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00에 나오는 크세르크세스가 정말 성경에 등장하는 에스더의 남편이 맞을까? 내가 보고 있는 한글 개혁개정판 주석에도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1세(BC 486년~464년)로 되어 있다.
성경에 답이 있다. 에스더 2장 6절에 에스더를 딸처럼 키운 사촌오빠인 모르드개를 소개하고 있다. 모르드개는 여고냐(여호야긴)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올때 함께 잡혀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BC 597년의 일이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7년에 왕비가 되었다.(에스더 2장 16~17절). 아하수에로가 크세르크세스1세라면 BC480년이고, 크세르크세스 1세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한 직후이기도 하다. 모르드개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온지 123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에스더의 나이도 당연히 80세 이상일 것이다. 에스더 2장 6절에 근거하면 절대로 크세르크세스 1세는 에스더의 남편이 될수 없다.
그러면 왜 많은 신학자들이 아하수에로가 크세르크세스1세 라는 것에 동의 할까? 그것은 메대-페르시아 제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했고, 오래전 부터 내려오던 설명을 검증없이 믿은 결과이다. 19세기 들어서야 느니웨, 바벨론 유적지가 발굴되고 고대 언어가 해석되면서 바벨론, 메대, 페르시아, 앗수르의 역사가 상세하게 알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진실들이 밝혀졌지만 기존의 상식처럼 여겨오던 신학적 이론들을 검증하는데 보수적 입장을 취한 탓이다.
에스더에는 아하수에로가 등장한다. 나는 이전까지 아하수에로가 특정인의 이름인줄 알았다. 최근에서야 아하수에로가 고대 메대, 페르시야 제국의 왕의 호칭인것을 알았다.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의 히브리식 표현으로 영웅들의 지배자란 뜻이다.
다니엘서에도 아하수에로가 등장한다, 에스더, 다니엘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가 같은 왕일까?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1세가 된다. 따라서 전통적 견해(주류 신학이론)에서는 다니엘서의 아하수에로도 크세르크세스 1세가 된다. 고대 중동역사에 조금의 지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안다.
다니엘은 신 바벨론(BC625~539년)과 메대(BC 728~550년) 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세르크세스1세가 태어나기 100여년 전이다.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1세가 아니다. 그러면 누구일까?
역시 성경에 답이 있다. 에스더 1장 3절에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10장 2절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볼수 있듯이 메대와 바사 왕중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모르드개와 에스더 나이를 고려한다면 메대 왕 중에서 찾아야 한다. 모르드개가 포로로 잡혀온지 20년이 경과한 시점인 BC570년경 메대의 왕은 아스티아게스다. 아래 페르시아 왕 연대기에서 알수 있듯이 페르시아는 메대의 속국인 안샨왕국 시절이기 때문에 페르시아 왕은 에스더의 남편이 될수가 없다.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1세(BC486~464년)는 페르시아 최전성기를 이끈 다리오1세의 아들이다. 다리오1세는 아테네와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하고 그리스 정복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 아버지의 유언을 이어받고 그리스 정복을 다시 시도했지만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하고 귀환했다. 이러 상황속에서 전국 각지의 고관을 불러 180일간 잔치하고 왕비를 간택한다는 것은 비 상식적이다. 또한 헤로도토스는 BC480년경 왕비는 아메스트리스라고 밝히고 있다.
모르드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는데 어떻게 메대의 왕비가 되었을까? 성경기록에는 없지만 메대의 왕비모집 소식은 이웃나라인 바벨론까지 전해진것 같다. 이때 메대로 이주한것 같다. 아니면 최초로 끌려온 지역이 메대지역일 수도있다. 당시 바벨론과 메대는 연합하여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메대의 키악사레스의 딸과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정략결혼을 하는 등 관계가 매우 좋았다.
모르드개는 바벨론 신 '므로닥' 숭배자란 뜻으로 바벨론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르드개가 페르시아 시대 사람이라면 이미 망해버린 바벨론식 이름을 할 이유는 없다.
에스더, 모르드개의 무덤이 메대 수도 엑바타나에 있다. 이는 에스더가 메대 아스티아게스 왕의 왕비인 것을 뒷받침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에스더 사건은 기존 알려진 것보다 약 100년 앞서 발생했다. 그러면 에스더 연대기를 바로보는 것이 왜 중요할까?
에스더 연대기를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시절로 본다면 목숨걸고 유대인을 지킨 유대민족의 위대한 조상 에스더 이야기로 한정된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성경에 포함시켰을까?
많은 기독교인들은 앗수르가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강력한 혼혈정책으로 북이스라엘은 소멸된 것으로 잘못알고 있다. 앗수르는 여러번 침공했고 그중 BC733년, 722년 많은 사람들이 앗수르로 끌려갔다. 그중 상당수는 메대지역에 정착했다.
예레미야 30장 3절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에스겔 37장 15~23절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며 그 사방에서 모아서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남유다 포로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 포로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예언하고 있다. 에스더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북이스라엘, 남유다)을 이방땅에서 생명을 지킨 하나님의 섭리를 알수 있다. 온전히 보존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정한 때 페르시아 고레스를 통해서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예언을 성취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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