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마루에 올라서면 초록 융단을 타고 구름 위를 산책하는 것 같다. 푸른 초원 위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나 소 무리를 보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알프스가 따로 없다. '윙윙'거리는 하얀 풍차를 향해 몰려드는 구름 군단은 로시난테를 탄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를 연상케 한다. 멀리 이어지는 중중첩첩한 산과 드넓은 바다는 '내 마음의 풍경'을 완성한다. '대관령 하늘목장' 얘기다.
운이 좋았다. 하늘목장을 방문한 지난 10일 오전. 변화무쌍한 날씨로 유명한 대관령은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을 이고 그림 같은 경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산봉우리 사이에 하얀 바다를 연출한 구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황홀경이었다. 여기에 푸른 초원에 발을 딛고 늘어선 ‘거인’ 같은 풍력발전기들이 초대형 바람개비를 돌리며 독특한 풍광을 더해줬다. 대관령 전체 풍력발전기 49대 가운데 29개가 하늘목장에 터전을 두고 있다.
옛 대관령휴게소에서 대관령의 최고봉 선자령(仙子嶺·1157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등산코스는 경관이 훌륭하기로 유명하다. 배낭을 메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선자령 정상이 보일 무렵 나무들은 제 키를 낮추고 초지와 풍차는 색다른 모습을 풀어놓는다. 이곳이 1974년부터 삼양목장과 함께 대관령을 터줏대감처럼 지켜온 하늘목장이다. 하늘목장의 엉덩이쯤에 붙어 있는 선자령에 올라서면 맑은 날 동해 바다와 강릉시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멀리 알펜시아리조트 스키점프대도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선녀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고개를 끄떡이게 한다.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래된 다리를 건너면 하늘목장 1단지다. 목장의 면적은 1000만㎡(약 300만평)로 삼양목장(약 700만평)보다는 작지만 여의도 면적(제방 안쪽 290만㎡)의 3배가 넘는 거대한 규모다. 걸어서 다니자면 하루 종일도 모자란다. 이웃한 삼양목장을 살짝 감싸 안는 V자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1단지는 V자의 오른쪽 부분으로 2단지보다 약간 더 크다. 2단지는 말을 타는 ‘외승 체험’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
하늘목장은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70년대 초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한정된 국토에서 국민에게 보다 나은 먹거리를 제공하려면 대관령과 같은 고산지대를 목장으로 개발해서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유럽 순방길에 얻은 아이디어였다. 국가차원에서 대관령 개발이 시작되자 한일목장(하늘목장의 전신)도 이에 동참했다. 74년 6월 1000만㎡에 달하는 황무지를 푸른 초지로 바꾸는 괭이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일목장은 75년 젖소와 한우 300여 마리를 들여왔고 79년 처음 우유를 생산했다. 한때 소가 2000마리를 넘었지만 지금은 젖소 402두, 한우 95두를 키운다. 연간 원유 생산량은 1400t이다. 삼양목장이 90년대 후반 일부를 개방한 뒤 2000년대 초반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한일목장은 40년 동안 빗장을 풀지 않았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해 2월 하늘목장 일대가 올림픽 특구로 지정되면서 경관 농업이라는 시대적 대세에 동참하기 위해 같은해 9월 이름을 바꿔 문을 열었다.
하늘목장은 개방 이후 2개월 만에 11만명이나 다녀갔다. 크게 알린 것도 아닌데 방문객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40년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잘 보존된 자연과 목장 본연의 모습이 큰 역할을 했다.
관광 프로그램에도 ‘자연순응형 생태 체험 목장’이라는 콘셉트가 활용됐다. 목장의 모든 것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다. 목장 안에서는 환경보전을 위해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 목장은 많은 사람이 목장을 거닐기를 바란다. ‘풀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같은 안내판도 없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목장 안에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계곡도 있다.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흐르며 일궈낸 폭포도 볼 만하다.
하늘목장에는 우유를 생산하는 홀스타인 젖소 400마리와 한우 100마리, 승마체험용 승용마와 경주마, 귀여운 미니어처 말인 포니, 양, 염소, 산양 등 5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관람객들은 울타리 안에서 직접 만지고 교감할 수 있다.
