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한 심판 및 은혜 언약
창세기 3:14-21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결국 아담과 하와는 뱀에게 속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도둑질을 한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우리 주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신 뱀의 몸을 강탈하여 들어간 마귀나, 마귀에게 속아서 우리 주 하나님의 소유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그 여자나 아담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하지만 눈이 밝아져서 보니 자신들이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라 멸망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귀에서 속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아름다운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죄악으로 심히 부패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후회와 좌절과 수치와 공포가 임합니다. 서로를 향해 실망과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그들은 마음 속에 있는 수치를 감출 길이 없어서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자신들의 벗은 몸을 가립니다. 하지만 그 치마는 곧바로 시들면서 그들의 치부가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또 치마를 만들지만 헛수고입니다. 어떻게 무화과 나무 잎으로 그들의 마음 속에 생겨난 두려움과 후회와 좌절과 수치를 가릴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그들은 행위 언약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 언약에 따르면 이제 그들은 정죄함을 받고 죽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언약에 따른 죽음은 세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되는 죽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은 결국 사람의 몸과 영혼 전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입니다.
한편, 몸과 영혼의 분리로 인한 죽음은 온갖 질병과 약함과 흉측함과 노화 현상을 동반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영혼은 탐욕과 의심과 이기심과 더러움에 노출되어 마귀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 사이에 한없는 미움과 오해와 마찰을 빚을 것입니다. 나아가 행위 언약이 깨어진 이후로 아담으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후손들은 아담의 모양을 닮게 됨으로 죽음을 향하는 죄성을 갖고 태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행위 언약을 지켜서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 아래 온 몸과 영혼이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행위 언약을 깨뜨림으로 발생한 죽음은 처음부터 고통이며 영원한 고통으로 이어지는 죽음입니다.
이제 범죄함으로 수치와 좌절을 느끼는 아담과 하와는 오직 사랑과 자비만 베푸신 창조주 하나님을 뵐 용기도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지옥의 그림자와 고통이 벌써 피부에 와 닿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피합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작 동산 나무 뒤에 숨을 뿐이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 3:8).
범죄한 아담과 여자는 두려움과 수치심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신다면 그들은 곧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영원한 고통의 형벌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 중에 혹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잘 버티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제 죄를 지어도 마음이 아프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 순식간에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2).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9)
이와는 정반대로 우리 중에 혹시 죄책감이 너무 심해서 술을 마셔도 진정이 되지 않고, 그래서 다른 뭔가에 중독될 정도로 집중하거나, 끝없이 방황하며 놀러 다니거나,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하지만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죄인이 어떻게 주의 손바닥에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7-8).
[
2 그들이 …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
3 ...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요
4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칼을 명령하여 죽이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암 9:2-4)
혹은 아담처럼 누군가의 죄에 말려들어서 망했습니까? 그래서 미움이 가득합니까? 용서가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만일 악독과 앙심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어둠 가운데 있다가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요일 2:11).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음이로다”(사 55:15).
아니면 과거에 지은 범죄로 인해 재정적으로 파산하였거나 혹은 건강 문제로, 또는 끝 없는 인간 갈등으로 밤낮으로 고통당하며 한 잠도 못 이루며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가 만일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그의 고통은 영원한 지옥을 미리 맛보는 것일 뿐입니다.
“넘치는 재앙이 …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임할 것이며 주야로 임할 것이라. 오직 두려움 외 다른 것이 없으리라. 잠을 자도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참조, 사 28:19-20).
[
3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4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5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6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7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시 88:3-5, 6-7)
이처럼 율법으로는 아담과 여자에게 오직 영원한 멸망이 임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처한 그들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하나님은 창조주가 두려워 도망을 치고 있는 아담과 여자를 찾아오셔서 대화를 여십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자비로우신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이 죄 가운데 살아가며 지옥으로 달려갈 때, 그래서 삶 가운데서 좌절과 수치와 공포를 느낄 때, 그때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뵌 적이 있습니까? 그때 주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 사람이 마귀와 죄와 세상과의 관계를 차단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만을 위해 살게 되는 때는 복음을 들은 후부터입니다. 만일 하나님께 행위 언약만 있다면 범죄한 인간들 역시 마귀들처럼 끝까지, 즉 불못에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고 심지어 불못 안에서도 영원히 하나님을 대적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향해 마귀에게 속았던 오해가 풀리면 두려움이 변하여 무한한 감사를 갖게 됩니다. 그러한 감사를 갖게 되는 신자들마다 이제는 공포와 절망과 수치 대신에 회개를 선택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주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 남은 삶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며 주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아담과 여자는 그들을 찾아오신 창조주 하나님을 뵙자 핑계를 대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
10 (아담이)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0-13)
사랑하는 여러분!
