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유대 광야 2 (마사다 上)

열려라 에바다 2014. 8. 23. 12:28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유대 광야 2 (마사다 上)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유대 광야 2 (마사다 上) 기사의 사진
헤롯이 만든 광야의 요새… 로마에 항전한 유대인 명소

난공불락의 요새-마사다

사해의 서쪽 해변을 따라 가파르게 형성된 유대 광야는 요새를 건설하거나 은둔지역으로 사용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유대 광야에서 대표적인 요새는 바로 ‘마사다’이다. 마사다는 헤롯이 요새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했지만 로마에 대항한 유대인의 마지막 항전지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덕분에 마사다는 유대인 순례객들이 예루살렘 다음으로 많이 방문해 유대적 감동을 얻는 장소가 됐다.

‘에-세베(es-Sebeh)’라는 아랍어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이다. 유대 광야의 남쪽 도시인 아랏에서 동쪽으로 20㎞ 떨어져 있는 마사다는 사해를 바라다보며 우뚝 솟아 있는 언덕이다. 가장 높은 부분이 해발 59m에 불과하지만 해수면보다 낮은 사해 수면을 기준으로 한 높이는 470m에 이른다. 마사다 언덕 정상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동쪽의 280m 길이의 뱀길(Snake Way)을 이용해야만 한다. 비록 마사다 서쪽 길은 100m밖에 되지 않아 낮기는 했지만 경사가 급해 정상에 도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마사다의 정상은 편평한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남북의 길이는 550m, 동서의 폭은 270m다. 헤롯이 세운 3.7m 두께의 포곽 성벽이 1.3㎞의 언덕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마사다에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오직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뿐이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에 의해 유대 왕이 된 헤롯이 주전 37∼31년 유대인들의 반란에 대비한 피난처로 마사다에 벽을 쌓고 곡식과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과 궁전을 지었다. 마사다는 또 로마에 의해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자 마지막 저항군들이 결사항전하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장소라고 기록돼 있다.

마사다의 위치가 처음 알려진 것은 1842년이었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는 그리 인기 있는 저서도 아니었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꽤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책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받지 못했다. 1920년대 람단(I Lamdan)이라는 시인이 마사다를 언급하며 유대인들의 저항정신을 고취하고자 했다. 1963년과 65년 히브리대 교수 야딘(Y Yadin)과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백명의 유대인 참가자들이 발굴작업을 벌여 마사다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마사다는 400m 이상의 높은 언덕 위에 있었기에 사람들의 방문이 오랫동안 거의 없었다. 덕분에 2000년 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어 우리에게 헤롯과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었다.

마사다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안타까운 것은 야딘이 너무나 큰 고고학적 야망으로 인해 마사다를 거의 90% 이상 드러내고 다시 재현해 놓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최근 발전한 고고학 기술을 발굴에 도입하거나 적용하기 어려워졌고, 연구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헤롯의 요새