관람객들에게 인기 있는 말이나 젖소들은 관람객 곁으로 스스로 다가온다. 만지거나 셀카를 찍어도 놀라거나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동물이 사람을 구경하는 것인지 사람이 동물을 구경하는 것인지 구별이 모호할 정도다.
독특한 체험은 덜컹거리는 트랙터마차를 타고 1000m가 넘는 하늘마루 전망대까지 여행하는 것이다. 15분이면 도착한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해바다에서 순식간에 몰려온 운무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초지를 뒤덮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구름 위의 산책을 경험하게 된다.
훼손되지 않은 고산지 생태환경도 온몸으로 느껴진다. 고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 에어컨 바람은 35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팔다리의 털을 곧추 서게 만들고 기분 좋은 청량감을 선물로 준다. 40년간 일반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야생화와 각종 고산식물 또한 여기저기서 자연스러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코스로 트레킹도 가능하다. ‘산책로’는 과거 목동들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이정표와 휴식을 위한 벤치 외에는 특별히 손을 대지 않았다.
목장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가장자리숲길’을 걸어보자. 방목지와 산자락 사이에서 목장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길 중간에서 만나는 영화 ‘웰컴투 동막골’ 공원도 재미를 더해 준다. 영화에서 강혜정이 초원 미끄럼을 타는 장면, 임하룡이 멧돼지와 쫓고 쫓기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가장자리길 끝에서 선자령에 이르는 약 2㎞는 ‘너른풍경길’이다. 해발 1000m의 광활한 초지 사이를 걷노라면 어느새 자갈길과 숲길이 나오고 다시 푸른 풀밭이 이어진다. 한 장의 그림엽서를 보는 듯하다. 푸른 초원으로 들어가 마음껏 ‘초록빛 샤워’를 즐겨도 된다. 독특한 풍광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일부를 가져다 놓은 듯하다.
‘숲속여울길’은 나무가 터널을 만든 약 400m 길이의 숲속 산책로다. 길 옆의 계곡은 뜨거운 여름에도 더위를 잊을 수 있어 피서에 안성맞춤이다.
이름이 재미있는 길도 있다. 가장자리숲길과 숲속여울길을 이어주는 약 500m는 ‘종종걸음길’이다. 과거 목동들이 급히 이동할 때 이용했던 지름길이다. 목동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듯하다.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평창=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
파란 바람이 하얀 풍차·초록 융단을 스칠 때… ‘대관령 하늘목장’ 생태 트레킹
하늘마루 전망대에 올라서면 구름 위의 산책… 날 것 그대로의 초원
강원도 평창 ‘대관령 하늘목장’의 푸른 초목과 하얀 풍차가 파란 하늘 아래 그림엽서 같은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초원을 이어주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는 걷기만 해도 ‘내 마음의 평화’를 안겨 준다. 풍력발전기 왼쪽으로 멀리 운무에 싸인 알펜시아리조트에는 스키 점프대도 보인다. 이 사진은 드론으로 촬영됐다.
목장 내 ‘동막골 공원’에 설치된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멧돼지와 추락한 비행기 모형.
목장 입구에서 하늘마루전망대까지 관람객을 실어나르는 트랙터마차.
목장 입구 체험장에서 양에게 건초를 주고 있는 어린이 가족.
'여행과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천으로 핀 야생화, 방문객을 반긴다… 7월의 식물원들 (0) | 2015.07.18 |
---|---|
[여행메모-대관령 하늘목장] 영동고속도 횡계IC 이용… 황태·메밀 먹거리 유명 (0) | 2015.07.18 |
[살기 좋은 명품마을을 가다] (14) 전북 완주군 구이면 안덕마을 (0) | 2015.07.13 |
[休∼떠나자-전남 광양시] 백운산 시린 계곡 추억이 졸졸 (0) | 2015.07.11 |
[休∼떠나자-전남 여수시] 만성리 모래찜질 신경통 좋아 (0) | 2015.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