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주일 설교. 나를 따르라 (눅 9장 57-62절)

열려라 에바다 2022. 9. 14. 16:03

 

주일 설교. 나를 따르라 (눅 9장 57-62절) 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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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는 말씀 입니다. 이 구절을 ‘지상 대명령’ 이라고 명명해서 부릅니다.

 

이 말씀의 중심은 “제자 삼으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평생 예수님을 따르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제자들을 계속해서 세워가는 것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쉬지 말고 계속되어야 합니다. 제자 삼는 것이 교회의 최대 과제이고,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의 최대 과제이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확신, 나는 예수님의 제자로써 맡겨진 일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문답과 성찰, 그리고 또 다른 제자를 삼기 위하여 복음전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지상대명령을 충성되게 실천하고 있는 제자중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 본문은 짧지만 아주 강렬하게 제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 사람의 유형을 제시하며 제자도가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깊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첫 번째 유형의 제자가 나오는 57, 58절을 읽어 드립니다.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아멘.

 

‘인자’, 사람의 아들 이라는 이 호칭은 복음서에서 82회 사용되었는데, 공관복음서에서만 69회가 나오며, 69회중 단 두 번을 제외하고는 예수님이 자신이 곧 ‘인자’라고 직접 말씀 하셨습니다. 이 호칭은 중의적(두 가지 이상의 의미)인 표현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가 들으면 예수님이 메시아 인줄 모르게 들릴 것이고, 믿음이 있는 자가 들으면 예수님이 메시아 라는 확신을 가중시켜 주는 호칭입니다. 인자는 예수님이 구원자(메시아)라는 사실을 스스로 계시하는 용어이며, 고난 받고 죽으셔야 된다는 예언적인 용어 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인자이시며 메시아 되시는 세상의 구원자 이셨지만, 누울 만한 잠자리도 마련된 곳이 없었고,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도 아무 것도 준비 된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물론이고, 예수님을 따라 함께 다니는 제자들은 어떠한 안전이나, 생활의 보장도 없었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이리 가자고 하면 따라 가고, 저거 먹자고 하면 그것으로 한끼를 떼우고, 여기서 자자고 하면 들판이라도 잠을 자야만 했습니다. 불평 불만 없이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 만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아서 다짜고짜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에수님이 보시기에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는 동기와 마음은 가상하지만, 준비 되지 못한 무모한 말이라는 것을 훤히 아셨습니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담대하게 말한 만큼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답하시기를 “들짐승인 여우나 새들도 집이 있는데 나(인자)는 집이 없어서 이렇게 떠돌아 다니고 있구나네가 어디로 가든지 나를 따르겠다고 하였으니집에서 나와서가족들친구들을 다 떠나서옷 한 벌만 입고 무작정 나를 따라 나설 자신이이 있느냐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가 정말 서 있다면 나를 따라 나서라할 수 있겠느냐” 예수님의 의중은 아마도 이러하셨을 겁니다. 추측 컨대 이 사람은 마음의 준비를 더 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첫 번째 제자의 유형은 자발적으로 제자가 되기를 지원하였지만, 제자로 살아가야 하는 고된 삶의 무게를 감당해낼 믿음의 체질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십중 팔구 작심 삼일이나, 중도 포기를 할 사람들입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나서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발적인 마음으로 담대하게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저평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용기있게 말한 순수한 동기가 무시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무모한 행동이라고 폄하 되어서도 안 됩니다. 진짜 제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사람처첨 제자의 길을 적극적으로 사모하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이 사람의 직업이 서기관이라고 나옵니다.(마 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저는 이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선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준비하고 재 도전하여서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데 크게 쓰임 받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긍정적인 추측을 해 봅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다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제자로 살아가도록 준비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말씀으로 양육하고 믿음으로 훈련 시키시고 계십니다. 바울과 같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낼 열정과 순종의 제자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비된 때에, 준비된 사람을 불러 내셔서 사용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한 후에 자발적으로 예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담대하게 요청하고 허락을 받아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우리 예수님은 너무나 우리를 강한 믿음으로 세워 주시고, 마음 껏 사용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존귀하게 쓰여지는 제자 중의 제자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모두 다 자원하는 심령이 되셔서, 인자가 걸어 가신 고난과 승리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시며, 일평생 헌신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제자중의 제자들로 쓰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유형의 제자가 나오는 59, 60절을 읽어 드립니다.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아멘.

