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1주 주일설교. 니고데모,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요 3장 1~15절) 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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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에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만난 사람과, 사건과 대화 내용을 중심으로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사순절 기간동안 요한 복음을 천천히 정독하시기를 바라며, 니고데모 이야기가 요한 복음 3장에 나오니 이번 주는 1~3장까지, 다음 주는 수가성 여인이 나오는 4장까지, 그 다음은 간음하다 나오는 여인이 나오는 7장까지, 이렇게 설교가 진행되는 본문까지 끊어서 읽어 가시며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사순절 설교는 인물 설교이기에, 예수님을 만났던 당사자에 나를 대입 시키셔서, 내가 니고데모가 되어 보고, 수가성 여인이 되어 보고, 빌라도가 되어 보는 식으로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와 거룩한 성령의 충만하심이 사순절 기간 내에 모든 성도의 심령 위에 풍성하게 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찾아간 니고데모는 3번에 걸쳐 문답을 주고 받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먼저 첫 번째 대화가 오고가는 1~3절을 읽어 드립니다.
1. 니고데모가 만난 예수님 : “의문을 가져라, 찾아가라”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아멘.
니고데모 이야기는 요한 복음에만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기관인 산헤드린 공회(대법원격 기관) 회원이기도 한 바리새인 중의 최고 지도자급 인물이 예수님을 독대하려 밤에 홀로 찾아온 이야기는 신선하기도 하고 매우 파격적입니다.
성경에서 묘사된 것처럼 바리새인들이 모두 외식하는 자들이고 돈을 탐하며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면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저주스런 말을 들을 정도의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거룩과 경건으로 살아가려는 진실한 자들이 남아있었습니다. 니고데모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습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다른 사람을 시선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 듯합니다. 평범한 바리새인도 아니고 공의회 의원의 신분으로 예수님과 공개적인 만남을 꺼려했을 것입니다. 밤중에라도 그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굳이 찾아온 이유는, “예수님은 과연 누구실까?”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성경에서 증언 하지만, 또한 믿음은 ”왜?” 라는의문을 가진 자가 마침내 얻어내는 보물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믿음 성장에 매우 중요한 핵심요소입니다.
저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믿음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이렇게 재빠르게 실행하는 사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호칭 하면서, “랍비, 당신, 선생”이라고 부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 위치에서 청년 예수를 이 정도 호칭으로 불러준 것도 대단한 존중을 보이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이러한 호칭으로 부른 이유의 근원은, 예수님이 행하신 수 많은 기적을 행한 것을 눈으로 직접 목겼했기 때문이며, 그 수많은 기적(표적)들을 보고나니 예수님은 누구실까? 누구시길래 저런 기적을 아무렇지 않게 하실 수 잇을까? 라는 강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이 의문에 대해 혼자 내린 결론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특별한 사람(선지나, 예언자)임이 틀림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이 생각이 진짜 맞는지, 실제로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는지 직접 듣고 싶어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랍비 예수여, 당신이 이러한 표적을 행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틀림 없습니다” 이런 인사를 건네며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무척이나 기쁜 반응을 나타내실 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미동하지 않고 무표정하고 담담하게 말씀 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아멘.
니고데모는 당황했습니다. 최고의 존칭으로 예우해 주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라는 말을 했음에도 만족해 하는 어떠한 화답도 없었을뿐더러, 자신은 모세율법을 지킴으로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에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니고데모는 일반 사람이 아니라 율법에 정통한 학자였기에, 니고데모 자신이 거듭나지 아니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씀 하시는 것을 금방 알아챘기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말 자체가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지 못했습니다.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인줄 알고있다고 말한 칭찬이 너무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니고데모와 예수님, 둘의 첫 대화부터 강렬한 논쟁이 불을 붙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당황한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씀을 앞세워서 자신의 말씀이 진리중의 진리라고 묵직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 첫 경험이 자신이 그동안 지니고 있던 나름대로의 확신, 판단, 기준, 지식, 자신감, 이런 것들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옛 사람을 완전히 정리하고 완전한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첫 번째 대화 속에서 니고데모는 자신의 지식과 율법의 조문만으로 도저히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 수 없겠다는 것을 직감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의문의 해답을 얻으려고 왔다가 더 큰 의문에 가로 막혔습니다.
이때 니고데모는 내가 오지를 말했어야 했나 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찾아오기를 정말 잘했다, 이 참에 알 듯 모를 듯 말씀 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모든 의문을 다 풀고가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알쏭달쏭 말씀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속시원히 다 듣고가자는 의욕이 불타 올랐습니다.
