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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8> 하루 15시간씩 4주 심문… 北 억지 논리에 자포자기

열려라 에바다 2017. 7. 28. 08:00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8> 하루 15시간씩 4주 심문… 北 억지 논리에 자포자기

“오바마와 CIA가 당신 배후” 우겨… 사형 협박에 “순교는 영예” 응수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8> 하루 15시간씩 4주 심문… 北 억지 논리에 자포자기 기사의 사진
북한에서 석방된 케네스 배 선교사가 미국 수도 워싱턴DC 루이스-맥코드 합동기지에 도착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 선교사 동서인 앤드류 정, 어머니 배명희, 여동생 테리 정, 배 선교사. 케네스 배 제공

“당신이 소속된 YWAM의 창립자 로렌 커닝햄 위에 오바마 대통령이 있지? 바로 오바마가 이 나라를 위협하고 전복시키려고 당신을 보낸 자야. 당신은 사실상 CIA를 위해 일하는 거겠지. 오바마와 CIA가 이 일의 배후야.”

너무도 이상한 논리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당신이 저지른 일은 죽어 마땅한 짓이야. 당신은 반입한 자료로 우리 위대한 수령님 이름을 모독했어. 그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해. 당신은 여리고작전으로 조선인민의 마음을 왜곡시킨 뒤 우리를 공격할 선교사로 우리 공화국에 들어왔어. 당신은 기도와 예배 그리고 끌어들인 외부인들을 통해 우리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시도했단 말이야.”

“맘대로 생각하세요.”

나의 외마디 말에 박 조사관은 더 흥분했다.

용감한 척하려는 게 아니었다. 나도 이제 지쳤다. 이 코미디 같은 짓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미스터 박의 심문에 4주 동안 시달렸다.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이젠 죽이려면 죽이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뭐라고 죽어도 상관없단 말인가. 우린 재판도 거치치 않고 네깟 놈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냐. 우리가 맘만 먹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네 놈 목을 잘라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파묻을 수도 있어. 이곳에서 인간의 목숨은 파리 목숨만도 못해.”

“제 생명은 하나님 손안에 있습니다. 저를 죽일 수도 있다고 하셨죠. 그러면 제가 순교자가 된다는 것을 아시나요. 순교는 모든 선교사가 원하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미스터 박은 할 말을 잃었는지 눈만 껌벅였다. 내가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으니 어리둥절할만했다. 분노의 공격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침묵으로 반응하다 나가버렸다. 그런데 그는 저녁에 돌아와 “좋은 소식이 있다. 평양에 가게 됐다. 거기서 조사를 받고 귀가하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혼란스러웠다. 몇 시간 전 만해도 내 머리를 베어버리겠다던 그가 이제 내가 곧 귀가할 거라고 말했다. 나에게 그동안 한 일을 빠짐없이 자백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정부가 자비를 베풀 거라며 종이에 사죄문을 쓰라고 했다. 단 그들이 쓴 자백서를 보고 그대로 베껴 쓰라고 했다. 그동안 공식 사죄문을 쓰라고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죄문을 썼다. 새로운 사죄문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쓰지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나 케네스 준호 배는 기도와 예배로 공화국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시도함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을 어겼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10개 조항을 사죄한다고 썼다.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시라도 이 악몽을 끝내고 싶었다.

이튿날 나를 태운 자동차는 평양 시내에 들어와 식당 뒤편의 좁은 샛길을 지나 거대한 철문 앞에 섰다. 평범한 2층 건물이었다. 평양에서의 넷째 날,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내 이름은 리철이다. 최고검찰소에서 나왔다. 확인해야 할 것이 많아서 당신을 만나러 오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어. 배준호 당신은 오늘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범죄 사실로 인해 공식적으로 기소됐음을 알린다. 미국정부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오늘부터 당신에 대한 예심 과정이 시작된다.”

“재판이요?”

“예심과정이 끝나면 재판에 회부될 것이야.”

정리=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