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신앙이 예전만 못한 명백한 이유

열려라 에바다 2023. 7. 15. 07:30

신앙이 예전만 못한 명백한 이유   

   
글쓴이/봉민근



믿음이란 좋은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의 힘으로 살라고 하지 않으시고 맡기고 살라 하신다.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
의지한다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하지 못한다.
이론으로는 알겠는데 말처럼 쉽지를 않다.
신앙생활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부담이나 억지가 동반되어서는 그것을 신앙이라 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 주님을 믿어도 열심만을 가지고는 안되며 노력한다고 믿음이 성장하거나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 것이 많은 신앙인들의 영적 딜레마이다.

신앙이 불붙었을 때에는 물 불을 가리지 않던 사람도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타성에 젖어서 본질은 어디로 가고 외식만 남게 되는 경우를 본다.

믿으면 믿을수록 내 영혼이 날로 새로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처음 믿을 때 보다 못한 신앙생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늘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들곤 한다.

과거에 염심이 신앙생활했던 것을 자랑하거나 들먹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믿음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야 어떠했던 지금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그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생기는 것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하나님을 의지 하는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혼자서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가나안 신자들이 그 길을 가고 있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기도하는 것, 선을 행하는 것, 성경을 읽고 전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잘되지 않는 것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믿음이란 어느 순간에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바라고 사는 것이다.
그날그날 주시는 은혜와 오늘의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평생 먹을 만나를 한꺼번에 내려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단번에 주시지 않는다.
사람은 능력이 되면 하나님을 절대로 의지하며 살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날 뿐이다.

예전에 뜨거웠던 신앙의 열정이 사라졌다면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던 믿음이 식었기 때문이다.
내 힘으로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자만감 속에 교만해졌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이 밋밋하고 식었는가?
요인은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믿음에서 벗어났다는 명백한 증거다.
주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절대로 신앙은 회복할 수가 없다.
나 홀로 신앙은 꺼져 갈 수밖에 없다.
믿음 생활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역경의 시간     

 

역경의 시간에 이렇게 말하라
그분이 나를 여기로 데려오셨다.
내가 이 협착한 장소에 있는 것은 그분의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안식할 것이다.
그분이 사랑으로 나를 보호하실 것이고,
이 시련 중에도 그분의 자녀로서 행동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것이다.
그분이 시련을 축복으로 만드실 것이고,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을 가르치실 것이며,
주려고 정하신 은혜를 부으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라.
그분의 선하신 방법과 시기는 그분만이 아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라.
나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훈련 아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은.. 자신을 위해 상대에게 향하지만
영적인 사랑은.. 그리스도를 위해 상대를 사랑한다.

인간의 사랑은.. 상대와의 직접 접촉을 구하지만
영적인 사랑은.. 모든 관계가 예수를 통해 중재된다.
예수가 빠진 일대일 관계란 없다.

인간의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고 지배하려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랑은.. 상대를 규제하고 지배하고
강요하려는 모든 시도에서.. 상대를 놓아주게 된다.

영적인 사랑은.. 상대에게 그리스도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에게 상대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된다.
이 사랑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안의 진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사랑은 우리 자신의 판단과 잣대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력한 요청으로 그들 앞에 선다
동시에 상대(그들)을 위한 요청을 가지고 지혜로우시고 능력 많으신 왕앞에 선다.

내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을..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감히 그들과의 직접적 관계를 꿈꾸지 않는다.

나는 너와 함께,너에게, 너를 위해 해줄 일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예수와 나-가 너와 함께, 너에게, 너를 위해 해줄 일을 생각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네가 나와 함께, 나에게, 나를 위해 해줄 일도 생각할 수 없다.
너와 예수가 나와 함께, 나에게, 나를 위해 해줄 일을 생각할 뿐이다.

ㅡLife Together에서 디트리히 본회퍼ㅡ

 

열등감     

 

신자가 열등감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신자는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결단코 열등감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열등감으로 자신을 학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뜻 보기에 열등감은 자기를 낮추는 것 같고, 

겸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열등감은 겸손과는 분명히 다른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입니다.

 

열등감은 자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언제나 초라하고 무능력해 보이는 

자기 자신만을 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등감은 자신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이제 힘 있게 일어서십시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시124:8

 

 

말씀만이 왕 노릇하며     

 

성도가 교회 안에서 

신앙의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 어떠한 복보다도 귀하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각자 자신에게 

일치의 근거를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그 근거를 둔다면 

그것은 복된 연합을 이루는 헌신이 될 것입니다.

 

연합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고 

특정한 사상이나 인물이나 프로그램에 두게 된다면 

교회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인간중심적인 교회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시며 

다스리시며 보존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왕 노릇하며, 

말씀만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고 

일치의 근거가 되어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