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인 가야는 철기와 토기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전 가야 전기에 여섯 가야 연맹을 주도했던 금관가야의 중심이 경남 김해다. 신라에 투항할 때까지 가야가 이어온 시간은 491년. 가야의 고도(古都)였던 김해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역사박물관이다. 수로왕릉, 수로왕비릉, 구지봉 등 유적지가 수두룩하다. 이들 유적지에서 주위를 돌아보면 항상 눈에 띄는 유적이 있다. 분산성(盆山城)이다.
수 천년 간 외침을 지켜온 가야의 城
분산성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자동차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분산성 임시 주차장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오솔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거대하고 높은 성벽과 맞닥뜨린다. 산책하는 느낌이다. 등산로도 깔끔하게 잘 정비돼 있어 큰 불편은 없다.
분산성은 김해 시내에 우뚝 선 분성산에 축조된 산성이다. 분산산성이라고도 하며 사적 제66호다. 정상부의 평탄한 지형을 이용해 산봉우리를 감싸듯 긴 타원형을 이루는 석성(石城)이다. 고고학에서는 테뫼식산성이라고 부른다. 이는 삼국시대 산성의 주요 특징이다. 현재 시내 쪽으로 900m 정도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서 몇 개의 건물터도 발견됐다고 한다. 가야시대나 신라시대의 토기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산성 안에는 김해부사 정현석이 건립한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가 있다. 비석에 따르면 산성은 고려말 김해부사 박위가 왜구를 막기 위해 옛 산성에 의거해 수축(修築)했다. 이후 임진왜란 때 허물어졌던 것을 1871년(고종 8년)에 부사 정현석이 다시 현재의 성벽으로 개축했다.
성벽에 올라서면 장관이 펼쳐진다. 성벽은 용의 등줄기처럼 기어가다 산봉우리 아래를 휘감듯이 돌며 숲속으로 사라진다. 성벽은 말끔하게 복원돼 있다. 정돈된 모습이 보기에는 좋았지만 너무 깔끔하게 해 놓음으로써 옛 맛이 나지 않는 게 아쉽다.
2줄의 성벽이 군데군데 이어지는 모습이 특이하다. 일정하게 하나의 성벽이 쭉 이어지는 다른 성벽과는 다른 모습이다. 성벽을 축조하기 어려운 지역에 석축시설을 쌓은 다음 그 상부에 성벽을 축조한 층단형식(層段形式)이다. 페루의 마추픽추를 보는 것처럼 견고하고 섬세하다.
성벽 위로 걸어가다 보면 돌을 튼실하게 쌓아 올린 동문을 만나게 된다. 성문 옆쪽으로 성벽이 돌출돼 있어 방어에 용이하게 돼 있다. 성문이 좁아 암문(暗門)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 올라가면 만장대(萬丈臺)라는 봉수대가 보인다. 김해 시민들은 분산성을 만장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로 ‘만 길이나 되는 높은 대(臺)’라는 칭호를 내렸던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1999년에 복원된 봉수대 인근 바위에는 만장대라고 쓴 대원군의 친필과 인장이 새겨져 있다. 만장대에 올라서 주변을 둘러보면 김해시내와 시내 곳곳에 박혀 있는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맑은 날이면 낙동강과 남해안, 멀리 부산까지 일망무제의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산성에서 내려오면 주차장 인근에 최근 개장한 가야역사테마파크가 있다. 김해시는 다음달 5일 이곳에서 ‘2015 허왕후 신행길 축제’를 개최한다. 부산시와 공동사업으로 추진하는 이 축제는 지리적 인접성과 교통망을 활용해 관광분야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지난해부터 개최하고 있다. ‘허왕후 신행길’은 2000년 전 인도 아유타(阿踰陀)국에서 배를 타고 가락국 김수로왕에게 시집온 허황옥(許黃玉·33∼189)의 신행길 루트를 탐방하고 허왕후와 관련된 김해지역 유적지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김해 중심가에 몰려 있는 가야의 역사
김해 가야 유적의 백미는 수로왕릉이다. 높이 5m, 지름이 22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왕릉 뒤쪽으로 제법 깊은 능림이 펼쳐져 있다. 그 너머에는 수로왕과 왕비의 만남을 테마로 조성한 공원인 ‘수릉원’이 펼쳐진다. ‘수로왕을 위하여’라고 이름 붙은 산책로가 있다. 구실잣밤나무와 가시나무, 상수리나무 사이로 걷다보면 거대한 팽나무 한 그루와 마주치는데 여기서 수릉원의 전경과 수로왕릉의 모습을 그윽하게 볼 수 있다. 왕릉 안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다. 그 중에 승선전이 있다.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위패가 유일하게 같이 있는 곳이다.
가야의 역사가 시작된 ‘수로왕의 탯자리’ 구지봉(龜旨峰)으로 향했다. 수로왕은 구지봉에 내려온 금색 상자 속의 황금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김해 한복판에 자리잡은 구지봉은 ‘거북’의 형상이다. 분산성과 만장대에서 보면 봉긋한 야산이 거북을 빼닮았다. 정상에는 고인돌 하나가 눈길을 끈다. 덮개돌에는 조선시대 명필인 한석봉의 글씨로 전해지는 ‘龜旨奉石(구지봉석)’이 음각돼 있다.
구지봉에서 완만한 숲길을 따라 내려서면 가야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인물인 수로왕비를 만난다. 구지봉 바로 아래 거북의 배꼽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수로왕비릉이 있다. 허왕후 또는 보주태후라 불린 허황옥은 인도에서 태어나 열여섯 나이에 가락국의 수로왕에게 시집오기 위해 일행 20여 명과 함께 머나먼 항해길에 올랐다.
거등왕을 비롯해 아들 10명을 낳은 허왕후는 죽기 전에 수로왕에게 아들 두 명은 자신의 성을 따르게 해줄 것을 요청했고 승낙을 받았다. 모계 성을 따른 첫 사례다. 현재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시조가 김수로왕과 허황옥이다.
높이 5m, 지름 17m의 수로왕비릉 앞에는 1647년(인조 25년) 수축 때 세운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陵)’이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그 아래로 그녀가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올 때 난파되지 않기 위해 실었다는 파사석탑(婆娑石塔)이 있다. 탑이라기보다는 그냥 돌을 올려놓은 모양새다.
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동은 한국 선사시대의 유적지 중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각층이 드러난 단면과 구릉 위에 흩어진 흰 조개껍데기, 김해토기라고 명명된 토기의 조각 등을 볼 수 있다.
김해=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
2천년 전 ‘고대사의 미스터리’ 그 신비한 역사속으로… 김해 분산성에서 가야를 내려다보다
산봉우리 휘감아 도는 용의 등줄기 같은 성벽 만장대에 서면 부산까지 일망무제의 멋진 풍광
경남 김해시 서상동 시내 중심가에 있는 수로왕릉 전경. 초기에 세력을 형성했던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의 무덤이다. 거대한 왕릉 뒤쪽에 울창한 능림이 시원하다.사진은 드론으로 촬영됐다.
김해 시내 분성산 봉우리를 휘감듯이 축성된 분산성. 용의 등줄기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이 견고하고 섬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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