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결혼을 한다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가진 재산이 없고 직업이 불확실할 때는 더욱 그렇다. 대학원 시절, 돈도 시간도 없는 어려운 때였다. 그런데 잠잠하던 내 마음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한 여인을 봤을 뿐인데, 머릿속엔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상당한 부잣집 딸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40여년 전이었던 그때, 자가용으로 등하교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욕심 없이 그녀와 차 한잔 마시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시골 목사님의 조언이 생각났다. “기도는 절대로 중언부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종이에 기도를 직접 써서 하는 편이다. 그것도 길게 늘어지는 문장이 아니라 제목만 적어 놓고 집중 기도를 한다. ‘하나님, 달덩이가 떴습니다, 달덩이가.’
기도한 지 한 달 만에 응답을 주셨다. 서울 산정현교회 지하실이었다. 기도 중에 이런 음성이 들렸다. “뭘 그리 걱정하니, 만우절이 있잖니.” 무릎을 칠 만한 아이디어를 주셨다. 차 한잔 하자고 했을 때 그녀가 거절하면 ‘만우절’이니까 그냥 넘어가면 될 것 같고, 받아주면 좋은 거고, ‘밑져야 본전’이었다. ‘하나님이 장애인인 내가 거절당했을 때를 생각하셔서 마음을 위로해 주려고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76년 4월 1일 만우절, 서울 신촌 연세대 한경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용기를 냈다.
“신애씨, 차 한잔 하실래요?” 놀랍게도 그녀는 좋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종로로 갈 생각이었는데, 그만 의견 충돌이 생겨 광화문에서 각자 돌아섰다. 의견 충돌은 다른 게 아니었다. 그녀는 나에게 대뜸 테니스를 칠 줄 아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못 한다고 말했는데, 그녀는 왜 못 하느냐고 되물었다. 내가 장애인인 걸 알면서 묻는 것 같았다.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헤어진 것이다.
그날 밤 집에서 한숨도 못 잤다. 약이 오르고 분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하면서 이런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해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니?” ‘그래, 한번 도전해보자’고 결심했다. 테니스 라켓과 공 세 개를 사서 학교 테니스장으로 갔다. 강사로 보이는 분이 내 사정을 들은 뒤 말했다. “두 다리는 붙어 있잖아.” 그러면서 테니스장 한쪽을 가리켰다. 한 사람이 외다리로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치과의사라고 했다. 한 달 뒤 그녀에게 다시 용기를 내 말했다. “테니스 한번 치실래요?”
테니스 파트너가 된 그녀가 지금의 내 아내다. 목사의 사모이기도 하고 손자손녀를 둔 할머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다. 독일 유학 시절, 아내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했다. 그때 척추장애인인 내 여동생도 교습을 도왔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열심히 배워 가르칠 만한 실력을 충분히 갖췄다.
어느 날, 한 학부모가 항의를 했다. 이유인즉슨, 괴물같이 생긴 장애인에게 자식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원장이었던 아내의 답변은 단호했다.
“여기는 피아노를 잘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만한(여동생만큼 실력을 지닌) 선생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생님에게 배울 수 없다면 저희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임에 틀림없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철륜 <6> “하나님, 달덩이가 떴습니다” 첫눈에 반한 그녀
“차 한잔 할래요?” 만우절 고백 성공… 우여곡절 끝에 결혼해 올해로 40주년
![[역경의 열매] 김철륜 <6> “하나님, 달덩이가 떴습니다” 첫눈에 반한 그녀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0928/201709280000_23110923824617_1.jpg)
1977년 4월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장로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반지 서약을 하고 있는 필자. 올해가 결혼 4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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