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찬송에 대하여’가 박사 논문 제목이었다. 지도교수의 최종 허락을 받아 논문을 제출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교수 한 사람의 반대로 박사 논문 통과가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독일 대학에서는 소속 학부 교수 가운데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논문이 통과되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파악해 보니 반대 이유가 황당했다.
파사우는 독일 내에서도 가톨릭 정서가 강한 지역이다. 과거 이 지역에서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의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화형당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 지역의 대학에서 루터에 관한 논문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게 내 논문 통과를 반대한 교수의 논리였다.
깊은 낙심에 빠졌다. 그때 나를 건져준 이는 다름 아닌 레겐스부르크대의 슈바르츠 교수였다. 그는 나에게 루터 찬송을 주제로 논문을 다시 쓰게끔 허락했다. 대신 신학과에서 다시 시작했다. 독일 남부 지역 대학에서는 같은 전공으로는 타 대학에서도 박사 과정을 밟을 수 없었다.
신학과 공부는 여러 모로 힘든 결정이었지만 모든 과정을 마쳤다. 500쪽 분량의 논문을 썼는데, 지도교수는 300쪽가량을 걷어냈다.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나타나는 루터의 영향과 루터 찬송에 대한 내용을 첨부하라고 조언했다.
논문이 통과된 후 구술시험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전보다 더 까다로워져서 걱정이 앞섰다. 논문 내용에 대한 발표를 먼저 한 다음, 발표장 안에 있는 교수와 청중의 질문에 모두 답변해야 하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간간이 유머를 섞어가며 간신히 마쳤다. 청중이 모두 퇴장한 뒤에 심사를 맡은 교수들의 판정이 이어졌다. “합격!”
이런 과정이 이뤄지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1984년에 시작해서 2005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사이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논문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루터의 찬송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슈바르츠 교수 덕분이었다. 지금 80대에 접어든 그가 생존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사 학위를 받았을 당시만 해도 루터 찬송을 주제로 발표한 논문은 처음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논문 심사장 바깥으로 나오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한국 유학생들이 큰 박수로 축하해줬다. 교회음악을 전공한 학자로서 꼭 연구하고 싶었던 루터의 찬송을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루터는 총 36곡의 찬송을 만들었다. 이들 곡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 찬송가에 실린 곡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585장)’이다. 이 곡은 1700년대 중반 ‘근대 음악의 창시자’로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편곡한 것이다.
이 찬송은 1529년 루터가 종교재판을 받기 전날 밤, 그의 추종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지은 곡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시 46:1)’라는 시편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국 찬송가에 실린 뒤로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빛을 발했다. 당시 신사참배와 무신론 사상을 거부하면서 ‘일사각오’의 믿음을 고수하고자 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이 찬송을 불렀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철륜 <9> 첫 ‘루터 찬송가’ 주제 논문으로 박사학위
親가톨릭 교수 반대로 논문 통과 좌절… 신학과로 옮겨 다시 시작 총 20년 걸려
![[역경의 열매] 김철륜 <9> 첫 ‘루터 찬송가’ 주제 논문으로 박사학위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1010/201710100000_23110923827448_1.jpg)
2010년 한국을 방문한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슈바르츠 교수(왼쪽) 내외와 함께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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