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콜레라와 붉은 바지

열려라 에바다 2011. 10. 24. 16:42

제목 : 칼럼

<< 내용 >>

콜레라가 유럽에서 맹위를 떨친 것은 1830 년대 전반이었다. 당시 파리에 가있었던 독

일 시인 하이네는 파리의 콜레라 공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갑자기 죽은 것은 병이라기보다 독에 의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

았다. 빵가게, 푸줏간, 술집, 야채시장에 독을 뿌리고 다니는 자가 분명히 있다는 것

이었다. 이 소문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모이는 거리마다 웅성거렸다. 그러다

가 수상한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하얀 가루약을 보았다고 말하면 군중은 야수처럼 달려

들어 무자비하게 죽이곤 했다. 이렇게 참살당한 사람을 나는 여섯 명이나 알고 있다.'

당시 파리에서 12만 명의 시민이 콜레라를 피해 빠져나갔으며 남아 있는 사람도 외출

을 삼가, 파리는 죽음의 도시 같았고 나다니는 사람은 십중팔구 붉은 옷을 걸치거나

목도리를 하거나 붉은 스타킹, 붉은 구두로 차리게 마련이었다. 콜레라 병균이 붉은

빛을 무서워하여 접근하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라 했다.

유럽에서 붉은 빛이 돌림병의 예방이나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생각은 이미 기원전부터

있어왔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서적인 <파피루스 에멜스>에 공작석(孔雀石)이나 붉은

흙이나 검은고양이의 붉은 피는 천연두나 눈병 같은 돌림병을 예방하고 치료한다는 대

목이 있다.

이것이 유럽에 전승되어 중세 유럽에서 천연두가 유행하면 방안에다 붉은 커튼이나 붉

은 모기장을 치고, 환자가 생기면 붉은 옷을 입혀두는 관습이 있었다. 옛날 유럽에서

의사들의 왕진 다닐 때는 붉은 가운을 입었으며 병원 표시로 붉은 외등을 다는 관습이

나 병원 표시의 십자가 붉은 빛인 것도 이 붉은 빛의 의료효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연한 일치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콜레라가 유행하면 그 예방.치료제로 붉은 색

이 등장했었다. 일제 때 콜레라 유행시에 채집된 관행을 보면, 관청에서 발행된 문서

의 붉은 주인(朱印) 찍힌 부분을 오려 환자의 이마에 붙이거나 이를 태운 재를 물에

타 먹이기도 했고, 붉은 글씨로 관우,장비,포도대장,헌병,순사같은 무서운 사람 이름

을 써 붙이는가 하면 붉은 부적을 문기둥에 붙이기도 했다.

해방되던 이듬해 콜레라가 극성을 부려 교통을 두절시키고 입학시험을 연기하는 등 법

석을 떨었는데, 당시 여자는 붉은 속바지를 입고 남자는 붉은 주머니를 차면 콜레라에

걸리지 않는다 하여 붉은 바지가 크게 유행했었다.

불안한 심리를 악용, 상혼이 끼어든 것일 수도 있으나 붉은 빛이 돌림병을 예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붉은 건 불이다. 불은 만물을 소진시킨다. 콜레라 귀신도 불을 무

서워 할 것이라는 원시적 유감주술(類感呪術)이 동서를 초월하여 콜레라를 둔 붉은 대

항을 있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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