아담과 하와는 행위 언약을 깨뜨리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평화로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풍성함이 있었습니다. 아담과 여자 사이에도 한없는 기쁨과 만족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위 언약을 깨뜨리는 순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평이 깨졌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여자 사이도 갑자기 서먹서먹해졌습니다. 이제는 서로에게 실망하고 그들에게 임한 두려움과 불안과 비참 때문에 서로를 탓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나를 제대로 이끌었다면 내가 왜 뱀에서 속았겠어”라고 하며 남편의 리더싶에 도전합니다. 반면, 남편은 “왜 하나님은 이런 멍청한 여자를 내게 아내로 주신 것이야”라고 하며 인상을 찌푸리며 하나님을 탓합니다. 이렇게 죄 때문에 인간은 이기적이 되더니 이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은 힘든 숙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복과 저주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지니고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동의 아래 스스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 놓고도 아담이든 여자든 무조건 서로 남 탓을 하고 결국 하나님을 탓합니다. 이것이 죄에 물든 타락한 마음이 그 타락을 드러내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왜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는지 자초지종을 들어주십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뱀에게는 아무런 해명의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이는 뱀은 그 자체로 악이요 거짓말쟁이요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즉, 본성에 있어서 마귀는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원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한 행위 언약에 따라 아담과 하와를 다루셔야 합니다. 그 행위 언약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
자, 거짓이 있을 수 없고 한번 하신 언약에 완전히 신실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죽이셔야 합니다. 다만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는 것입니다. 이에 여호와 하나님께는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너뜨린 행위 언약에 따라 아담과 하와 및 그 이후의 모든 세대를 저주 가운데 영원히 버리시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을 그들 대신에 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역시 하늘의 영광을 떠나지 않으시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향해 하늘 문을 잠그고 사람을 영원한 어둠에 가두시거나, 아니면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그들 대신에 무한한 고통의 형벌을 담당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성삼위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영원토록 사랑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버리실 수 없었습니다. 또한 신실하신 성삼위 하나님은 이 행위 언약을 무효로 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또 다른 새 언약을 인간들과 맺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 언약입니다. 즉, 행위 언약은 그대로 지속되어야 하지만 그 행위 언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은혜 언약을 체결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은혜 언약은 아담 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 외에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그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셔서 행위 언약에 따른 그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는 것입니다. 만일 이 은혜 언약이 맺혀지면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시는 둘째 아담을 믿고 의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죄 사함을 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대로 영광스런 상태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주시려 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은혜 언약의 시초인 원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이것이 바로 최초의 원시 복음, 또는 복음의 씨앗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무너뜨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둘째 아담이 여자의 씨로 오신다는 하나님의 은혜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죄인인 사람 편에서 맺는 조건은 오직 믿음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여자의 그 씨는 아담과 하와가 받아야 할 행위 언약의 형벌을 대신 받을 것이며, 또한 그 씨는 아담과 하와가 이루지 못한 영광의 상태, 즉 영생을 얻어내어 그들에게 은혜로 거저 줄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라는 방편을 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시 복음에 따르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은 원수 관계입니다. 그 관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관계로서 영원히 화목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오직 사탄과 그 후손이 영원한 멸망에 처하는 것 외에 하나님과 그 백성이 그들과의 원수 관계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15절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뱀과 여자를 원수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여기서 뱀은 마귀의 조종을 받는 상태이기에 사탄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사탄에게 속아서 하나님과 맺은 행위 언약을 무너뜨린 상태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사탄과 여자는 이미 마음이 내통한 상태였고 그 결속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속은 것을 알고 있는 여자와 뱀의 관계를 원수가 되게 하십니다. 이제 뱀에게 속았던 여자는 뱀을 벌하고 싶은 거룩한 소원을 품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주께서는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때 하와는 자신으로부터 ‘그 씨’가 나게 될 것을 믿게 됩니다. 또한 그 씨는 남자 없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여자에게서 태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여 아담도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그 복음을 아내와 함께 받아들인 후에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모든 산 자’는 여자의 후손으로서 뱀의 원수가 되는 ‘하나님께 속한 택한 백성’을 뜻합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즉, 여자의 그 씨에게 속하게 되는 모든 택함 받은 백성이 “모든 산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와에게서 나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 중에 마침내 그 씨가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그 씨가 바로 메시야이며, 아담과 하와는 이 원시 복음을 받은 직후부터 그들의 후손들과 더불어 그 씨가 태어날 것을 고대하고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원시 복음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이후 대략 4천년이 지난 다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 및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평생 죄 하나 없이 의롭게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죽음이 바로 행위 언약을 어긴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한 