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

열려라 에바다 2024. 1. 12. 10:42

제 목 :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

< He should not go up to Jerusalem >

성 경 : 사도행전211-9(24.1.14.주일예배)

 

설 교: 전 원 준 목사 ( 010.3847.8457)

< http://cafe.daum.net/ssbbc >

< 찬송= 383아친해. 167그귀한. 363내평생 >

(특 송 = 우리가 걷는 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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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9) (1) 우리가 그들과 작별한 뒤에

배를 타고 직선 항로로 고스에 이르러 이튿날

로데스에 들르고 거기서 바다라로 가서

(2) 페니키아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 타고 가다가

 

(3) 이제 키프러스를 발견하매 그곳을 왼편에 두고 시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내렸으니 이는 거기서 배가 짐을 풀어야 했기 때문이더라.

(4) 우리가 거기서 제자들을 만나 이레를 머물매 그들이 성령을 통해 바울에게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라.

 

(5) 그 날들을 보내고 우리가 떠나서 우리의 길로 갈 때에 그들이 다 아내들과 자녀들과 함께 나와 우리가 도시 밖으로 나가기까지 우리를 우리의

길로 내보내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 꿇어

기도하고

 

(6) 우리가 서로 작별한 뒤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우리가 두로를 떠나 우리의 항해를 마치고

톨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문안한 뒤 그들과 함께 하루를 지내고

(8) 이튿날 바울의 일행인 우리가 떠나서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사람 중의 하나인 복음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머무니라.

 

(9) 그 사람에게 처녀인 네 딸이 있었는데 그들이 대언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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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금의 환양이 아니라,

죽음이 기다리는 골고다 십자가입니다.

 

=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가듯이 성공하여

돌아온다. =

 

( 19:21) 이 일들이 끝난 뒤에 바울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려고 영 안에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에 있다가 반드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1. 예루살렘으로 가는 지중해 섬 구브로를 바라는 바울사도 심정 볼 수 있습니다.

 

( 21: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지금도 터키와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큰 섬이 사이프러스(구브로)입니다.

바울 일행이 탄 배는 지중해를 횡단하여 화물을

풀기 위해 베니게의 두로에 정박합니다.

 

 

그런데 그 배가 지중해를 횡단하는 동안에,

바울이 구브로를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멍청하게 보고 있던 게

아니라 주목해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바라보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원래

나타나다는 뜻이 있습니다.

영어 = when we had discovered Cyprus.

 

배를 타고 가다 보면 섬들이 앞에 굉장히 많이

나타납니다.

본문은 그런 상황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베니게를 향해 지중해를 헤치고 나아가는 바울이 승선하고 있는 배 앞으로 구브로 섬이 나타났습니다.

구브로 섬, 즉 동서로 120마일 길이로 뻗어 있는 섬이 배 왼편으로 나타나 계속 보였습니다.

구브로를 왼편에 두고 배가 항해를 했다는 겁니다.

 

120마일이나 되는 섬을 완전히 지나가려면

하루 이상을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다면 배 위에서 그 섬을 하루 이상 계속

볼 수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뭔가 생각을 가지고 구브로 섬을 하루

이상 보면서 지나갔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지중해를 지나면서 많은 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구브로를 계속 바라보았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실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120마일이나 되는 그 섬이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기 때문에 계속 바라보았겠습니까 ?

아니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아무 의미 없이 그냥 바울이 바라보았다고 썼겠습니까?

 

구브로 섬이 어떤 섬입니까?

 1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와 함께 첫 번째 목적지로 삼은 곳이었습니다.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3년 정도에 걸친 세 번의 전도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이 시점에,

 

바울 앞에 자기가 제일 처음 전도여행을 갔던 곳, 첫 번째 목적지였던 그곳이 탁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13년 만에 전도사역의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물론 상륙하지는 않고 지나가면서 봅니다.

바울은 배 위에서 하루 이상 그 섬을 바라보면서, 바나바와 마가와 같이 갔던 1차 전도여행 때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며 회상에 젖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회심하여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인정하여 주지 않았습니다.

 

다소 =고향에 숨어서, 박혀서 기도하고 있던 바울에게 찾아온 사람이 있었으니, 바나바 였습니다.

 

그 바나바와 전도 사역을 하면서 첫 번째로

온 곳이 바로 이 구브로 섬 인 것입니다.

하루종일 이 구브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섬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고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 저는 처음 사역지가 7년동인 밀양입니다.

그 이후 기차를 타고 서울가면서 밀양을 잠시

정차하고 지나갑니다.

저는 밀양시내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고개를

돌릴 수 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왜일까요 ?

이유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그러니까 구브로 섬을 보며 경관을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곳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를 해주셨지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 13년이 흘렀는데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브로 섬을 바라보며 바울사도는 하염없이 감회의 눈물을 흘렸으리라 믿습니다.

동행하던 누가도 이를 눈치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자신이 향하고 있는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으며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을 잊지 않고 기역하여야

할 줄믿습니다.

 

그때 나에게 배풀어 주신 사랑과 은혜를 결코

잊지말아 할 줄 믿습니다.

 

(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2.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두로에서 보여준 은혜입니다.

 

( 21: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1) 두로 지역은 타락의 대명사.

 

구약성경에서부터 두로와 시돈이 나옵니다.

 

0 두로는 그 지역에서 최대의 해양 도시였습니다.

 

0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두로 왕이 이스라엘과

우호조약을 맺고, 궁전과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 하는 데 필요한 백향목들과 기술자들을 이스라엘 에 보내서 짓는 것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0 주전 65년 로마제국의 자유무역 도시로 편입된 이후에 두로는 로마제국의 번영과 더불어 더 큰

부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해지는 동시에 타락했습니다.

