 가장 좁은 부분을 건너 사해 옆 유대 광야 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면서 엔게디에 이르렀다(대하 20:2).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에스겔은 성전의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 바다 즉 사해로 흘러 그 물이 되살아나고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게 되는 회복의 날이 오리라고 예언했다.
비록 생명이 살 수 없어 죽은 바다라고 불리지만 사해는 이스라엘에 농사 지역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해는 미네랄이 풍부하다. 사해 주변에는 이를 가공해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 많다. 포타슘이라든가 나트륨의 생산과 더불어 사해의 진흙과 미네랄을 이용한 화장품의 생산은 이스라엘 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사해 온천이 아토피나 피부병에 좋다는 소문 때문에 이 지역 호텔은 항상 북적거린다. 사람이 수영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뜬다는 기이한 현상도 관광객의 발길을 끈다. 사해는 그 자체로도 이스라엘의 효자 상품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도 다르지 않았다. 이집트는 미라에 사용하는 역청을 사해 해변에서 얻었다. 고대 여러 역사학자들도 사해 미네랄의 치료 효과를 언급하고 있다. 주후 6세기 마다바 교회의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 성지 지도에는 사해에 떠 있는 배에 하얗게 소금이 실려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사해의 소금을 사용했으리라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자원으로 가득 찬 사해가 최근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물이 줄어들고 있다. 사해 남쪽 끝은 이제 바닥이 드러난 상태이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한세대학교 강사>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유대 광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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