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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공연을 하고 난 뒤 나는 한층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인기도 덩달아 많아졌죠. 그런 중 미국의 유명한 여배우 셜리 매클레인의 방한을 환영하는 파티가 조선호텔에서 열리게 됐습니다.
“어이, 꼬마야!” 파티 공연을 하게 된 내가 대기실에서 분장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듯했습니다.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온통 외국인들뿐이었습니다. 다시 하던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시 불렀습니다. “야, 꼬마. 너 말이야, 너!”
돌아보니 웬 서양 남자가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부를 노래 곡목을 묻고는 잘 부르라고 격려해 줬습니다. 이어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대기실에서 나를 불렀던 그 남자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는 게 아닙니까.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매끄럽게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그와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와의 재회는 얼마 있지 않아 이뤄졌습니다. 평소처럼 을지로6가 미8군 클럽에서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려고 차에 당시 학사 가수였던 박형준 오빠가 나를 붙들었습니다. 오빠는 “복희야, 오늘 내가 좋은 오빠 한 사람 소개해줄 게”라고 하고는 의자에 앉혔습니다. 그와 동시에 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왔습니다.
이게 웬 일입니까. 얼마 전 매클레인 환영 파티 때 만났던 그 남자였습니다. 어안이 벙벙하다가 이내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정식으로 서로 소개를 하게 됐습니다. 그는 유주용이라는 이름의 독일계 한국인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를 미스터 유라고 불렀습니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나를 한 차원 성숙하게 해주기 위해 하나님이 붙여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내게 운명의 남자였던 게죠. 이후 미스터 유와의 만남이 잦아지게 됐습니다. 당시 미8군을 중심으로 벌어진 재즈 페스티벌 때문이죠. 최희준, 박형준, 위키 리, 유주용으로 결성된 ‘포 클로버’에 미스터 유의 누나인 모니카 유와 내가 합류한 ‘민들레 악단’으로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겁니다.
미스터 유와 자주 만나다 보니 조금씩 정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를 오빠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내게 참 따뜻하게 대해 줬습니다. 한번은 내가 지방 공연을 하고 돌아오니까 사무실에 내 앞으로 뭔가를 두고 갔습니다. 비타민 병이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살아오면서 변변한 정 한번 못 느낀 내게 누군가가 건강을 챙겨준다는 건 대단한 감동거리였죠. 내가 지방 공연을 갔다 오면 오빠는 으레 역에 배웅을 나와 있었습니다. 옷도 맞춰주고 패션쇼에도 데려 갔습니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집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서로가 바쁜 중에도 우리는 매일 만났습니다.
서울 후암동 오빠네 집에도 가봤습니다. 오빠의 어머니는 독일 분이신데 나를 친딸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오빠의 누나인 모니카 유 언니는 내게 화장하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가족의 정을 느꼈습니다. 그때 오빠에겐 열렬한 여자 팬들이 많았습니다. 훤칠한 체격과 외모에다가 재주가 많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러나 오빠는 내게만 잘해 줬습니다. 항상 다정하고 친절했습니다. 나도 그런 그가 든든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중 오빠와 잠시 헤어져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2주 일정의 필리핀 공연단에 내가 포함된 겁니다. “연습을 포함해 넉넉잡아 한 달이면 돌아오겠군”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빠는 외국에서 여자로서 지켜야 할 예의, 외국 호텔 이용법, 양식 먹는 법, 영어 사용법 등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친했고, 서로로 인해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상식과 많이 달랐습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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