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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철륜 <4> 연탄 배달하며 성악 연습… 교회음악과 입학

열려라 에바다 2017. 9. 26. 08:00

[역경의 열매] 김철륜 <4> 연탄 배달하며 성악 연습… 교회음악과 입학

교회 성가대 주제로 석사 논문 써… 복음성가 연구 위해 신학교 편입

 

[역경의 열매] 김철륜 <4> 연탄 배달하며 성악 연습… 교회음악과 입학 기사의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중학교 2학년 때의 필자, 막내 남동생, 어머니 어수녀 권사, 첫째 남동생, 아버지 김철용 안수집사, 여동생. 아버지는 1993년, 여동생은 2004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장애에는 눈에 보이는 장애가 있다. 지체 장애를 비롯해 청각, 시각, 척추 장애 등이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도 있다. 정신 질환이나 ‘마음의 병’ 같은 것들이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장애적 현상을 개인의 심신 차원을 넘어 일반 사회, 심지어 교회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장애적 현상이란 다름 아닌 장애인에 대한 이유 없는 차별 문제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피조물이다. 그런데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연탄 배달을 하면서 틈틈이 성악 발성 연습을 하는 동안, 마음속에는 ‘음대에 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샘솟았다. 구체적으로 연세대 교회음악과에 들어가고 싶었다. 시험을 준비하고 응시했다. 실기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당시 교회음악과 교수 한 분이 면접 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왜 교회음악과에 지원했는가?” “예, 저는 훌륭한 장로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로요.” 면접관들이 파안대소했다.

필기와 실기에서 합격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신체검사를 다시 받으라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았다. ‘아니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한 기독교 대학에서 이런 차별이 있을 수 있나’ ‘연탄배달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게 준비했는데, 신체검사에서 떨어지면 어쩌지.’ 온갖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결과는 조건부 합격이었다. ‘재학 기간 중에 신체적으로 어떤 일을 당해도 학교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다.

교회음악과에 입학했지만 기대 이하였다. 교회음악 커리큘럼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성악을 했는데, 일반 성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하면서 ‘교회 성가대’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제목에 대한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교회 성가대가 어떻게 석사학위 제목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밤 11시에 교수님 자택을 찾아가 설득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허락을 받았다. 국내 최초로 교회 성가대를 주제로 한 석사 논문은 그렇게 빛을 보게 됐다. 복음성가에 대한 신학적 연구를 위해 대한신학교(안양대 전신)에 학사 편입을 했다. 연세대 교육대학원에 다닐 때처럼 주경야독했다.

내가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교회음악의 핵심은 ‘하나님 음악’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음악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음악이 교회 음악이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문화가 오늘날 혼란스러움에 빠진 건 음악 때문이다. 교회 예배는 문화 강좌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음악은 음악 감상용으로 듣거나 공연을 위해 연주되어선 안 된다. 오직 하나님 찬양이 목적이어야 한다.

대한신학교에 편입해 공부하면서 서울 신당동 문화교회 찬양대 지휘도 맡았다. 지휘도 지휘지만 길거리 전도를 많이 했다. 대학로 근처에서 악기를 다루는 음악인들이 주된 전도 대상이었다. 음악인에게 집중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79명까지 전도해 교회에서 전도상을 타기도 했는데, 그보다 기쁜 일은 음악인 출신 19명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꾸린 것이다. 그러면서 가슴 벅찬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