대가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아들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아버지와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받아야 할 행위 언약의 저주를 스스로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그런데 예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행위 언약의 저주만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첫째 아담이 마귀의 미혹을 이기고 죄를 짓지 않고 행위 언약을 이루었다면 그는 영광에 이르렀을 것이고 하와로부터 나게 되는 모든 인간들은 전부 택한 백성이면서도 영광에 이른 완성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위 언약을 어김으로 인하여 영광은커녕 부패와 타락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이시며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행위 언약을 다 이루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완전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그는 가장 먼저 영광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그에게 속한 믿는 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이며 주께서 보내시는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께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가 더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약속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즉, 하나님은 메시야가 오시면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복음의 영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그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또한 모든 만민이 영생과 성령, 나아가 하나님 나라 유업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는 십자가 속량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시며 영원히 살아계시는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십니다. 즉, 살아계시며 우리와 인격적인 교통을 성령 안에서 가지시는 실제 예수님이십니다. 이러한 우리 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연합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와 부활의 구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의지할 때 복음의 진리가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리면서 죄 사함과 함께 성령으로 인한 마음과 삶과 성품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부분이 지금 시대에 너무나 중요하기에 또 다시 강조합니다. 예수께서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 즉 약속을 성취하신 결과는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보내시는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서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었기 때문이며, 이에 새 사람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영생을 얻게 되고 그 영생으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영광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우리의 몸과 영혼 모두가 완전한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 그 상태는 참으로 순진무구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후에 그들은 자신들의 벌거벗음에 수치와 절망과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습니다. 뭔가 두려움과 수치를 감출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합니다. 선행을 하기도 하고, 일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혹은 끝없이 쾌락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죄지은 영혼에 참된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아서 무화과 나무 잎처럼 말라비틀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 21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려면 동물이 피를 흘려야 합니다. 동물이 죽어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물이 그들의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 죽음을 통과하는 것을 보며 죽음이 어떤 것인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는 행위 언약을 무너뜨리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창조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죄에 빠진 상태에서 언제든 죽음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동물의 죽음이 먼저 발생했고, 그 죽음으로 생겨난 가죽 옷은 하나님의 목전에서 그들의 수치를 임시적으로 가려주었습니다.
그들은 피를 흘린 동물의 죽음에 의해 임시적으로 자신들의 수치와 두려움과 좌절을 해결 받고 하나님과 교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복음을 체험적으로 알아가게 됩니다. 즉, 피를 흘린 동물의 죽음은 장차 그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여자의 그 씨가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죽게 될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먼 훗날 동물의 가죽옷이 예표하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께서 원시 복음의 주인공으로 오셔서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흠 없는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에게서 난 죄인인 주의 백성은 어린양 예수님의 의로 옷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입기만 하면 언제든지 하나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4:25; 롬 5:1-2).
이처럼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부끄러움과 저주를 가져온 죄에 대해 우리가 영원한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덮어줄 의의 옷을 마련해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영원한 멸망에 떨어져 마땅한 우리 죄인들이 이러한 영원한 의의 옷을 무료로 제공 받고 언제든지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주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는 얼마나 복된 자들입니까!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사 61:9).
사랑하는 여러분!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은 후에 비록 동물의 가죽옷을 입었음에도 그것은 예표에 불구한지라 결국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창 3:22-2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쫓아내신 후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잃어버린 낙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다시 주어졌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전 우주적으로 완성되는 낙원,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도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은 그분의 탄생과 삶, 죽음,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주어지는 성령의 생수의 강입니다. 즉, 우리는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함으로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성령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그 수도가 하늘 시온 성에 있습니다. 즉, 하늘 낙원에 있습니다. 이제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하늘 낙원은 이미 그곳에 가 있는 성도들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올 것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영광의 부활체를 얻은 신자들은 생수의 강뿐만 아니라 복된 부활의 몸을 위한 생명 나무의 열두 가지 열매까지 실컷 맘껏 먹게 될 것입니다.