율법 학자로소의 탐구심이나, 랍비로서의 자존심과 오기가 발동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주 대하고 있는 예수님의 눈빛과 대화의 무게감이 그를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왜 그럴까?’ 라는 신앙에 대한 어떠한 의문을 떠올릴 수 있다면 예수님을 찾아가야 겠다는 시동이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의문이 들어야 생각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고, 내가 직접 알아 내겠다는 의지가 생기게 됩니다. 니고데모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예수님을 찾아가서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어떤 의문과 질문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어떤 사실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또한 의문을 가지고 고민만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다른사람에게 묻기만 하는 것도 부정확하고 혼란스러운 말만 잔뜩 듣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런 식의 소극적인 자세를 그만하고 내가 직접 예수님을 찾아나서고,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모든 의문을 가진 질문들을 던져 보시려고 시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마침내 진리를 깨우쳐 알게 되고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가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지니게 되실 것이고, 예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얻게 되어 예수님만 따가라기를 기꺼이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사순절 첫주 말씀, 첫 번째 인물인 니고데모의 행동을 보면서, “나도 이번 사순절 만큼은 예수님에 대한 모든 의문을 쏟아내 보리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찾고 또 찾으며 만남의 장소로 나아가리라, 예수님에게 모든 질문을 쏟아내고 반드시 해답을 얻고야 말리라” 라는 적극적은 자세로 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에 모든 분들이 예수님에 대한 모든 의문을 총동원해 보시고, 예수님을 직접 찾아가시에 전력을 다하셔서, 니고데모처럼 만남의 은혜를 경험하시고, 예수님과 깊이 대화하셔서 속시원한 해답을 얻으시는 성령 충만의 기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니고데모가 만난 예수님 : “성령으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두 사람의 두 번째 대화인 4~8절을 읽어 드립니다.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아멘.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수 있사옵나이까?” 라고 니고데모가 또 다른 의문을 나타냅니다.
니고데모는 사람이 거듭난다는 의미를 육체적인 출생만 생각했습니다. 윤회설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면 유대교인은 거듭 태어나서 두 번의 인생을 산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여 어찌보면 당연한 반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진실로 진실로 라는 표현을 쓰셔서 대답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로 거듭나는 것은 세례 받는 것이고, 성령으로 거듭 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은, 죄의 지배를 벗어나는 것, 죄의 사슬을 끊어 내는 것, 죄의 더러움을 씻고 거룩하게 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모든 행위의 권세를 지니신 분은 예수님 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라는 말씀은 바꿔 말하면, 네가 지금 만나고 있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가 없다고 말씀 하신 겁니다.
첫째 대화에서 니고 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존귀하신 분이라고 높여 주었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크게 낮추어 생각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선생이나 랍비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 그리스도, 메시아이며 네가 상상도 할수 없는 존재인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니라 라고 말씀 하신 겁니다.
이 엄청난 의미를 니고데모가 훤히 깨달아 알았다면, 그는 아마도 그 자리에서 기절 했을 겁니다. 기절하지 않았었도 이마를 땅에 대고 부들부들 떨면서 예수님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채 예수님 앞에서 엎드러져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과의 첫 번째 만남에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생각, 자아 들이 산산히 깨지는 경험을 한다면, 두 번째 만남에서는 예수님이 진정으로 나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영원한 생명과 평안을 주실 나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충격적인 감동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만남의 은혜가 주는 가장 큰 선물, 곧 죄사함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약속하시는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두 번째 만남의 단계까지 다 오셨죠? 이런 경험은 누가 들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오랜 기간 드렸다고 해서, 설교를 많이 들었다고 해서 채워지는 경험이 아닙니다.
반드시 나와 예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에서 내 머리와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경험이 발생했을때 나오는 겁니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내가 정말, 진실로, 확고하게, 변함없이 예수님을 만나고, 듣고, 깨닫고, 고백한 사건이 있었던 체험적인 상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 하신 요지는, “네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경험의 주체인 나를 지금에야 만난 것은 너로 하여 나를 경험하게 하려는 나의 계획이며, 너는 바리새인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거룩하게 소망하는 자이므로 너에게 나를 알고, 나를 믿고, 나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거듭나서 네가 그토록 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 있는 영안을 열어 주고 네 마음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르를 경험하며 살게하는 은혜를 내려 주려 함이라”고 말씀 하신 겁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정신이 혼미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6~8절까지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부는 바람의 비유로 잘 설명해 주십니다.
우리가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면서 바람의 존재를 알 수는 있으나 바람의 시작과 방향과 도착지는 알 수 없듯이, 성령이 우리에게 구원자가 누구인지 듣고, 깨닫고, 믿고, 고백하게 하는 체험(거듭남)을 하게 하시는 분이지만, 그 성령이 어떻게 일하시고, 누구에게 일하시고, 무엇을 하시는지는 오직 성령 자신만의 고유 영역이기에 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거듭남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는 성령을 맞이하고 그 성령을 통하여 받는 여러 가지 은혜들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수혜자로서 지극히 감사한 마음으로 성령을 무한 신뢰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이 원리를 예수님은 바람이 부는 것으로 비유 하신 겁니다.
