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윤복희 (8) 열일곱 복희, 루이 암스트롱과 ‘꿈의 무대’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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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이던 1963년 봄, 서울 광장동에 워커힐 호텔이 문을 열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세계 수준의 호텔이었죠. 호텔 측은 개관 기념으로 당시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였던 루이 암스트롱을 초대했습니다.
근데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가 한국에 오자마자 나를 찾은 겁니다. 그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주한 미군으로 근무하다 귀국한 이들로부터 “한국에 루이 암스트롱 노래를 기차게 잘 부르는 젊은 여가수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거죠. 그랬습니다. 나는 열세 살 때부터 미8군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암스트롱의 노래를 유달리 많이 불렀습니다. 어쩌면 암스트롱 덕분에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고 해도 됩니다. 걸쭉한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오디션에 합격해 미8군 무대에 설 수 있었고, 어떤 무대에서든지 그의 노래 한두 곡씩은 꼭 불렀으니까요.
암스트롱과 처음 만나던 상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소속사인 에이원쇼 박인순 사장을 비롯한 몇 명의 스태프와 함께 그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만났죠. 나는 이미 미8군을 출입하면서 어지간한 영어는 익힌 상태였습니다.
“내가 노래할 테니 미스 윤이 따라와 봐요.”
전설적인 트럼피터이자 싱어인 암스트롱은 자신의 오리지널 레퍼토리를 시작했습니다. ‘성자의 행진(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으로 시작됐습니다.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 같은 음성이 쩌렁쩌렁 호텔 방을 울렸습니다. 나는 침착하게 그의 노래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재즈의 싱커페이션 엇박자처럼 서로 주고받으며 노래했습니다.
“어메이징! 뷰티풀! 나와 함께 공연합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뿐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아예 얼이 빠졌습니다. 박 사장은 내게 다른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암스트롱 공연에만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나는 워커힐 개관 기념 무대에 암스트롱과 함께 섰습니다. 게스트가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그와 한 곡씩 주고받으며 공연을 이끌었습니다. 암스트롱은 피날레로 나를 번쩍 들어 무동을 태우면서 ‘브라보’를 외쳤습니다.
말 그대로 꿈의 무대였습니다. 나는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아니, 신데렐라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가수 루이 암스트롱과 공동 무대를 갖다니…’ 그날 밤 흥분에 휩싸여 한숨도 못 잤습니다.
며칠 후 암스트롱이 다시 나를 찾았습니다. 그는 또 다시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미국에서 제대로 공부하면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할 것이라며 미국에 가면 꼭 초청장을 보내주겠노라고 했습니다. 나는 의례적인 인사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미국에 가자마자 내게 초청장과 음악학교 입학허가서를 보냈습니다. 자신과 함께 세계 순회공연을 다니는 것은 물론 학비와 숙식비, 생활비를 제공하며 매주 400달러의 용돈도 지급하겠다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그러자 대번에 미국과 한국의 신문에 대서특필됐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초대에 응하지 못했습니다. 암스트롱과의 합동공연 후 한국에서도 내 몸값이 껑충 뛰었습니다. 소속사에서 집을 세 채나 사주면서 떠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게다가 군 복무 중인 항기 오빠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혈육인 오빠와 이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초대장을 보내고서 반응이 없자 암스트롱으로부터 몇 차례 재촉하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가부간의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나는 호의는 고맙지만 사정상 한국을 떠날 수 없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나의 미국행은 시간상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시차를 두고 나를 미국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내가 필리핀을 거쳐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으니까요.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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