[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1-4)
이처럼 우리 인류가 죄로 인해 잃어버린 에덴 낙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믿음을 가진 신자들의 영혼에 성령으로 당장 주어집니다. 그리고 주의 재림 때에는 전 우주적으로 완성된 에덴, 즉 새하늘과 새 땅이 주의 모든 백성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어지면서 그들은 주와 함께 그 기업을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에 의한 부패와 타락을 해결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영광에 믿음으로 연결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
21 이는죄가사망안에서왕노릇한것같이은혜도또한의로말미암아왕노릇하여우리주예수그리스도로말미암아영생에이르게하려함이라
](롬 5:17-21)
그러므로 우리의 옛사람은 아담을 머리로 하고 있지만, 우리는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을 머리로 하여 연합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든 새 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때 새 사람을 입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옛사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신기한 생명의 능력으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거룩함과 사랑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받은 복음의 말씀과 더불어 우리가 얻는 교훈은 우리의 복장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신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내면의 상태는 외적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내면에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자들마다 외적으로도 그것에 걸 맞는 옷을 입으라고 명하십니다. 사실 옷은 수치를 가리기 위한 것이지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드러내는 것은 오직 언약 안에서 벌거벗어도 부끄럽지 않은 부부 간에만 허용되며 부부 간에만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다른 여자들 및 남자들 앞에서 나체로 행하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것은 음란이며 부정한 것입니다. 특히 형제들이 그들의 눈으로 아내의 벗은 몸을 보는 것은 합당한 것이지만 그 외 다른 여자들의 나체를 보고 음욕을 품는다면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미 간음한 것입니다. 이는 동일하게, 자기와 결혼한 사람 외에 다른 남자들의 음욕을 일으키려고 벗은 몸을 보여주려는 여자는 음녀인 것을 말합니다.
지금 이 세상은 창녀들과 음녀들이 사로잡은 세상입니다. 이에 그들의 복장은 마귀의 농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더러운 수치를 음란이라는 죄성으로 속여서 마치 벌거벗음을 아름다운 것인 양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마다 이 세상을 본 받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자매님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복장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딤전 2:9-10)
그리고 사람의 타락의 순서가 먼저 여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매님들은 세상을 본받지 말고 더욱 주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그러한 자매님의 내면의 아름다움 때문에 자녀들이 구원을 얻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1-15)
지금 이러한 주의 지시는 바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도 받았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베드로 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사실 이사야 선지자나 아모스 선지자는 당시 음녀와 같은 복장을 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
16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17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가 드러나게 하시리라. …
24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 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라
](사 3:16-17, 24)
아무튼 우리가 드러내는 복장은 우리 안의 내면이 어떤 상태인지를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내면이 어떤 사람인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복장을 통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가 음녀 또는 남창처럼 옷을 입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 고의적으로 세상의 부패한 유행을 따라 난잡하고 부정한 옷차림을 가질 수 있습니까? 옷 모양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거나 더 벌거벗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 입과 삶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말하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음란한 세속에 물든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답고 정결한 향기가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옷차림이 여러분을 거룩한 신자라기보다 누가 보아도 욕망의 노예인 것을 보여준다면 여러분이 어찌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영광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과 영혼을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셨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8-20).
2024년의 우리 교회 표어처럼, 우리는 우리의 옷을 입는 방식과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즉,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복음의 향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 외적인 복장도 그러하지만 내면을 속이고 겉으로 의롭게 보이려는 바리새인 위선자들은 더욱 무섭습니다. 그 마음은 음란과 세상과 더러움을 탐하면서 말로는 거룩한 척하고 복장으로는 더욱 종교적인 모양새를 취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오히려 창녀들보다 더 간교하고 무서운 위선자들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의 마음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덧입히기 바랍니다. 계시록을 보면 마음 중심이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청결하고 거룩한 주의 백성이 등장합니다. 우리 역시 그들처럼 거룩하고 정결한 의의 옷을 입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 14:4-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즉 마음과 삶, 그리고 말과 생각 모두가 한결 같이 주 안에서 거룩하고 의롭고 정결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속에 물들 때 우리는 정결한 주의 신부가 아니라 고멜처럼 바람난 불륜녀가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에덴 동산에서 수치와 절망과 멸망 앞에 선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동물의 가죽옷을 입히신 여호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동물의 가죽옷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시키겠다는 은혜의 증표였지만 그 가죽옷이 예표하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하나님의 창조 의도대로 영광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재림 때에 영광의 부활의 몸으로 주 앞에 서게 될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광되고 복된 삶이 우리의 남은 삶에 나타나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낙원으로 들어갔다가 주의 재림 때에는 주와 함께 이 땅에 내려와 새하늘과 새땅을 기업으로 얻어 영원히 주와 함께, 그리고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한없는 영광과 기쁨 가운데 영원히 영원히 살아가는 주의 아름다운 백성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룻 4: 7. 증명하는 전례 - 룻 4: 10. 룻에 대한 증인 (0) | 2024.02.14 |
---|---|
스크랩 요12;38~41예수님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20230423 (0) | 2024.02.12 |
사순절 1주 주일설교. 니고데모,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요 3장 1~15절) (0) | 2024.02.12 |
설날 ( 2 ) (0) | 2024.02.10 |
스크랩 명절에 무엇을 하겠느나 ? (0) | 2024.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