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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 1:10 - 1:17 ] |
(찬송210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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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분쟁을 들은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결코 나뉠 수 없는 분이기에,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고린도 교인들의
파벌을 질책하고 주 안에서의 연합을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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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됨의 권면과 교회의 분쟁상황 1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절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절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치유책 13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절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절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절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도움말 10절) ‘찢어짐, 갈라짐’을 뜻하는 ‘분쟁’은 몸에서 신체 일부가 떨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12절) 네 차례에 걸쳐 ‘나는’이 반복된다. 이것은 그들의 분쟁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완고하고 심각한지를
암시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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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주’로 고백하는 그분의 권위로 하나 됨을 권고합니다. 연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자 순종해야 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한 분이신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분열하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17절)과도
모순되는 일입니다. 바울이 바란 것은 서로의 다름을 부정하는 획일성이 아닙니다. 인간적 가치에 기대어 서로 시기하고 다투는 태도를 버리고 마음과
뜻을 주님께 향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서로 ‘형제’임을 기억할 때, 다툼과 분열은 사라지고 진정한 화목과 화평이 조성되지 않을까요?
11~13절 분쟁의 핵심은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특정 지도자에 대한 교인들의 지나친 추종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성향과 욕심에 맞는 특정 사역자를 후견인 삼아 자기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고, 주님을 향한 헌신을
인간에 대한 추종으로 바꿀 뿐입니다. 교회와 지도자를 자랑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 시대에, 언제 어디서든 지도자의 영향력 때문에
예수님과 복음이 가려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14~17절 고린도 교인들은 복음을 전해준 지도자는 물론,
은사(7절)나 세례와 같은 영적인 가치들마저 자기 자랑과 경쟁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세례를 준 이들과 주께 받은 사명을
밝히며, 세례의 의미를 잊고 십자가의 복음마저 퇴색시킨 그들의 잘못을 질책합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도 이
같은 유혹과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17절 바울은 세례를 도구 삼아 추종세력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들의
인기에 연연하던 당시의 웅변가들과 달리 ‘말과 지혜’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래야만 복음의 위력과 그리스도의 위대함이 제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든 자기 우상화의 유혹은 복음 증거자들을 넘어뜨리는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의 의식과 행동의 첫 자리를 늘
주님께 내어드리고 있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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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오직 그리스도의 주 되심만 드러내는 공동체와
지도자가 되게 하소서. 열방-현재 이란에 큰 영적 부흥이 진행되면서 많은 개종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을 바른 신앙으로
인도할 영적 지도자들이 많이 세워지도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