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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 1:1 - 1:9 ] |
(찬송299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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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하면서 그들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로 인해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들을 견고케 하실 하나님의 미쁘심을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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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와 인사말 1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에 대한 감사 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절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절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구원에 대한 신뢰
8절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절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도움말 2절) 바울은 교회를 ‘단수’로 표현하며, 고린도의
여러 가정 교회들을 모두 하나의 교회로 부른다. 이를 통해 고린도 성도들의 분파적인 태도를 넌지시 꼬집는다. 5절) ‘모든 언변’은
12~14장에 나오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방언, 예언’을 가리키며, ‘모든 지식’은 예언적 계시와 관련된 특별한 것을 가리킬 것이다.
9절) ‘예수와의 교제’는 그분의 모든 것(생명, 고난, 죽음, 영광 등)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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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절 교회를 박해하던 바울을 ‘사도’로 세우시고, 가망 없는 죄인이던 고린도인들을
구별하여 ‘성도’로 부르십니다. 아들 예수와 더불어 교제하고 그 아들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보다 복된 특권이 없고
이보다 값진 사명도 없습니다. 내 존재와 구원과 새로운 신분은 우연이나 내 공로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신 뜻과 사랑의 결과입니다.
그러니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이 영광스런 신분을 소홀히 여기지 맙시다.
3절 은혜와 평강의 원천이십니다. 성도는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자들이지만, 더 깊고 충만한 인격적 관계로 성숙하기 위해서, 또 받은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지속적인 은혜와
평강이 필요합니다. 어떤 조건과 환경에 있든지 이 은혜와 평강이 내 영혼과 삶을 지배하고, 가정과 공동체에 흘러 넘쳐나도록 기도합시다.
8,9절 하나님의 미쁘심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구원의 시작(부르심)이 은혜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는 과정도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이미 시작된 우리의 구원은 ‘부족함 없는’ 은사(7절)만이 아니라
‘변함없는’ 은혜를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여전히 허물투성이인 이 땅의 교회와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서 낙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나와 우리 공동체의 회복과 안전과 성장을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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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절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신앙과 삶이 온전치 못해도,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와
은사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 목적을 잃은 은사 사용으로 교회가 갈등을 겪어도 그 은사 자체는 그리스도의 증거요 감사하게 받아야 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문제보다 은혜를 먼저 생각할 때 기대와 기도 속에서 늘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감사의 조건을 우리의
조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변함없는 하나님께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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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부르심을 따라 주신 은혜 안에서 더욱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게 하소서. 열방-분쟁, 탄압, 재난 등의 이유로 집과 고향을 떠난 난민들은 전 세계 약 6천만 명에 이른다.
이들을 위한 구제와 선교사역이 더욱 활발히 펼쳐지도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