이두메아 출신인 헤롯에게 로마는 왕권을 허락했다. 정통 유대인이 아닌 개종한 유대인이었던 헤롯은 항상 그의 정통성에 위협을 받았고 그의 아버지처럼 살해될까 두려워했다. 그는 로마로부터 왕권을 허락받기 위해 떠나면서 그의 부인과 아이들을 사해 앞 절벽 마사다 언덕에 군사들과 함께 잠시 머물도록 했다. 왕권을 받고 돌아온 헤롯은 자신의 가족을 보호해준 마사다가 요새로서 상당히 유용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언젠가 자신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정통 유대인들에 대비해 요새를 만들어 두었다. 요새의 정상은 성벽을 두르고 탑을 세우는 등 방어시설을 철저히 갖췄다. 성 안의 다양한 건물들은 뜨겁고 건조한 이곳 기후에서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회칠을 하고 물과 곡식을 충분히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북쪽과 서쪽에 각각 궁전이 있었는데 북쪽 궁전의 경우 가파른 절벽의 경사면을 이용해 세 개의 계단식 궁전을 건축했다. 무엇보다 이 궁전에서 바라보이는 유대광야와 사해의 모습이 절경이어서 화려한 건축물을 자랑하는 헤롯의 또 하나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꼭대기층의 궁전에는 방들이 있어 왕과 그의 가족이 거주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이 방들을 나와 북쪽을 바라보면 절벽을 깎아 만든 굉장히 좁은 계단으로 연결돼 있는 세 개의 테라스를 만난다. 그중 정상에 있는 테라스는 반원 형태로 두 줄의 기둥들을 세워 마치 궁전의 안뜰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기둥들은 멀리서 보면 마치 로마의 대리석처럼 보이도록 흰색의 회칠을 하였고 모자이크로 바닥을 장식했다. 바로 아래에 있는 두 번째 테라스와 마지막 테라스의 경우는 유흥을 위한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테라스는 첫 번째 테라스처럼 두 줄로 기둥들이 서 있지만 원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위에는 뜨거운 태양을 가리도록 지붕이 덮여 있었다. 마지막 테라스는 사각형으로 벽면에는 프레스코와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의 장식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 테라스는 목욕탕으로도 사용됐다. 이곳에서는 주후 73년경 로마에 의해 죽은 것으로 보이는 세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잘려진 여인의 머리로 여인의 머리는 당시 결혼한 여인이 주로 하는 땋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서쪽의 궁전은 요새 내의 주요 거주용 건물로 4000㎡에 달하며 마사다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서쪽의 예루살렘을 향한 성문 근처 포곽 성벽의 중앙을 따라 건설됐으며 이 중 눈에 띄는 건물은 왕실 거주지다. 이 건물은 중앙에 안뜰을 두고 방들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로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이 지붕을 지탱하고 있다. 건물의 바닥 역시 꽃과 기하학적 문양의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으며 학자들은 이 방에 왕좌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북쪽 궁전의 뒤쪽에는 15개의 긴 방들로 이루어진 건물이 있는데 언덕이 포위당했을 때 요새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곡식이 저장돼 있었다. 방들에는 각각 다른 곡물이나 음료가 담겨 있는 항아리들이 있었는데 항아리 표면에는 담겨 있던 내용물과 보내고 받는 이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중에는 이탈리아에서 헤롯에게 보낸 포도주를 담은 항아리도 있었다.

야딘의 발굴 당시 발견된 회당은 최초로 발견된 신약시대 즉 주후 1세기 사용된 회당이었다. 유대인 저항군의 동전들과 토기 조각들이 발견됐는데 한 토기 조각에는 제사장을 위해 바친 십일조의 기록이 남겨 있었다. 회당의 뒤쪽 방은 문서를 저장했던 서고로 신명기 33∼34장과 에스겔 35∼38장 등의 문서 기록이 발견됐다.

마사다의 건물들 중 유명한 것은 로마의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작은 건물이다. 마사다를 방문하는 손님들과 마사다에 거주했던 상류층들이 시간을 보냈을 목욕탕의 모습은 상당히 아름답다. 모자이크 바닥으로 장식된 안뜰을 통과해 들어가면 프레스코 장식으로 벽면이 그려진, 옷을 갈아입는 방과 냉탕이 있다. 목욕탕에서 가장 큰 방인 온탕은 200개의 기둥을 낮게 세우고 그 위에 두꺼운 바닥을 깐 후 외부에 불을 지펴 뜨거운 공기로 바닥을 채우도록 구성돼 있었다. 벽면은 토기 파이프들로 덮여 있어 이 뜨거운 공기가 다시 파이프들을 타고 올라가 벽까지 따뜻하게 데우도록 만들어졌다. 목욕탕의 천장은 아치 형태로 만들어져 수증기로 올라간 뜨거운 물방울이 아래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이 아닌 벽면으로 흘러 떨어지도록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식의 삶을 사랑했던 헤롯의 목욕탕과 궁전 어디에도 로마식의 동물이나 신의 형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꽃이나 식물, 기하학적인 무늬들로 마사다 전체를 장식하고 있어 유대인들의 예술적 기조를 따르고 있다.

이렇게 아름답게 건설한 궁전을 헤롯은 그다지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헤롯이라는 이름이 기록된 컵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헤롯이 마사다에 거주했다는 흔적이나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마사다를 이용했던 사람들은 헤롯이 그의 왕권을 위협할까 항상 두려워했던 유대 혁명가 혹은 열심당원들이었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한세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