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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7. 교회 : 새로운 피조물] ① 교회란?

열려라 에바다 2014. 9. 6. 20:42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7. 교회 : 새로운 피조물] ① 교회란?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7. 교회 : 새로운 피조물] ① 교회란? 기사의 사진교회, 겸허하게 그리스도 정신에 충실해야

최근 교회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다. 교회에 대한 비판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같다. 그것은 교회가 기독교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기독교인들은 마음이 무겁다.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하는 신자가 갈수록 많아진다.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네 가지 표식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네 가지 표식(marks)을 통해 교회를 규정했다. 네 가지 표식을 간략하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이 고백은 교회의 본질을 잘 표현해준 고백으로 꼽힌다. 하지만 필자는 교회를 규정하는 근본 네 가지 표식을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려한다.

첫째, 교회(ecclesia)는 그리스도에 의존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의 몸이다(골 1:18). 교회가 그리스도의 정신에 굳건히 머물 때 바른 교회가 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교회가 있다. 하지만 교회가 있는 곳에 반드시 그리스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떠나는 과오를 종종 범했다. 교회는 언제나 겸허하게 그리스도의 정신 속에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교회가 역사의 주체이고 세상의 머리가 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 교만할 때 언제나 위기가 왔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바른 교회는 건물, 경제력, 교인의 숫자에 있지 않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며,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공동체이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희망을 선포하는 공동체이다.

둘째,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방향성을 가진다. 교회는 역사 속에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움직여야 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 역사 속에 이루어지도록 헌신해야 한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에 응답한 공동체가 교회의 근원이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부름 받은 공동체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방향성을 상실할 때 역사와 사회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과제를 잃어버린다.

셋째,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이다. 교회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폭발적인 임재가 초기 교회 공동체를 형성시켰다(행 2:1 이하). 교회는 성령의 집으로서 성령에 의해 인도된다. 그렇기에 교회 자체가 성령에 의한 새로운 피조물이다. 교회는 이 세상의 다양한 목적을 가진 집단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다.

교회는 단순히 ‘존재’하기 위해 모이는 단체가 아니다. 따라서 교회는 행정이나 경영의 논리에 의해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행해야 할 임무와 역할을 자본주의적인 사고나 효율성에 의해 판단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며, 장사하는 곳도 아니다. 교회를 지배하고 이끄는 분은 오직 성령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순종해야 한다.

넷째,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벧전 2:9∼10, 고후 6:16, 히 8:10)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백성이라는 뜻이다. 교회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백성이지, 조직이나 제도가 아니다.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하나는,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성’을 가진다. 교회는 성직자의 교회도 아니고, 신앙적 결단을 한 개개인의 모임도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과 부름을 받은 믿음의 공동체라는 자신만의 성격을 가진다.

그렇기에 ‘믿음’은 각 신자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며 가꾸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성도의 공동체 속에서 믿음은 자란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선택받은 자들만의 폐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름받은 자들이 가져야 할 책임성을 의미한다.

교회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위에서 본 교회에 대한 네 가지 정의는 교회의 본질을 말해준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명을 실현해 나가는, 믿음으로 모인 공동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지상의 어떤 모임과도 구별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이 역사 속에서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가 예산을 자신을 위해 모두 쓰고, 교인들이 가진 재능과 달란트를 자신이 속한 교회만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된다. 현대교회에 건물이나 행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교회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본질에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순간, 교회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교회가 자신을 위해 존재할 때 교회는 인간의 집단이 되고 만다. 교회는 임시방편적인 얼마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운영’하는 곳이 아니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곳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초기 교회가 제도가 강해서 로마제국에 맞섰던가?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교회가 경영과 행정으로 세상을 이겼던 적이 있었던가? 그들은 건물 없이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순교의 피를 흘렸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라. 건물이 크고 화려했다고 해서 교회가 강했던 것이 아니다. 제도와 조직을 앞세웠다고 강했던 것도 아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정신에 충실하게 머물 때 그 교회가 가장 강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하고, 구원을 위해 존재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성령의 이끌림에 순종하며, 이 역사를 변화시키고 새 창조를 향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동건 교수 <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