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 버린 가정을 찾아서...
눅 11:11-32 절
(11)너희 중(中)에 아비 된 자(者) 누가 아들이 생선(生鮮)을 달라 하면 생선(生鮮) 대신에 뱀을 주며, (12)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13)너희가 악(惡)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子息)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求)하는 자(者)에게 성령(聖靈)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지난 주일은 어린이주일, 금주는 어버이주일, 다음 주일은 스승의 주일로 지킨다.
어린이의 마음이 바로 천국이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지름길이다.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이 바로 장래를 기약하는 길이다. 이 모든 고귀한 것들을 우리는 가정을 통하여 배운다.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고귀한 보금자리요 안식처요 축복의 자리이다. 아름다운 가정은 아름다운 인생의 기초석이요, 성공하는 인생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는 다른 모든 것을 잃더라도 가정 만큼은 마지막까지 우리의 삶과 인생을 걸고 힘을 다하여 지켜야 한다.
눅 15장에는 유명한 3가지의 비유가 나온다.“한 마리의 잃은 양 비유”,“잃어 버린 한 은전의 비유”, 마지막으로“잃어 버린 탕자의 비유”이다.
한 마리의 잃은 양은 양 자신이 어리석었기 때문에 길을 잃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스스로의 무지와 고집과 어리석음 때문에 이렇게 길 잃은 양처럼 사지로 나아 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은전 한 닢은 주인의 부주의로 잃어 버렸다. 잃어 버린 탕자는 아들 자신이 스스로 계획적으로 가출했기 때문에 잃어 버렸다. 그러나 세 비유의 공통점은 모두 찾았다는 것이며, 그 찾은 기쁨 때문에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현대 문명은 점점 복잡해지고, 급박해져 가고 있다. 일본의 전자 시장에는 하루에 30,000가지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하루 동안에도 우리는 숱한 일들을 처리해 내야 하고, 사람 들을 만나야 하고, 여러 곳을 다녀야 한다. 이렇게 개인의 일이 너무 바쁘고 조급하다 보니 부모도, 자녀도, 가정도 제대로 돌아 볼 여유와 마음의 안정감을 잃어 버렸다.
각종 기계와 전자 정보로 점철된 우리 시대의 문명은 우리로 하여금 깊이 숙고하지 않는 단편적인 사고 방식을 만들어 낸다.“척”보고, 순간적으로 판단해 버린 후에는 두번 다시 고치려고도, 돌이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번 선입관이 굳어지고 나면 남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상식선에서 피상적으로 판단해 버리고, 그 단편적인 선입관 속에서 스스로 탈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대인의 심성 속에서 참다운 가치, 아름다운 심성, 인간애, 전통적인 효도관과 윤리 도덕률 등은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부모가 사라져 버렸다. 사랑 받으며 자라 가야 할 자녀가 부모와 단절된 채로 삭막한 세상에 부대끼며 그 심령들이 방황하고 있다. 이제 우리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잘 알 수 없는 시대, 이해할 수 없는 시대, 단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녀들의 문화관, 가치관, 인생관, 취미, 인생관을 전혀 알지 못한다.
저는 요즈음 TV에 나오는 유행가 들이나 춤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난 알아요 이 밤이 지나면 어쩌고 저쩌고...”
제 아들은 이러한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데, 저는 도무지 그 노래의 매력과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 우리 시대에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그저 살아 갈 뿐이다.
미국에 이민을 간 교포들이 가장 그리워 하는 것은 전통적인 부모 자녀 간의 유대관이라고 한다. 미국 가서 고생 고생해서 자녀를 양육시켜 놓으면 어느 사이엔가 그들은 극단적인 이기주의, 개인주의의 미국 문화에 젖어 부모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독하고 외롭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민을 간 사람들 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자녀도 다 같이 방치되어 있고,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다.
오늘날 우리는 신문의 정치, 사회 면을 들여다 볼 때마다 분노하다 못해 허탈감과 무기력 감에 빠진다.
“이 나라에 정말 윤리 도덕이 있는가? 위 아래가 있는가? 부모와 자녀가 있는가? 스승과 제자가 있는가?”심각하게 물어 보지 아니할 수 없다. 한 마디로 가치관의 顚倒(전도) 현상이 뚜렷하다. 무규범의 사회, 바로 아노미 현상이 뚜렷한 사회가 바로 오늘날의 우리 사회이다.
