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단신 서울로 떠나는 날, 어머니는 먼지가 풀풀 나는 신작로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들을 홀로 떠나보내야 하는 그 마음이 도무지 편치 않으셨던 거다. 어머니의 맘을 이해하면서도 내 맘속 한편으로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듯한 설렘과 기대감도 교차했다. 그때가 1969년 5월이었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는 서울 산정현교회. 서울에 도착해 알음알음 찾아간 교회는 흙벽돌로 지어진 예배당이었다. 교회 지하 기도실을 찾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드렸는데, 무심결에 이런 기도가 터져 나왔다.
“하나님, 이 허기진 배만 채울 수 있다면 평생 저의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 내 마음 깊은 곳에 넣어 두셨던 사명을 끌어내게 만드신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내가,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딱 하나 찾았는데 연탄가게 점원이었다. 연탄 주문을 받는 일을 주로 했다. 시커먼 쪽방이 거처였지만 단잠을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주문만 받다가 한 장, 두 장씩 연탄도 배달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보통 넉 장씩 배달하는데, 나는 한 장을 배달하기도 힘들었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배달을 시작하면 자정이 되어서야 일이 끝나기도 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나중에는 아예 연탄가게를 차렸다. 당시 동네 사람들은 나를 ‘다리 아픈 총각’이라고 불렀다.
연탄배달을 하면서 몸은 파김치가 됐지만 주일에는 꼭 교회에서 찬양 봉사를 했다. 교회학교 교사로도 열심히 섬겼다. 아이들 집에 심방도 다녔다. 그때 심방을 하며 기록했던 심방카드가 지금도 산정현교회 기록관에 보관돼 있다.
연탄배달 일을 한 햇수는 총 11년. 그런데 7년째 되던 해로 기억한다. 내 신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아마비로 아픈 왼쪽 다리에 조금씩 힘이 붙는 게 아닌가. 신기했다.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누비는 동안, 하나님께서 내 다리에 힘을 불어넣어 주신 것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전까지는 왼쪽 다리를 90도 가까이 굽히고 허벅지를 짚으며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있었다. 한번은 시골 친구가 찾아와 상태가 한결 나아진 내 다리를 보며 “이쪽으로 걸어 봐, 저쪽으로 걸어 봐”하면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렇게 힘든 연탄배달을 시키셨는지 비로소 깨닫게 됐다.
회기동에는 ‘떡정거리’가 있다. 떡을 팔다가 남으면 오후에 ‘걱정거리’가 된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나는 별로 걱정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회복케 하시고 치료해 주시고, 또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에선 “음악에 소질이 있으니 음대 진학을 생각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내게 권유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대학 진학은 생각도 못해 봤는데, 교회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며 기도했다. 그러면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틈틈이 성악 발성 교본의 일종인 ‘코르위붕겐’과 ‘콘코네’를 연습했다. 그러던 중 마음에 소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철륜 <3> 연탄 배달하자 굽은 다리에 ‘기적’… 하나님 뜻 깨달아
새벽기도 후 온종일 배달…다리에 힘 붙어 “음대 진학할 생각해보라” 주위서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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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하기 1년 전인 포항 영해고등학교 1학년 때 신현석 담임선생님(가운데) 등과 함께한 필자(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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