 

첫 번째 유형의 제자가 자발적으로 찾아왔다면 두 번째 제자는 예수님이 직접 지목하여 “나를 따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권면을 받은 사람이 왜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 예수님을 따르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수락했을 때 어떤 유익이 있고, 거절 했을 때 어떤 불행이 있을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그저 “나를 따르라”간결한 말씀 뿐입니다.

 

간결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돈을 너무나도 잘 버는 직업인 세리 출신인 마태(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을 때 “나를 따르라”(눅 :27)고 동일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두 번째 제자를 부르신 말씀과 동일한 단어이고, 동일한 뜻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즉각 반응하여 예수님을 따랐지만, 두 번째 제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제자는,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 일은 가정과 개인에게 있어 분명한 중대사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버지 장례지내는 것을 포기 했다면, 그는 가족에게 버림 받았을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장사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며, 매우 합당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대답 하시기를,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말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영적으로는 죽은 자들에게 육적인 일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장례를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곧바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덧 붙이셨는데, 육적인 관례인 장례와 영적인 일의 대표적인 일을 대비시켜 말씀 하신 겁니다.

 

장례도 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는 말씀을 단순하게 재 배열하면, 가정일은 다 팽개치고 교회 일만 열심히 하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예수님이 두 번째 제자에게 “나를 따르라, 죽은 자들이 장사하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전파하라”고 하신 것은, “나를 따르라”고 하신 목적과 이유와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말씀 하시는 겁니다.

 

간결하게 해석하자면 육적인 일이냐 영적인 일이냐를 분별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판단의 기준은 삶의 우선 순위가 상황과 시간과 유익에 상관 없이 항상 예수, 항상 복음, 항상 하나님 나라를 무조건적으로 가장 먼저 선택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제자라면 주저 없이 예수님 만을 선택하고, 예수님의 말씀(명령) 만을 선택하고, 예수님이 맡겨 주시는 일만을 선택할 수 있어여 한다. 내가 너를 쓰고 싶은데 너는 그렇게 할 수 있겠는냐? 예수님이 두 번째 제자에게 이렇게 물어 보신 겁니다.

 

이 두 번째 제자가 그 다음에 어떻게 행동 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첫 번째 제자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 다시 재 도전하여 제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희망적인 예상을 해 보았는데, 이 두 번째 제자는 예수님이 직접 부르셨지만 오히려 첫 번째 제자 보다 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일들이 항상 돌부리처럼 걸리게 되면 제자의 길을 가는데 너무나도 연약한 약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복음, 하나님 나라) 보다 내 일, 내 상황을 먼저 선택하면 항상 머뭇 거리고, 어떤 때는 주저 앉고, 때로는 장시간 포기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계속 제자로 남고 싶다고 하여도 육적인 일에 매여 있기 때문에, 영적인 일을 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두 번째 유형의 제자에게 우리 주님이 말씀 하신 “나를 따르라”는 말씀으로 설교 제목을 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 대부분이 이 두 번째 유형에 머물러 있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계속 해서 우리를 복음의 제자요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사용하고 싶어 하시며, “나를 따르라”는 권면(명령)의 말씀을 하시는데도, 우리는 당장 삶의 우선적인 일들이 걸림돌이 되고, 그것 들을 선택하며 살아가기도 힘겨워 하기 때문에,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자의 길로 접어들 기로에 서 있으면서도 우선 순위를 확정하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으로 인해 제자의 길로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장례가 나왔지만, 실제로 장례 조문을 우선하는 분들은 주일 예배 보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당연시 합니다. 교회 봉사 할 시간 없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주말에 골프(낚시, 등산, 여행)치기 바쁘시면서 주일 예배도 수시로 빠지시는 분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육적인 일들을 앞세우는지 영적으로 “나를 따르라”고 말씀 하시는 우리 주님의 음성이 저 멀리 후 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예수님이 제일 앞에 있는 선택 대상으로 확고 부동하게 자리 잡지 않으면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들려도, “이것 한 다음에, 저것 한 다음에 라고 거부하는 것이 반복 될 겁니다”

 

우리 주님은 죽음의 시간이 확정 되어 있었음에도 늦춰 달라고 하시지 않고 정확히 예정된 시간에 죽으셨습니다. 그 희생 때문에 우리의 삶이 지속되고 있음을 기억하고 감사한다면, 이제는 “나를 따르라”는 우리 주님의 명령에 더 이상 내 일을 먼저 갖다 붙이는 거절의사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에게 우리 주님이 찾아 오셔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들려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울려 퍼질 때,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피 흘리신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시며, “네 제가 주님의 말씀대로 따라가겠습니다” 순종하시며, 제자의 길만 선택하시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 유형의 제자가 나오는 61, 62절을 읽어 드립니다.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아멘.

