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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바울과 아볼로는 십자가의 삶을 몸소 보여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서로 판단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가르침과 삶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은 지도자를 추켜세우며 경쟁만 할 뿐(3장 4절) 그들의 삶을 본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존경하는 지도자가 전하는 복음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참 지도자와 성도는 육신적인 자랑거리를 갖춘 자들이 아니라 십자가의 지혜를 따라 겸손히 섬기는 자들입니다.
7,8절 바울은 분쟁 배후에 있는 교인들의 ‘교만’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선물로 주신 은혜와 은사마저 처음부터 자기 것인 양 자랑하고, ‘이미’ 구원을 다 이룬 듯 십자가의 삶을 외면하며 영적 자만에 빠졌습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영적 긴장이 사라지고, 차별 없이 주신 은혜(1장 26~29절)마저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 신앙과 삶의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과분하게 여기십시오.
9~13절 ‘이미’ 왕 노릇 하던(8절) 성도들과 달리, 바울은 ‘바로 이 시각까지’ 갖은 고난과 수치를 당하며 종의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그들이 자기만족에 취해 있을 때, 바울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세상의 바보’가 되어 아무 쓸모없는 찌꺼기처럼 대접받으면서도, 모욕당하면 축복하고 핍박받으면 참고 욕을 먹어도 친절로 응대하며 ‘십자가의 미련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입니다(10절). 고난 없는 것을 축복이라 부르는 거짓 복음이 무성한 때에,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복으로 여기며 은혜로 잘 인내하고 있습니까?
14~17절 ‘왕 노릇’ 하던 성도들에게 자신의 ‘종노릇’을 피력한 이유는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만과 무지의 잠에서 깨어나도록 아비의 마음으로 훈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십자가의 길을 걷는 바울의 삶을 기억하라고 권면하며, 신실한 디모데를 산 모델로 보냅니다.
18~21절 고린도 성도들은 구원을 ‘말’하면서도 ‘삶’은 세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가르치고 보여준 것처럼, 현란한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십자가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입니다. 열매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