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김기천20- 시편 23편에 관한 말씀묵상 (6)

열려라 에바다 2011. 10. 24. 21:01

김기천20- 시편 23편에 관한 말씀묵상 (6)

시편 23편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용된 단어들의 상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절에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고’란 문장을 보면 ‘내’란 대명사와 ‘영혼’이란 명사와 ‘소생시키다’란 동사가 서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별 생각 없이 순식간에 읽어나갈 수도 있지만 영성 독서를 하는 사람은 이 문장 안에 들어 있는 단어 하나하나의 상호 연관성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먼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는 문장에서 ‘소생시킨다’는 것은 ‘회복시킨다’는 말입니다. 이 동사 안에는 회복시키는 행위가 들어 있고, 회복이 되는 대상으로서 다윗의 영혼과 회복시켜주는 주체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몸이 회복된다고 말할 때는 이전에 몸이 약했거나 병이 들어 있었음을 전제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다윗의 영혼이 회복된다고 말할 때는 이전에 영혼이 병들은 것처럼 약해져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2절에서 목자가 품에 안아야 할 정도로 걷지도 못하던 양의 모습과 본 3절에 ‘소생시키시고’라는 동사가 암시하고 있는 이전 모습이 서로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에서는 목자가 지쳐 쓰러진 양을 누이셨다고만 기록했지 양이 회복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 3절에 들어와서 다윗은 ‘소생시키시고’라고 표현을 통해 분명하게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본 문장에서 ‘나를 소생시키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소생시키는 것과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나’라는 것은 전체적인 표현이고 ‘나의 영혼’이라는 것은 부분적인 표현입니다. 즉 ‘영혼’이라는 것은 나에게 속한 한 부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신 것은 다윗 자신 전체라기보다는 ‘영혼’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 의해 쫓겨 다녔을 때에 배고픔을 겪기도 했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했으며 머물 곳이 없어서 블레셋으로 도피해 시글락이란 마을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아멜렉을 쳐서 우양을 노략질해야 할 정도로 생활이 궁핍하기도 했었습니다. 정작 다윗에게 필요로 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회복시켜주시기보다는 다윗의 영혼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만큼 다윗에게 있어서 회복해야 할 중요한 것은 아름 아닌 다윗의 ‘영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여호와 하나님이 영혼을 회복시켜주는 장면이 창세기 2장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상상해보면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흙덩어리에 불과한 사람이었지요. 하나님이 그 흙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령’이나 시편 23편 3절에서 ‘영혼’이나 모두 ‘네페쉬’란 히브리 단어를 한글로 다르게 번역한 것 뿐 입니다. 결국 ‘생령’이나 ‘영혼’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성독서에서 본문을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문장 안에 있는 단어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 문장이 다른 문장들과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의미를 보완해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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