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1.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에서 그 해답을 주고 있다. 첫째, 하나님이 계신 것 둘째,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어서 영생을 얻기를 원하시는 것이라고 하였다(요 6:40).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요 17:3)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첫째, 하나님을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하며 둘째,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천지를 지으신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체를 입으시고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시므로 모든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도록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하였다. 여기서 ‘듣는다’는 ἀκοή(아코에)는 요한계시록 2장 7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할 때에도 같은 단어로 사용이 된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귀에 들리는 소리로 듣기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깨달아 유념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주로 모신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고, 그 뜻대로 순종할 때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인 것이다.
만일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하였다(약 1:22).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곧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고 한다. 말씀은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그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것을 행할 수 있어야 말씀을 바로 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 믿음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성령의 깨달음으로 우리 안에 임할 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순종하는 사람은 생명이 역사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지 아니하는 믿음은 죽었기 때문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고 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지 않는 행함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1)고 한 것이다. 육체의 사람이 죽지 않고는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 육체의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십자가를 짊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2.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와 찾는 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반드시 계신 것과” 라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막 12:27)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산 자, 죽은 자는 육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산 자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육이 살아있다고 하여도 영적으로 죽은 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한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믿음의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래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이 구원을 받은 자인 것을 믿고,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때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를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은 산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심으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상이 반드시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은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영원한 상급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시므로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말씀이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그 심령에 임하게 되므로 심령이 천국을 누리게 된다. 그래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행 7:38)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그 입술에서 생명의 말씀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누구도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수도 증거할 수도 없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1-2)
3. 생명이 흐르는 믿음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는 믿음 안에는 예수님의 생명 즉, 생명의 말씀이 있으므로 그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여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들을 고치고, 상한 자를 치유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하신 말씀이 곧, 태초부터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예수님 자체이다(요일 1:1).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을 증거 하는 말씀으로 들리게 된다면 믿음이 생기고 생명이 역사를 하게 된다. 그래서 참된 믿음에는 예수님이 나타나게 된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고 하신 말씀과 같이 예수께서 겨자씨만큼만 나타나도 만사형통의 축복이 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겨자씨만한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 안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선하신 뜻을 이 땅에서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을 정결케 하시고, 그 안에 거하시면 그의 기쁘신 뜻을 이 땅 가운데서 행하기를 원하신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시 115:16)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이 땅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이 땅에 살던 사람 중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이 땅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함같이 우리는 모두가 아담 안에 속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의(義)가 되신 예수님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예수님을 영접할 때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게 되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거듭났다는 것은 내가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게 되므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한 몸, 하나가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몸이 된 믿음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거듭났다고 한다면,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사는 세상의 영에 속한 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으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 안에 있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려주셔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우리를 인도 하시는 것이다.
4.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
참된 믿음은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이 내 몸에 나타나는 것이며, 그 예수님이 나타날 때만 하늘나라의 영원한 상급을 쌓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헌금을 교회에 드리고, 봉사를 하였어도 예수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고 한 것이다.
아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을 때 강보에 싸여 있었다. 이 강보에 싸여진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표적이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눅 2:11-12)
예수님은 강보에 싸여져 있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보지 않고는 보이지 않는다.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보러 갔던 목동들이 아기 예수를 보지 못하고 강보에 싸인 것만 보고 돌아섰다면, 그들은 구원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고, 많은 봉사를 하였는가 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신 믿음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보에 싸여져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구원의 표적인 강보에 싸여있는 예수를 보았다면, 그 구원을 맛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육체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구원의 삶이다. 그 생명의 예수님이 우리 육체 가운데 나타나므로 생명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될 때 하늘나라의 영원한 상급을 쌓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싸고 있는 강보만 보고 말기도 하고, 강보에 싸인 어린 예수님을 보기는 하였지만 그 표적을 믿고 따르지 못하기도 한다. 강보만 보고 예수를 믿는다면 이는 분명히 죽은 믿음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구원의 예수님을 경험하고, 열매 맺는 삶을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5. 공력이 남을 수 있는 것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2-15)
우리의 터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우리는 믿음의 집을 세워야 한다. 사람들은 그 믿음의 집을 금과 은과 보석과 나무와 풀과 짚으로 세운다. 그러나 이 집들은 반드시 그 공력을 불로 시험할 때를 만나게 된다. 이때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만이 남아 상급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집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집을 지은 자들이다. 금은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살아온 자들, 은은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 있는 믿음으로 살아온 자들, 보석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영혼을 사랑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자들을 의미한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5) 라는 말씀과 같이 금, 은, 보석과 같은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나타나시므로 공력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하늘나라의 상급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무와 풀과 짚은 다 태워져 버리기 때문에 남은 공력이 하나도 없게 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세운 집은 예수님이 나타나시지 않는 산 믿음의 집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집을 지은 자들은 공력이 없고 상급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고전 3:10-14)
6. 오직 예수
사람들 보기에 열심히 많은 일을 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예수님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이 없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한 것은 예수님이 나타나도록 일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예수님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이 나타나는 것만이 하늘나라의 영원한 상급이 되는 것이다.
만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일을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상급이 되지 않는다. 주님의 은혜를 알고, 믿음 안에서 그 은혜에 감사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일을 할 때 공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행하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 돌려야만 한다. 우리는 언제나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께서 내 몸에 나타나시도록 내 자신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모습이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 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4:11)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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