니고데모는 율법에는 능통했지만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고, 거듭남의 주체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ㅈ너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말 인생일대의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제 발로 거듭남의 주체이신 에수님과 마주 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말씀 하신 대로, 진실로 진실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사순절은 거듭남의 경험을 재차 학인하거나 혹은 거듭남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리 모두가 거듭남의 은혜를 경험케 되도록 성령을 간절하게 간구하고 전심으로 사모하셔서, 오직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속죄의 은혜를 베푸신 분임을 완전하게 믿고, 고백하며, 감사로 영광 돌리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사순절 기간 동안 전심으로 기도하고, 진심으로 참회하는 가운데,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을 받아, 닫혀진 영안이 열려서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감동의 순간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 니고데모가 만난 예수님 : “예수님 한 분에게만 집중하라”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마지막 세 번째 대화내용인 9~15절을 읽어 드립니다.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아멘.
“어찌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나이까?” 두번째 대화까지 끝낸 니고데모의 세 번째 반응입니다. 니고데모는 의문을 가지고 해답을 찾으려 왔는데 오히려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견고한 율법 지식과 젊은 예수 청년이 하는 말과의 모순이 격력하게 충돌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네가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한층 엄격한 말씀으로 니고데모의 격렬한 심리상태를 잠재우신 예수님은 또 다시 세 번째 ‘진실로 진실로’를 사용 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아멘.
이 말씀은 오직 예수님 한 분에게만 집중하고 또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로 연합하여 친구와 같이 동행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우리가 온전히 집중하여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예수님은 대화중에 니고데모 한 명에게만 집중하고 계시며, 그에게 하늘을 일을 말씀해 주고 계시며,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에게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율법을 굳게 믿는한 당연히 영생을 얻는다는 확신속에 살아왔는데,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들린(십자가에)인자를 믿어야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제서야 니고데모는 진실로 진실로 사람이 거듭 난다는 것, 진실로 진실로 성령으로 거듭 난다는 것, 진실로 진실로 믿는 다는 것이 곧 예수님 자신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니고데모가 이러한 내용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깨닫고, 믿음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 흡수되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의 학문과 율법의 내용들과는 여전히 충돌했습니다. 그래도 니고데모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라는 선택이 자신 앞에 있는 상황까지는 도달했습니다. 문제의 해답을 적지는 못했지만, 그 해답을 적을 수 있는 답안지와 연필은 손에 쥔 셈입니다.
니고데모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죽기 전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었을까요? 아니면 끝까지 바리새인의 전통을 고수 했을까요?오늘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가 끝난 후에,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고 일컬어지는 요한복음 3장 16절, 17절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이 은혜의 말씀에 속한 구원 영생의 대상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 누구라도 될 수 있으며, 그 대상 중에 니고데모가 있습니다.
니고데모 이야기가 끝난 직후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은, 바리새인 니고데모를 이 말씀 앞에 세워 놓았다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한 은혜이자 기회를 제공 하신 겁니다.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식을 직접 치른 인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의로운 행위를 반드시 기억하셨을 겁니다.
저는 니고데모가 이정도로 예수님과 인연이 있었던 인물이었다면 부활 이후에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만남 이야기가 한번 쯤 있을 법도 하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직접 목격자인지 간접 목격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기록만 없을 뿐이지 이 역시 열린 결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사순절을 시작하는 첫 주일에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만남의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① 예수님과의 첫 만남에서는 내 생각, 내 자아, 내 계획이 산산히 부서지게 하시는 만남이었습니다.
② 예수님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는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믿음의 확신을 주시는 만남이었습니다.
③ 예수님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는, 믿음의 주인이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하며 함께 동행하자고 제안하시는 만남이었습니다.
저는 니고데모가 인생 후반에 구원의 길로 나아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은 단지 누군가에게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교훈을 들려 주기 위함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곧 예수님의 은혜을 입게되어 성령으로 거듭나는 대상이 되게 하시려고 만남의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누구에게나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순절 첫 주 주간에 니고데모가 되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분들이 에수님과 꼭 만나셔서, 내 자아를 내려 놓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믿음의 확신을 굳게 붙잡고, 예수님과 친구처럼 동행의 길을 나서는 결단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한 주간 동안 전심으로 기도 하시고, 진심으로 참회 하시고, 말씀을 깊이 묵상 하시면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길,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길로 인도함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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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진실로 진실로 성령으로 거듭난 경험과 확신속에 살기를 원하오니, 믿음주시고 은혜 주셔서 오직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로 당당하게 들어갈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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