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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절 레위인은 장인의 요청을 간신히 뿌리치고 길을 나서지만 마땅히 유숙할 곳을 찾지 못합니다. 지혜롭게 판단하고 신속하게 결정하며 결단력 있게 행동하지 못했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지체되고, 그들의 더딘 행보는 그만큼 더 불안하고 불길해보입니다. 때로는 잠깐의 유보, 순간의 방심, 온정주의적 태도가 나와 공동체를 예기치 않은 곤경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11~13절 레위인은 가까운 예루살렘 성읍에서 유하자는 종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선민이 이방 성읍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그의 말은 설득력 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을 부정하다 멀리하면서 행음한 여인을 곁에 두는 것은 그의 위선적인 신앙을 강조할 뿐입니다. 또한 그의 편견은 합리적인 제안마저 묵살하게 만듭니다. 정치적 이유이든, 종교적 편견이든, 교육과 성장 배경이든, 선입견과 배타심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나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지나치게 엄격할 때 누구든 ‘편협한 위선자’가 될 수 있습니다.
15,18절 밤공기만큼이나 차가운 냉대였습니다. 자신들을 반겨주리라는 레위인의 기대는 무너지고, 동족을 믿고 무리하게 진행한 발걸음이었기에 당혹감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이 같은 냉대는 레위인 일행이 겪을 참혹한 앞날을 내다보게 합니다. 어느 누구도 기댈 곳, 거처할 곳 없는 나그네(이방인)를 돌보라는 언약 규정을 지키지 않습니다. 불안하고 두려워 ‘쌓고 경계하고 빼앗는’ 데만 몰두하는 세상에서 성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돌봄과 베풂과 배려’입니다.
16~21절 레위인 일행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이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씻을 물과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합니다. 타향살이에 대한 동병상련이기도 하지만 그의 남다른 관심(눈을 들어)과 호의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언약 백성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는 치열한 생존과 경쟁 속에서 이웃과 지체를 향한 무관심과 이기심이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내게 유익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도움이 필요하기에 곁에 있어주고 도와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