인간은 돈이 많아지면, 더 욕심내고 타락하고

신앙도 버리는 수가 종종 밌습니다.

 

0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타락하는데 제물을 쓰지말고, 주님일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 주님께서 두로와 시돈의 악함을 책망하십니다.

 

 

2) 두로의 제자들을 만납니다.

 

( 21:4) 우리가 거기서 제자들을 만나 이레를 머물매 그들이 성령을 통해 바울에게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라.

 

 

@@ 마가복음 7장을 보면, 예수님이 바로 이 두로를 방문하셨습니다. 그곳의 귀신 들린 소녀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셨습니다.

 

0 사도행전 15, 1차 전도여행을 마친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중간에 있는 두로를 거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두로에 잠시 머물게 된 바울은,  10년 정도 만에 그때의 그 제자들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7일 동안 머물게 된 것입니다.

 

내가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인 2034년에

누군가를 어디서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만났을 때, 그 사람과의 만남을 진심으로 기뻐할 것인가 ?

슬쩍 회피할 것인가 ?

 

이것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어제 내 삶의 결과가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의 결과는 내일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고후 6:2)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3) 두로의 제자들이 사랑의 만류 .

 

( 21: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권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명령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한다고 바울이 안 갈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두로의 제자들 앞에서도 자신의 굳은 결심을 분명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 20:23-24) (23) 오직 성령님께서 모든 도시에서 증언하사 결박과 고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시나 (24) 이 일들 중 어떤 것도 결코 나를 움직이지 못하며 또한 내가 나의 생명도 내게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 ....

=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

 

4) 두로의 성도 작별 =

 

( 21: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0 바닷가의 기도. =

두로의 항구는 복잡한 곳입니다.

그 복잡한 바닷가에서 온 성도들이 무릎을 끓고

기도합니다.

 

지나가는 두로의 모든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어떤 느낌일까요? 놀라운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00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5)라는 표현입니다.

 

다른 데서는 처자와 함께 다 나와 전송했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일하게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나와 전송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로에 있는 남자 제자들(형제들)

항구까지 바울 일행을 따라 나간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두로의 제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아내와 자녀들까지 데리고 함께 항구까지 나가서 바울을

전송했다는 겁니다.

 

 with wives and children, ”

 

그들은 자신들의 처자들과 함께 바닷가에

무릎을 꿇고 바울 일행과 기도했습니다.

 

@ A 성도가 아내에게 = 여보 목사님 떠나신데

바닷가에 전송하려 갑시다.

 

0 아내 = 아니, 나보고 가자고, 당신만 가지.

빨래도 해야하고 저녁 반찬도 만들어야 하고...

그 사람많은데 여자가 챙피하게...

 

= 두로의 아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렴 내가 가야지, 바울 산생님 위하여 가야지.

 

 

@ B 형제가 자식들에게 =

예들아 바울 선생님 떠나신데, 너희들고 가야지?

 

0 자녀들 = 아버지는 참, 우리보고 가자고요,

내일 시험인데, 공부해야하는데, 지금 학교마치고 얼마나 피곤한줄 아세요. 아버지나 가세요.

 

= 두로의 자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그럼요, 바울 선생님, 우릴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시고 사랑했는데, 우리들이 가야지요.

 

0 그 바닷가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온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전송하였습니다.

(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 할렐류야 !

오늘 우리산상교회 성도들이 두로의 성도들처럼,

아내가, 자녀들이, 아버지와 함께, 주님 사역에

헌신하는 그런 신앙되기를 축복합니다.

 

= 제 송별 예배에 온성도 가족들이 다 함께하는 모습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아멘 !!!

 

( 21: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3. 사도바울은 가이사라에서 전도자 빌립을 만납니다.

 

( 21:8) 이튿날 바울의 일행인 우리가 떠나서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사람 중의 하나인 복음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머무니라.

 

1) 참 신앙의 전도사 빌 립입니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은 일행과 함께 빌립의

집을 숙소로 정하여 머물게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 빌립은 일곱 집사 중 하나사도행전 6장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처음으로 뽑은 일곱 집사 중 한 명인 빌립입니다.

 

8 40절을 보면,  20년 전에 사울의 핍박을 피해 성도들이 흩어질 때, 빌립은 사마리아로 가서

사역을 하였고,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구스 내시를 구원하고, 혼연히 사라지 빌립.

 

이 가이사라에 와 정착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빌립이 사라졌는데 이때 다시 나옵니다.

 

그러니까 빌립과 바울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원래 서로 하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랬던 이 두 사람이 언제부터 이렇게 주님 안에서 교제를 해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이사랴를 방문한 바울이 여러 명의

일행과 함께 아무 스스럼없이 빌립의 집에 불쑥

찾아와서 여기서 잡시다 하며 숙소로 삼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는 것을 또 알 수 있습니다.

 

(살전 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 빌립 !

그는 정말 아름다운 전도자입니다.

30년 전쯤...성경에서 빌립의 사역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빌립에게 반했습니다.

그후 저의 영어 이름을 빌립이라고 정했습니다.

(성경에 휼륭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2) 빌립의 네 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21: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빌립이 가이사랴에 정착한 후 세월이 20,

그 사이 결혼하여 네 딸을 얻었습니다.

 

그 딸들이 모두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입니다.

= 역시 빌립이구나 !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앞에 귀하게 쓰입받도록

기도합시다.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

 

( 12:43)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찬 양 =우리가 걷는 이길

 

출처: 산상 성서 침례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빌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