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헤브론

열려라 에바다 2024. 1. 8. 14:38

헤브론

 

1. 개관

1)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19마일, 브엘세바에서 북동쪽으로 약 23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유대 산악 지역의 산등성이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이다.

2) 고대 지역은 두 개의 도로가 있는 근처의 예벨 에르-루메이다에 위치하였다.

3) 애굽의 소안보다 7년 먼저 세워진(민 13:22) 이 가나안 도시는 유명한 아낙 사람들의 조상(수 14:15, 15:13)을 따서 기럇 아르바로 불리기도 하였다(창 23:2). 또 다른 어원은 이 도시와 관련된 네 마을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네 개의 도시'(City-of-Four:히브리어로 아르바는 4이다)로 보는 것이다(수 15:54, 삼하 2:3).

출처-keepbible.com

 

2. 역사적 변천 과정

1) 요단강 서안의 헤브론은 유대교도 뿐만 아니라 회교도, 기독교도들에게 모두 아브라함이 묻힌 성지로 기리는 땅이다. 아브라함은 한동안 그 근처에서 살았고 후에 사라를 장사 지내기 위해서 골짜기에 있는 막벨라 굴을 샀다. 그곳에 아브라함 자신도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에 의해 묻혔고(창 25:9-10) 이삭도 그러하였다(창 35:27-29).

2) 헤브론은 민 13:22에서 이스라엘 12지파 정탐들이 정탐했던 성읍 중의 하나였다. 성경 기자는 헤브론 바로 북방 지역인 에스골 골짜기가 매우 비옥하고 풍부한 지역이라고 말한다.

3) 사울의 통치 동안에, 헤브론 사람들은 다윗에 대하여 동정적이었다.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은 이곳을 7년 반 동안 통치하였다.

4) 수년 후에, 다윗을 반역한 아들 압살롬이 헤브론에 본부를 정하고 거기서 쿠테타를 일으키고 왕이 되려 하였다(삼하 15장).

5) 남부 변경 지역을 보호하는 데 관심을 가진 르호보암은 행정 지구인 헤브론을 포함하여 예루살렘의 남부와 서부의 도시들을 요새화하였다(대하 11:5-12).

6) 주전 586년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에, 에돔 사람(이두메 사람)들은 그들의 관할권을 헤브론 북방 약 5마일 떨어져 있는 벳술까지 확장하였다(마카비1서 24: 33).

7) 바벨론 포로로부터 돌아온 후에, 유대인들은 그 당시 페르시아주였던 유다의 많은 도시 뿐만 아니라 이두메의 다른 도시로 귀향하였다(느 11:25).

8) 주전 2세기 말에 하스모니아가가 헤브론을 포함하여 이두메를 정복하고(마카비1서 5:65) 유대화하였다. 그리고 헤롯 대왕의 손자인 안티파터를 통치자로 지명하였다.

9) 이스라엘 정부는 1972년 굴에서 1Km 떨어진 시의 한 귀퉁이에 키리아트 아르바라는 유태인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3. 막벨라 굴

1) 헤롯 대왕(주전 37-4년)은 오늘날까지 막벨라 굴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담을 건축하였다. 아랍식으로 불리는 하렘(haram)이라고도 하는 이 담은 건축학적 특징들 때문에 특별한 흥미를 끈다. 4각으로 잘라낸 건축용의 다듬은 돌의 석조 건축(가장 큰 돌은 길이가 24피트 이상임)과 건축학적 비율 그리고 벽의 붙임기둥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있는 헤롯의 '하렘'과 거의 같다. 동굴 위에 있는 하람의 교회 건축은 비잔틴 시기에 세워진 것이다.

2) 헤롯이 건물을 지은 것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 건물의 길이는 30m, 폭은 22m, 높이는 18m로 요새와 같다. 건물이 만들어진 지 2,000년이 지났지만 전쟁 기간에도 훼손되지 않아서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나중에 동굴 부근에 유대교 사원을 지었다. 원래의 동굴은 건물 아래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그러나 이 건물은 아랍인들이 헤브론을 점령한 638년 모스크(회교 사원)로 변했고 그후 찾아온 유럽의 십자군은 이를 파괴하고 유대교도와 회교도를 모두 학살하고 교회로 만들었다.

4) 1260년 헤브론을 점령한 이집트 노예 출신 기병들은 요셉 모스크를 짓는 한편 유대교도에게도 동쪽 벽의 일곱 번째 계단까지 순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5) 20세기에 들어서서도 1927년 유대교도 67명에 대한 집단 학살 사건이 헤브론 시에서 발생했고,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 1967년 중동 전쟁을 계기로 동굴 앞 계단은 파괴되고 유대교도들은 수 세기만에 처음으로 성지를 자유로이 순례할 수 있게 되었다.

 

4. 현재의 모습

1) 1948년부터 요르단의 영토였다. 유대인들은 아랍인들의 공격과 핍박으로 살해되거나 이주하여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1967년의 6일 전쟁으로 이곳을 회복한 이스라엘은 헤브론의 교외에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었지만 아랍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분쟁과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2) 헤브론은 요단강 서안의 아랍 도시로서 이스라엘이 6일 전쟁 당시에 점령한 군사 점령 지구이다. 요단 서안의 도시 중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 저항 운동의 중심지이다. 1971년에는 대학을 세웠고 지금은 약 2,000명의 아랍 대학생들이 적을 두고 있으며 아랍 민족주의의 본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3) 해발 927m 높이에 위치하지만 토양이 비옥하고 물도 풍부해 농업에 적당한 지역이다. 비는 많이 오지 않지만 지하수는 풍부한 편으로, 옛날부터 과수와 과일을 재배하였고 오늘날에는 포도로 유명하다.

4) 또한 헤브론은 유리 세공으로도 유명한데 세공품들은 소박하다.

자료원 성서지명강해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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