양 한 마리 잃는 것은 괜찮다. 돈을 잃어 버리는 것은 다시 벌면 된다. 내 삶의 근본이 바로 되기만 하면, 하나님은 즉시 필요한 축복을 다시 주신다.
그러나 자식을 잃는 것은 너무나 큰 손실이요, 아픔이다. 자식을 잃어 버리는 것은 곧 나의 가정을 잃어 버림을 의미하며, 나의 미래가 무너지고, 나의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부모들은 잃어져 가는 자식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식이 우리의 품을 떠남으로 부모인 나 자신이 상실되어 간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있다.
탕자의 비유를 잘 보시면 잃은 자식이 하나인 것 같으나, 사실은 둘이다. 작은 아들은 스스로 성공해 보려고 집을 나갔으나 방탕과 타락으로 빠져 버렸으니 잃어 버렸고, 큰 아들은 외관상 안전하게 집에 남아 있었으나 동생을 거절하고, 아버지를 불평하고, 불순종했으니 그 역시 잃은 아들이다.
우리 부모들은 왕왕“내 자식은 대학에 잘 다니고 있으니, 직장에서 인정 받고 있으니, 집 안에서 부모 말을 잘 듣고 아무 탈이 없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모들은 잃어 버린 큰 아들을 생각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면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顚倒(전도)된 가치관을 갖고 살아 가는 자녀는 다 잃어 버린 자녀 들이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도, 부모도 버린 자녀 들이다. 앞으로 부모를 버릴 자녀 들이다. 우리가 바라는 자녀는 어버이 날에 부모 가슴에 500원짜리 꽃을 하나 달아 주는 자녀가 아니다. 일년에 한 두번 얼굴만 삐쭉 내밀고 가는 자녀가 아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부모를 가슴에 모시고, 효도하고 공경하며 사는 자녀가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자녀상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자녀로 양육하는 일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달렸다. 자식을 바로 키워 바로 성장 시켜 놓아야 효도의 열매도 거둘 수가 있는 것이다. 동물은 둥지에서 곧 떠나 버리지만 인간은 부모의 품에서 오래도록 자란다. 부모를 그대로 배우고 닮는다. 잃어진 자녀는 바로 하나님과 자신과 부모를 잃어 버린 부모 당사자가 만들어 낸다.
이제 우리의 가정을 어떠한 가정으로 만들어야 하겠는가?
1.믿음에 기초한 사랑과 평화의 가정을 이제부터 만들어 가야 하겠다.
주택을 영어로 House 라고 한다. 가정은 Home 이다. 가족은 Family 이다. 호화 찬란한 주택에 살면서도, 가정을 상실한 집안이 많다. 그러나 비록 비좁은 단칸방에 살지라도 아름다운 천국의 가정을 가진 가족이 있다.
미국의 가장 큰 도시인 뉴욕에는 매달 2,000명의 소년들이 몰려 와 탕자가 된다고 한다. 그들이 깨는 유리창이 30만장이며, 부수는 공중 전화기가 30,000대라고 한다. 이 엄청난 비극과 파괴 상에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바로 파괴 되어진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사의 모든 범죄와 비극의 뿌리는 잘못되어진 가정에 있다.
오늘날처럼 우리 사회가 청소년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던 시대는 일찌기 없었다. 폭력, 환각제 흡입, 술 담배, 이성 범죄 등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이제는 단순히 학교 선생님에게만 맡겨 놓기에는 때가 늦었다.
이 모든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가정에 있다. 부부 간의 사랑이 떠나고, 방관과 무관심, 부모의 무책임이 빚어낸 참혹한 결과가 이러한 사회 일탈 행위로 나타 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가정은 부부의 사랑과 화목, 부모의 희생적인 사랑의 배려, 원만한 의사소통, 자녀에 대한 격려와 정서적 안정감 부여, 영육 간에 핍절하지 않는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다.
유명한 화가인 벤쟈민 웨스트의 일화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어렸을 때에 어머니가 외출하면서 어린 아이에게 집을 맡겼는데 그 사이에 어린 아이는 누나의 그림 물감을 가지고 누나 초상화를 그렸다. 온 방바닥, 벽은 물감 투성이가 되었다.