 

세 번쩨 제자는 첫 번째 제자와 마찬가지로 자원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제자가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한 것과는 다르게 세 번쩨 제자는 주를 따라가겠지만 먼저 가족과 이별하게 허락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자신의 의지는 예수님을 따를 마음이 섰지만(이 마저도 충분한 마음 인지도 불확실) 가족과는 전혀 상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 정리가 되지 않은 사람은 제자로서 길을 가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으로 책망 하시며 완곡한 거절을 표현 하십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여야 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전하는 제자의 길은 그렇게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제자라고 하면서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제자는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부름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판단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할 뿐입니다.

 

이 세 번째 제자는 자신의 의지도 박약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세명의 유형 중에서 예수님이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신 것도 바로 성령의 부재가 주된 이유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박해하는데 최고로 열심이었는데, 죽기 살기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180도 변화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직 말과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일했기 때문입니다. 제자의 길은 곧 성령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자도의 유형을 보여주는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곧 우리 각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우회적인 어법을 사용 핬지만, 직접 화법으로 하셨으면 아마도 이렇게 말씀 하셨을 겁니다. 잘 들어 보시고,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해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제자에게는, “제자가 되고 싶다고?, 나를 따르고 싶다고? 그러면 고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텐데 감당 할 수 있겠니, 고난 받는 것이 네게 유익이될거야, 복음과 함께 고난도 받을 준비가 되었다면 나를 따르라”

 

두 번째 제자에게는, “제자가 되고 싶다고?, 나를 따르고 싶다고?, 그러면 네 가족, 네 일, 네 시간을 많이 포기해야 할텐네 괜찮겠니, 삶의 우선순위를 나(예수)에게만 고정시키고, 언제 든지 내가 맡기는 일을 최 우선으로 선택할 준비가 되었다면 나를 따르라”

 

세 번째 제자에게는, “제자가 되고 싶다고?, 나를 따르고 싶다고? 그러면 사람의 말, 돈,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성령의 음성만 들어야 할텐데 들을 수 있겠니, 성령이 인도하시는데로 가라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고, 죽으라면 죽을 준비가 되었다면 나를 따르라”

 

“아멘” 이라고 대답하실 있으십니까? 감당 하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우리의 반응이 제각각 일 수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못해요. 자신 없어요. 다른 사람 시키세요. 나중에 하겠습니다. 안하면 안되나요. 가족 하고 떨어지는 것은 죽어도 못합니다. 어렵게 잡은 기회인데 이것만 해결되면 생각해 보겠습니다.....이유와 핑계가 한도 끝도 없이 많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우리 주님의 권면과 명령의 말씀은 나를 제자로 인정하시고, 사용하시겠다는 우리 주님의 선택이십니다. 선택 받은 우리들은 능력과 믿음이 출중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동행하여 주심으로 제자의 길을 감당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 혼 자 가거라”라고 하시지 않고 “나를 따르라” 나와 함께 가자 라고 말씀 하신 겁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이 나와 일평생 함께 하여 주신다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거절하지 마십시오. 주저 하지도 마십시오. 기꺼이 받아 들이시고 우리 주님과 동행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 가십시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전진 하십시오. 거기에는영광이 있고 영생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 길이 제자의 길입니다.

 

이러한데도, 고난 만은 피해 가면서요, 장례좀 지내고요, 가족과 한번 상의해 보고요, 이런 유약한 말씀을 하실 겁니까?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권세와 능력을 받은 자들입니다. 영생의 소망으로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제자의 길만 가면 됩니다. 그 길이 내가 가야할 유일한 길임을 명심 하시기 바랍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음성에 큰 소리로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모습으로, 어떤 고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어떤 육적인 상황이 온다고 할 지라도, 어떤 세상의 소리들이 들려 온다고 할지라도, 오직 부름 받은 예수님의 제자로써 복음을 전파하고, 부활을 증거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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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 주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하시니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저희들을 담대한 믿음으로 세워 주셔서,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일에 죽기까지 충성하는 제자의 기을 걸어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제자 삼아 주시고,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