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창변(窓邊) 경찰대

열려라 에바다 2011. 10. 24. 16:39

제목 : 칼럼

<< 내용 >>

인조(仁祖)는 병자호란의 대공신 최명길(崔鳴吉)을 파면하는 용단을 내렸는데 그 이유

는 간단하다. 이 정승이 형조(刑曹)에 있을 때, 종을 꾀어다가 그의 상전의 죄를 고발

시키고 아내를 잡아다가 남편이 지은 죄를 고발시킨 일에 대한 응징이었던 것이다. 죄

를 찾아내어 다스리는 일보다 삼강 오륜, 곧 강상(綱常)을 해치는 일을 더 중요시했던

전통 사회의 가치관이 선명히 드러나는 응징이다.

인조 5 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말치라는 여인이 그의 남편인 김홍원이 대역을 음모

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직에 고발하였다. 이 사실을 상주(上奏)받은 임금은 노발대발하

며 남편을 고발한 말치를 잡아들여 처단하였다. 국가 변란을 고발하는 중대사인데도,

남편을 고발하는 처첩이 생긴다는 것은 나라가 속에서 썩고 기둥이 기우는 징조로 중

대시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죄보다 고발이 더 악덕이었던 전통 사회였다.

이 도시 저 도시,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사는 뜨내기 이동 사회는 낯선 사람들의

이해(利害) 집단이기에 계약-> 규범-> 법이 발달하고, 그러기에 규범이나 법을 어기는

일이 있으며 의당 고발해야 한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한 마을에 이웃하고 살아온 정착 사회는 계약이나 법 이전에 정->

의리-> 강상이 발달하고 따라서 법을 어기거나 공공(公共)을 해치는 일을 보더라도

고발하는 것이 악덕이 되는 것이다.

곧 공공 정신의 결여는 이동.정착이라는 취락 구조의 차이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도시화의 진행으로 이동 사회로 급성장하면서 공공 정신이 긴요하게 요구

되고 있는데도 의식 구조는 그 변화에 따르지 못하고 있다.

유럽에는 속칭 창변 경찰(窓邊警察)이라 하여,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창

변에 정위치를 잡고 하루 종일 밖을 내다보고 시야속에서 저질러지는 비공공 행위를

적발 고발하는 것이 전통이요 관습이 되고 있다.

주차하면서 남의 차에 찰과상을 입히면 바로 이 창변 경찰에 의해 고발되어 경찰차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어디선가 내려다보고 있을 창변 경찰의 눈이 무서워 범법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고발 정신의 결여를 악용, 공공 공간에서 강력 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우리 나라인지

라 더욱 창변 경찰이 절실해지고 있다. 때마침 서울 종암(鐘岩)경찰서에서 환갑 넘은

노인들로 창변 경찰대를 발대하여 우범성의 골목을 감시하게 한다니 전국적인 확대로

온 우범 공간을 이 창변 경찰의 보이지 않는 시야에 들게 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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