돌아 온 어머니는 아들의 그림을 보고는 아주 잘 그렸다면서 꼭 안고 입을 맞추어 주었다. 그 순간 어린 아이는 화가가 되기를 결심했고,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저는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 부모님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러나 항상 우등생이었다. 지금도 저는 아무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어도 삶의 어느 영역이든지 남에게 뒤진다는 생각을 한번도 가져 본 적이 없다. 자신감이 있다.
자녀는 부모가 공부하라 한다고 해서 공부 잘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우리 부모들은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저희 집 딸이 이 달에 시험을 쳤는데 모두 28개의 문제를 틀렸다. 집 사람이 난리가 났다. 저는 원래 청개구리 기질이 좀 있는데, 집 사람 약올린다고 싱글 벙글 웃으며 딸 아이를 안아 주었다.
“좀 더 틀리지 왜? 잘 했어! 정말 잘 했어!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그 정도면 충분해! ”
여러분! 제가 얼마나 훌륭한 아빠인가? 자녀 공부는 저처럼 시키는 것이다. 부모가 인정하고 칭찬하기만 하면, 자녀는 저절로 공부 잘 하게 되어 있다. 또 좀 못하면 어떠한가? 머리 나쁜 자녀는 아무리 윽박지르고 때려도 안된다. 때리는 부모 머리가 나쁜데 어떻게 하는가?
우리 가정을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가정으로 만들기만 하면,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하게끔 되어 있다. 자녀가 효도하면 반드시 성공하고 출세하게 되어 있다. 엡 6:1-4절에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우리 자녀에게 우리는 부모이다. 우리에게는 또 부모가 있다. 바로 지금 이 시간 우리 가정을 믿음에 기초한 사랑과 평화의 가정으로 만들기로 결단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 시간에 결단하고 실천의 걸음을 한 걸음 성큼 내디디시기를 바란다.
2.생활로 가치관을 심어 주는 가정을 만들어야겠다.
우리 가정들은 모든 가족에게“왜 사느냐? 무엇을 할 것이냐? 어떻게 살 것이냐?”를 생활로 보여 주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부모의 신앙을 자녀는 배운다. 부모의 경제관을 자녀가 그대로 배운다. 부모의 처신과 사고 방식을 자녀 역시 그대로 배워 실천한다. 부모가 서로 싸우고 폭력을 행사하면, 그 자녀도 훗날 반드시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부부끼리 만나는 시간 보다는 직장에서 미스 김이나 미스 박을 만나는 시간이 더 많다. 직장생활을 하는 기혼 여성들은 남편보다 직장에서 만나는 상사나 동료 남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미 우리들의 가정은 그저 잠간 쉬고 나가는 육신의 휴식처이지,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니다. 정신적 안식처가 아니다. 그 속에서 보이지 아니하게 가정은 파괴 되어 가는 것이다.
미국의 한 상류층 가정의 남편이 어느 날 돌연히 자살을 기도했다. 겨우 살아난 남편에게 사람들이“왜 당신 같이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자살을 기도했느냐?”고 물었다. 그 때 남편은“나는 나의 아내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살 의욕이 없어져 버렸오.”라고 대답했다.
이전에 이들 부부는 둘 다 대학 교수로서 참으로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하며, 서로가 서로를 끔찍히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미국의 상무장관으로 발탁이 되고 난 뒤 비극이 찾아 왔다. 남편은 위싱턴에 가 있는 아내를 일주일에 한 번도 제대로 만날 수가 없었다. 단란하던 가정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남편의 말을 들은 아내는 그 날로 상무장관 자리를 내던져 버리고 가정으로 돌아 왔다. 가정은 다시 옛날의 행복을 되찾았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힘든 세상 얼마나 살기가 바쁘고 어려운가? 직장 생활에 얼마나 피곤하신가? 경제적으로는 또한 얼마나 힘이 드는가? 그러나 눈을 돌려 내 가정을 한번 바라 보시기 바란다. 내 남편이 제 자리에 있는지, 내 아내가 제 자리에 있는지, 나의 사랑하는 자녀는 지금 어디에 가 있는지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란다.
가정을 회복 시켜야 한다. 가정이 진실로 우리 삶의 중심이 되게 해야 한다. 바쁘게 사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이 아니다. 쓸 데 없는 너무 바쁜 삶은 이제라도 정리하시기 바란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좀 가난하게 살더라도 내일을 기약하시기 바란다.
