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참된 마음의 안식 (마 11:28-30)

열려라 에바다 2022. 9. 12. 14:25

참된 마음의 안식 (마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시간에 “참된 마음의 안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음의 안식을 누리며 산다는 것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흉흉할지라도 평안함이 있으면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옛날에 유명한 의학자 '구선자(九仙子)'라는 선생에게 한 병자가 찾아왔습니다. 병세가 하도 다양해서 진단해 보니 그 병은 의술로 고칠 수 없는 홧병이었습니다.

 

그 때 구선자가 지어준 약이 보화중화탕(保和中和湯)입니다. 30가지 재료로 되어 있는데 그 약재가 뭐였을까요? "나쁜 생각하지 말라. 분수를 지키라. 시기하지 말라. 화내지 마라. 욕심 부리지 말라. 유순한 마음을 가져라,, 등등의 온갖 좋은 마음을 모은 처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재료에다 마음의 불, 두 대접을 잘 저어서 느긋하게 달여 수시로 따뜻하게 복용하면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중에 보화중화탕이 필요한 분이 계십니까? 먹으면 근심도 걱정도 번뇌도 고통도 다 사라지고 즐거움과 행복만 있는 그런 약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약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면서 안식을 누리는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참된 마음의 안식은 어떻게 얻는 걸까요?

 

1. 먼저 예수님을 잘 모시기 바랍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온 사람들은 모두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죄인이 용서를 받고, 병인이 고침을 받고, 귀신들린 자가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 나가는 것은 예수를 구주로 믿어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그를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이고, 늘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이제는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의 평안을 우리에게 안겨주십니다.

 

그래서 요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 안의 평강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입니다. 그래서 이 평강이 오면 다른 어떤 감정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35:10에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평안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시면 평안이 옵니다. 그러므로 평안은 우리가 예수님을 모셨느냐? 그리고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기느냐를 가르쳐 주는 척도계입니다. 평안이 없으면 신앙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때는 무엇 때문인지 밤을 새더라도 기도하고 성경 보면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후13:5에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님을 밖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계3:19-20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더불어 먹음은 행복한 우리의 영적인 체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신6:4-5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배합니다. 예배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기도시간을 정해 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엎드리면 평안을 주십니다. 늘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 모습이 신앙의 정상을 달리는 모습입니다. 마음 중심에 예수가 없어서 불안합니다. 사람의 인체도 어느 영양소 한 가지만 과잉 혹은 결핍 되도 치명적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결핍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잠4:8-10에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로 더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처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당시 율법에는 두 마리의 소가 한 멍에를 메고 쟁기질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규정이 있습니다. 동물의 크기나 힘이나 종류나 성질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균형이 맞지 않으면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힘이 센 짐승에게 더 큰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참고 온유하고 겸손할 테니 나의 멍에를 같이 매고 나한테 배워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참 안식을 얻을 것이다.' 처음에는 서투르지만 자꾸 본을 받고 배우면 예수님과 보조가 맞는 사람으로 변해가게 됩니다.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요8:29-30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예수님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 증거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배우고 져야 할 멍에는 사랑입니다. 멍에를 매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소나 낙타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낙타는 남의 짐을 지는 동물이지 자기 짐을 등에 지지 않습니다. 낙타는 등에 있는 큰 지방덩이를 가지고 있어서 오랫동안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자기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남을 위한 것입니다.

 

낙타의 머리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눈썹과 눈두덩이 주위에 길고 두껍게 되어 있고, 허파를 보호하기 위하여 코에 예민한 근육이 있어 모래가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두꺼운 가죽과 털이 있어 낮의 태양과 밤의 추위를 견디게 합니다. 넓은 발굽은 뜨거운 모래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합니다. 낙타에게서 끄르륵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몸에서 물을 아끼기 위해 물되새김질하는 소리입니다. 사막의 밤낮의 일교차를 쉽게 견디게 하기 위하여 체온이 가변적입니다. 물이 부족하면 주위의 조직으로부터 수분을 공급받아 체중의 25퍼센트까지 수분을 혈액에 빼앗기고도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의 짐을 지고 나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남의 짐만 지고 사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배우라는 것은 남의 짐을 지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갈6:2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사랑할 때 그 임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요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요일4:8에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였고, 12절에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6절에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높고 높은 보좌를 떠나 낮고 천한 이 땅에까지 내려오셔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일생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눅22:27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하셨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우리가 서야 할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최고의 안식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사랑이요 친밀함이지만 노동이나 전투와도 같아요. 지체를 위해 기도하면 지체의 영적상태와 문제가 내 심령과 몸에 느껴집니다. 그 부담이 사라질 때까지 기도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기도하고 나면 평강이 오고 능력이 옵니다. 우리는 유기체와 같아서 나 혼자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내게 슬픔이 있다면 공동체의 슬픔의 치료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전12:24-27에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인생을 사는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만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쉽게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셨습니다. 무거울 것 같지만 감당할수록 기쁨과 행복이 넘쳐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를 믿고 예수를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랑을 배우고 따라 함으로 우리의 무거운 짐이 다 벗어지고 평강이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참된 안식의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