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여호와께 돌아오라 (권호만 목사)
요엘2:12-14
오늘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지난 수요일 흔히 성회 수요일 혹은 재의 수요일이라고 불리는
날부터 시작해서 부활주일 전날까지 지키는 46일간을 말합니다.
그 46일에서 6번의 주일을 빼고 40일 동안 지킨다고 해서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금년도는 2월 14일에 이미 시작이 되었고요 3월 30일까지 사순절을 지키게 됩니다.
사순절의 의미는 처음 시작하는 날 즉 재의 수요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재의 수요일이라는 말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회개할 때 재에 앉아 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이처럼 우리의 부족함을 돌아보면서 재를 뒤집어쓰듯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절기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일 이것이 바로 사순절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인 줄 압니다.
여러분, 이번 사순절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절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지 150년이 지난
주전 350년경에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이 주어진 배경을 보면 메뚜기 떼의 재앙이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메뚜기 떼가 지나가면서 엄청난 자연 재해를 입게 됩니다.
메뚜기 떼의 재앙은 우리가 직접 경험을 하지 못했기에 그 피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만 중동지방이나 아프리카에서의 메뚜기 떼의 재앙은
당시로서는 최고의 자연 재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장 3절에서도 이 재앙을 피해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할 자가 없도다.”
이러한 재앙은 그 자체로서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절망과 고통 속에 빠져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여호와께 돌아오라’ ‘이제라도 여호와께 돌아오라.’
12절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절에서는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참담한 자연재해 앞에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 알지 못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말은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회개가 해결책이 되고 회개할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탕자가 다시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고 거지와 같은 생활에서 아들의
풍요함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요나 선지자의 말을 듣고 온 나라가 철저하게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했습니다.(행2:38)
회개가 답이고 회개가 축복이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 내일의 희망입니다.
먼저, ‘이제라도’ 회개해야 합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이제라도’ 라는 말은 사실 조금 늦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재앙이 있기 전에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왜
진작 회개하지 못하고 왜 진작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못했느냐는 말입니다.
모든 만사가 때가 있습니다만 회개에도 때가 있습니다.
유다의 요시야 왕은 8살 때 왕이 되어 31년간 왕위에 있었는데요,
이 왕이 사람을 시켜 성전을 수리하는 가운데 성전에서 여호와의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율법 책을 읽고서 그는 자기의 옷을 찢습니다.
그 책에 기록된 것과는 너무나 다른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라의 모습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시도합니다.
철저하게 이방신들과 우상들을 깨트리고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잘못된 관습과 전통을 깨트려버립니다.
사사시대 이후에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기도 합니다.
그 요시야 왕에 대한 성경의 평가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는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왕하23:26)
이렇게 철저하게 율법에 의지하여 종교개혁을 실시하고
백성들을 여호와께로 돌이켰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고 기회가 지나갔습니다.
이제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말은 이미 기회가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자연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왔으면
이런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고 얼마나 좋았겠느냐? 는 너무 아쉬운 말입니다.
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부자가 지옥에 가서 회개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라도 회개하라’는 말은 그러나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이제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여호와께서 받아주시고 다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이제라도 돌아오면 됩니다.
회개에 너무 늦었다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라를 구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나는 구원할 수 있고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그 많은 재산을 허랑방탕하다가 다 탕진하였습니다.
금의환향이 아니라 거지꼴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가서 아버지와 가족들과 동네사람들을 무슨 면목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이제라도 돌아갑니다.
이제라도 돌아갔을 때 자기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아버지의 극진한 환대를 받고 아들의 지위가 회복되고 잔치가 벌어지고 모두가 함께 즐거워합니다.
여러분,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늦었다고 할 때가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회개해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될 때가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그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돌아가면 절대 늦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탕자보다 더 부족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타락했다고 할지라도 십자가에 달리 강도보다 더 타락했겠습니까?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 용서받고 구원받았다고 하면 여러분들이 돌아가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회복할 수 있고 다시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강조점은 ‘여호와께로’입니다.
유다 백성들의 삶은 겉으로 볼 때는 회개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옷을 찢는 회개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옷을 찢는다는 말은 나름대로 철저하게 회개한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요시야 왕이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제일 먼저 한 일이 그의 옷을 찢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요엘 선지가가 지적하는 옷을 찢는다는 말은 형식적인 회개를 의미합니다.
습관적으로 옷을 찢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회개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보면 여전히 세상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이런 습관적이고 보이는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하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잘못하는
일 가우데 하나가 이방여인들로 아내를 삼고 며느리를 삼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에서 철저하게 금지시켰던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이런 일을 행하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긴 일이
증거 하듯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길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모아놓고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여인을 다 버리라고 합니다.
아무리 이방여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부부가 되어 오래 동안 함께 살면서 정이 들었고 아이까지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자기 부인을 버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여 룻기 같은 책이 쓰여진 것입니다.
룻이 이방여인이었지만 이렇게 유대인과 결혼하여 다윗의 계보에 들지 않았느냐?
이런 일이 있는데 꼭 이방여인이라고 버려야 하는가?
그들을 여호와 신앙으로 잘 인도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반감에서 쓰여진 책이 룻기입니다.
어째든 이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던 것은 사실인데요,
그 어려운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으로 몸으로 실천합니다.
그때의 형편을 저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음을 찢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회개는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찢으면서 돌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좋아했고 사랑했고 정이 들었어도 그것이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따르려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마음을 찢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으며 무엇을 따라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행여 주님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에서 돌아서서 방향을 전환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것은 정말 마음을 찢는 일처럼 쉽지 않는 일이고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에서 방향을 틀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그것이 회개이며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 됩니다.
세 번째는,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생활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제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회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삶으로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진정한 회개가 됩니다.
회개하기 전에 생각할 수 있고 말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의 모습을 갖추려면 행동하는 모습,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보여야 합니다.
삶으로 행동으로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 회개할 때 그는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사용하겠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록펠러는 53세에 세계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어 하루에도 백만 달러씩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알록피셔”라는 병에 걸려서 머리와 눈썹이 빠지고 몸이 바싹바싹 말라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1년을 넘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내가 많은 소유를 가지면 뭐하나.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자 그 순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돈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 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더니 침대 밑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예배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새 성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어 바친 성전이 미국 뉴욕에 있는 리버사이드 교회입니다.
그런 후에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밥맛이 나고 잠이 잘 오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겁니다.
일 년 밖에 못산다는 사람이 98세까지 살았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였더니 어느새 근심과 병이 사라지고 록펠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는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이고 여호와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을 향해 있던 자가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고집과 내 뜻을 따라 살던 것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사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 회개에 늦은 때는 없습니다.
이제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됩니다.
그럴 때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신 여호와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2024. 0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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