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윤복희 (10) 비틀스의 고향, 런던서 공연해보지 않겠어요?
![](http://image.kukinews.com/online_image/2012/0213/120213_31_1.jpg)
11명의 한국 공연단이 필리핀으로 날아가 마닐라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첫 공연을 했습니다. 현지 관객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폭발적이었습니다. 근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를 인솔해간 에이전시가 도통 출연료를 주지 않는 겁니다. 저는 용돈을 벌기 위해 심야에 마닐라에서 제일 유명한 클럽 ‘베이 사이드’에서 밴드의 전속 가수로 나섰습니다. 그 바람에 현지의 영화인 연극인 가수 연주자 코미디언 연출자 안무자 등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습니다.
필리핀 공연 일정은 자꾸만 늘어났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비행기표 살 돈이 없었습니다. 2주간으로 계획한 공연은 무려 6개월을 넘겼습니다. 여기저기서 공연을 하지만 우리 수중에 돈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현지 한국대사관에서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고 도와주었습니다. 일단 다른 단원들은 외상 비행기표를 구입해서 귀국하고 저와 세 명의 무용수는 남아서 갚으라고 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겠죠. 우리는 비행기표 값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무대에 서야 했습니다. 마닐라를 넘어 홍콩과 방콕을 거쳐 싱가포르까지 진출했습니다. ‘호텔 싱가포르’에서 공연할 때였습니다. 우연히 들른 영국의 유명한 쇼 프로모터 찰스 메이더를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대단히 정력적이면서 쇼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었죠. 우리가 공연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자 그가 엉뚱한 제안을 하는 겁니다.
“넷이서 같이 노래를 하면 안 될까요? 비틀스처럼 네 명이 같이 노래하면 영국 런던에서도 공연할 수 있겠는데요. 아주 매력적이에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런던에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특히 ‘비틀스처럼’이라는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비틀스가 누굽니까. 당시 전 세계적으로 전대미문의 인기를 끄는 그룹이었습니다. 우리는 메이더의 제안을 받고 밤새 궁리하면서 상의했습니다. 그러다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래, 내친 김에 영국까지 가보자’는 것이었죠.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날마다 세 무용수 언니들에게 열심히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우리의 연습 장면을 본 호텔 사장이 우리 넷이 마치 어린 고양이 같다며 ‘코리언 키튼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코리언 키튼즈가 그렇게 탄생한 겁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려면 해외 공연 일정이 비행기표 값 때문에 이처럼 무한정 늘어지는 게 이해하기 쉽지 않잖아요. 전체 11명 가운데 4명만 남는 과정도 그렇고요. 게다가 필리핀에 잔류한 4명이 ‘코리언 키튼즈’로 태어나게 됐으니 말입니다. 그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냈습니다만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달았습니다. 그 과정이 거역할 수 없는 절대자의 인도였다는 걸 말입니다. 바로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죠. 지금도 그 시절을 회고하면 저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저는 그 사랑에 힘입어 주님을 찬양하는 일에 모든 걸 걸었습니다. 요즘은 오빠 윤항기 목사와 함께 전국 교회를 돌며 ‘여러분’이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 무대에 서 달라는 요청이 허다하게 오지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제가 겪은 주님, 제가 아는 주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지난 11일 안산동산교회에서 ‘여러분’ 공연을 마친 뒤 한 성도가 제 손을 붙잡고 “윤 권사님이 만난 주님을 저도 만나고 싶어요”라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더욱 열심히 진지하게 준비하면서 무대에 올라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제게 걸을 수 있는, 아니 설 수 있는 힘이라도 남아 있는 한 이 무대에 계속 서고 싶습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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