내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 가는 일 그 자체에 온통 정신을 쏟고 있는 사이에, 어느 날 문득 가정이 사라져 버린 비극을 보고는 뒤늦게 가슴을 치지 마시기 바란다.
적어도 주일 하루 만큼은 부부와 자녀가 다정이 손을 맞잡고 주님의 교회로 올라 와 하나님께 경배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란다.
부자로 사는 일, 일류 대학에 가는 일, 좋은 직장에 들어 가 승진을 거듭하는 일! 인생에서 이러한 외부적인 것들이 능사는 아니다. 顚倒(전도)된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출세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이 오늘날 정치, 사회, 경제계에서 우리 가슴에 못 질을 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 모두 보고 있지 않은가?
가정은 최초의 학교요 최초의 인생 훈련장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 허랑 방탕하다가“돼지를 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顚倒(전도)된 가치관으로 되는 대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가정과 교회에서 우리 자녀에게 올바른 인생관, 올바른 가치관을 분명히 심어 주어야 한다. 이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으로 되어진다.
생활로 주님의 정신을 실천하는 부모님과 자녀가 다 되시기를 바란다.
3.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으로 만들어 가야겠다.
우리 가정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중심 가정이 되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의 신앙에 대하여 철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진정을 다하여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며 효도해야 한다.
어떤 청소년이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수감이 되었다. 상담자와 대화하면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러나 한번도 나에게 교회에 가자고 하신 적도 없고, 신앙의 가르침을 준 적도 없고, 교회 출석을 챙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당신 혼자만 광적으로 열심이셨지요.”
참으로 무서운 고발이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부모님들의 신앙 생활이 혹시나 이러한 모습이 아니었는지 깊이 반성해 보시기 바란다.
유태인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신명기 6장의 쉐마로 교육을 받았다. 자나 깨나 하나님의 윤리와 법도를 강조하고 가르쳐, 그들의 삶 속에 引(인)이 박혀 버릴 정도로 유대인들은 집중적인 교육을 받는다. 그 때문에 유태인의 평균 두뇌 지수는 다른 민족의 6배라고 한다. 실제로 노벨 수상자의 2/3가 유태인이며, 언론계, 학계, 문화계의 대부분 지도자들이 다 유태인 들이다. 신자인 우리는 이러한 사실 속에서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
부모의 건성적인 신앙 생활, 무책임한 신앙 지도, 신앙과 삶이 유리된 모습은 바로 자녀의 축복 길을 가로 막는 행위가 된다. 오늘 우리는 우리 가정의 탕자를 찾아야 한다. 우리 가정에 잃어진 자가 없는 살펴야 한다. 나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
죤 하가이란 목사님이 <내 아들 죤>이란 책을 펴냈는데,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단연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죤 목사님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미였다. 전신 마비로 음식도 제대로 삼킬 수 없는 아이였다.
한국에서는 목사 집안에 불구자가 태어 나면 축복이 없는 엉터리 목사라고 외면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어느 목사님은 딸만 셋을 나았더니, 교인들이 아무도 주례 부탁을 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죤 목사님은 집에 손님이 찾아올 때 마다 얘기도 알아 듣지 못하고, 침을 흘리는 아이를 놀라운 정도로 손님에게 잘 소개를 해 주었다. 어디를 가나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하나님을 가르치고 극진한 사랑을 베풀었다.
식물 인간과 다름 없는 아이였으나 이러한 아버지를 둔 아들은 아버지가 예배 시간에 강단에서 설교를 하노라면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다가 좋아서 막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나 아버지를 좋아하고, 따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들 죤은 24살 때 그만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랑하는 장애인 아들을 잃은 죤 목사님은 그 후 일평생을 장애자들을 양자, 양녀로 삼고 사랑하고 헌신하며 살았다.
저는 <미문 장애인교회> 목사님과 성도 들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리며 헌금으로 돕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몸이 불편한 우리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분명히 뭔가 배우고 깨닫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 부모님께 어떠한 자녀인지 깊이 한번 돌아 보아야겠다. 그리고 우리 자녀에게 우리는 어떠한 부모인지 숙고해 보자.
우리 가정은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가?
우리 가정은 삶으로 아름다운 인생관, 가치관을 실천하는 가정인가?
우리 가정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인가?
이러한 가정이 복된 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이렇게 부모님께 효도하고,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든든한 반석 위에 선 아름다운 주의 종들의 가정이 다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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